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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Jun 28. 2020

오이가 멸종되면 좋겠다

진짜 싫은 거, 하나쯤은 괜찮아

오이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물론 오이를 좋아하는 남편 같은 이들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겠지만. 남편은 어릴 때 학교 가는 길, 오는 길에 으레 동네 오이밭에서 따 먹는 오이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평생 나는 이해 못할 느낌이다. 난 오이의 오돌토돌 여드름이 난 껍질도 싫고, 호박이랑 헷갈리게 하는 의뭉스러운 모양새도 싫다. 그러나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냄새다. 10미터 밖에서도 널리 퍼져 오장육부 깊은 곳에서부터 오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냄새를 왜 ‘향’이라고 표현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이 “코는 왜 달고 다니냐”라고 핀잔을 줄 정도로 둔한 나의 후각이 오이 냄새에 만큼은 하필 최강의 민감도를 자랑하는 건 아이러니다. 밀폐된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중고등학교 때는 고충이 상당했다. "3 분단 끄트머리에 누군가 오이를 싸 왔다"라고 감지할 때도 그랬지만, 같이 먹는 친구들 중에 오이 반찬이라도 싸온 이들은 괜히 내 눈치를 봤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길을 가다, 내가 갑자기 킁킁대며 “오이 냄새가 난다”라고 이야기한 후, 조금 더 가니 아파트 화단에 누가 먹다 버린 생 오이가 있었다며 친구는 여전히 신기해한다.


나 같은 오이 혐오자에게 한국은 위험한 곳이었다. 오이가 들어간 음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이냉국, 오이소박이처럼 오이가 메인인 음식도 많지만, 김밥, 미역무침, 해파리냉채, 양장피처럼 오이가 늘 빠지지 않는 조합도 있다. 저녁 밥상에 오이냉국이 올라오면 냄새 때문에 그날은 내 밥그릇을 들고 방으로 피신해야 했다. 나이 40이 되도록 양장피는 아예 먹어 보지도 못했다. 남이 주는 음식을 잘 안 받아먹는 것도 그래서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버스 안에서 친구가 거듭 권한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가 0.1초 만에 앞자리로 발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분식집에 가면 본의 아니게 까탈스러운 손님이 되곤 했다. 쫄면에, 김밥에, 오이 꼭 빼주세요,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여지없이 촉촉한 위용을 자랑하며 등장하는 생오이. “아줌마, 저 오이 못 먹는데...”라고 하면 “바꿔줄게”보다는 오이가 얼마나 좋은 건데 왜 안 먹냐는 잔소리가 시작됐다. 식당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친목 모임에서든, 술자리에서든, 오이 이야기가 나오면 오이가 피부에, 다이어트에, 얼마나 좋은 건데 왜 안 먹냐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럼 오이팩도 안 하겠네?”라는 말은 몇 번이나 들었는지 셀 수도 없다. (생오이를 갈아서 코 옆에 붙인다니...그 자체로 공포다.)


좋은 걸 몰라서 안 먹는 게 아니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오이를 먹어야 날씬할 수 있다면, 1초도 고민 않고 뚱뚱이로 사는 쪽을 택하겠다. 내가 오이를 왜 싫어하는지 타인을 납득시켜야 할 의무가 있을까? 비위가 약해서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손에 꼽는 사람도 아니고, 오이만 제외하면 천엽에서 개불까지 육해공 가리지 않고 너무 잘 먹어서 탈인데. 그냥 오지랖일 수도 있고, 한국인의 끈끈한 정의 표시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에게 좋은 것이 너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곤란하다. 다수가 좋아하니 그렇지 않은 소수는 참아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 대상이 오이든, 종교든, 직업이든, 세상에는 나와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난 내 딸이 양파를 극렬하게 싫어하는 것쯤 쿨하게 인정한다. 양파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라고 타박하지고 않고, 안 보일 정도로 잘게 다져 음식을 만들지도 않는다. 양파가 목구멍을 넘어가야만 낫는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프렌치 어니언 수프 못 먹는 것쯤 뭔 대수랴.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나 같은 손님들의 목소리가 커져서인지 알레르기의 위험성이 알려진 탓인지, 이런 부탁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김밥 주문받으시는 분이 “우리 집은 김밥에 오이 대신 시금치 넣어”라고 하셔서 나를 감격하게 할 때도 있다. 좋은 현상이다.

 

친구가, 혹은 친구의 사돈의 팔촌이 싫어하는 게 있다면 그냥 내버려 두자.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분열시키는 종류의 증오가 아니라면. 오죽 싫으면 이메일까지 ihatecucumber로 지었겠나. 심지어 나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뒤에 네 자리 숫자까지 붙여야 했다.


(행여나 제목만 보고 격분하신 오이 농가분들이 계다면 죄송합니다 - 오이 농가의 외손자이자, 저 같은 사람과 같이 살면서도 오이를 몰래몰래 사 먹어 오이 소비에 보탬이 되는 우리 남편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같은 소수의 권리를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지은 제목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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