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도달하는 삶의 순간에서 자신만의 여행길로
여러분이 꿈꾸던 서른 살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꾸준히, 또 용기 있게 걸어가는 INFJ, ESTJ, ENFP, ENTP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한국나이로 서술했습니다.
서른은 내게,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진짜 어른이 되는 시기라고 느껴졌다.
어릴 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들은 이십 대 후반이나 서른 초반에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아, 정말 어른처럼 보였다.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도 20대 후반이거나 서른 초반이셨는데, 당시엔 엄청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내가 그 나이에 가까워지고 보니, 선생님들도 사촌들도 사실 엄청 어렸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나 우리가 짜증났을까…?ㅋㅋㅋ)
그때의 어른들은 어떻게 그렇게 척척 살아갔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지만, 막상 서른이 되었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압박감도, 중압감도, 슬픔도 없었다. 미디어나 주변에서 말하는 ‘서른의 슬픔’이나 ‘특별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그게 더 신기했다. 나이가 드는 슬픔이나 책임감 같은 것들이 이상하리만큼 내겐 와닿지 않았다.
선명한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에 만난 친구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 그들에게도 서른이라는 나이가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다.
"글쎄, 별생각이 안 들어. 오히려 좋아."
호들갑 떨지 않는 친구들의 대답이 기뻤다. 애써 긍정적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함께 세운 미래를 바라보며 나아갈 계획이 있으니까.
40대, 50대, 더 나아가 경로당에서의 모습까지도 기대된다는 농담을 하며 웃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 나의 서른 살은, 그런 걸 느끼게 해 준 한 해였다.
사실, 서른을 막 지나온 지금은 서른 이후의 나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 그냥, 가던 길이고 해왔던 길이고, 앞으로도 계속 가야 하는 길일뿐.
그렇지만 이번 글을 쓰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걸어갈지 생각해 봤다.
인생은 계획대로 흐르지 않고, 계획한 것에 너무 강박을 느끼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획이 틀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흐르는 시간에 나를 조금은 맡기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은 때때로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인도 속담에 “잘못 탄 기차가 때론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랬듯,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가면 되지 않을까?
[앞자리 3의 힘: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20대 때 나는 막연히 서른 살이 되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삼십 대는 되기 싫었지만 서른 살은 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어 했다. 그들이 맞다고 생각할 때는 수긍했지만, 대체로는 설득당하지 않았고 내 의견을 피력하고 싶었다. 하지만 20대 때는 쉽지 않았다. 나 또한 "내가 나이가 어려서 내 얘기를 안 들어주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실제로 사람들도 내가 엄청난 논리력을 갖추지 않는 한, 30대였다면 들어줬을 법한 말도 20대라는 이유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앞자리 3을 달고 싶었다. 실제로, 만 나이 적용 전 기준으로 서른 살이 되었던 2022년. 사람들은 조금 더 내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서른 살은 나에게 그런 의미를 가진 나이였다.
29세와 30세. 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막연한 한 살 차이가 가져온 내 내면의 자신감과 나이에 민감한 한국 사회가 불러일으킨 주변 사람들의 태도 변화가 한순간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러나 서른한 살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서른한 살부터는 그저 삼십 대의 시작일 뿐이었다. 점점 "적지 않은 나이"라는 말을 듣는 횟수가 늘어났고, 사람들은 내 말을 잘 들어주는 대신 계속해서 책임감을 부여하려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곧 책임을 부여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누군가 "몇 살이 되고 싶으세요?" "몇 살 때로 돌아가고 싶으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서른 살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성숙한 듯하지만, 청춘의 느낌이 가득 찬 그 설명할 수 없는 벅찬 나이. 바로 서른이다.
서른 살. 나는 서른 살을 너무나 기다렸었다. 29살 가을쯤엔 친구들과 20대 마지막 기념 프로필 사진도 찍었었다. 예쁘게 찍히고 싶어서 몇 달 전부터 다이어트도 열심히 했던 게 기억난다. 내가 이렇게 서른 살을 기다렸던 건 나의 20대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마음에 안 드는 대학교에 가게 되었고, 그렇다 보니 어쩐지 나랑 안 맞는 것 같은 학교 동기들, 왠지 부끄러운 나의 전공(나는 일본어를 전공했다…오타쿠는…아닌 것 같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덧 다가온 취업 시즌. 그동안 너무 공부만 해서 택한 공무원 시험. 연이은 낙방. 뒤늦게 시작한 사회생활. 아쉬운 게 많은 20대를 보냈기에 30대는 정말 정말 잘 보내고 싶었다.
서른 살이 되는 1월 1일. 집으로 돌아가는 광역버스 안에서 혼자 설렜던 게 기억난다. 드디어 벗어났다, 20대.
어서 오렴, 30대!
물론 서른 살이 되자마자 세상이 뒤집히진 않았다. 그래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30대는 너무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하루하루 내 머릿속은 도파민이 가득했다. 4평이지만 마냥 좋았던 원룸에서 자취 시작, 회사에서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인한 동료들과의 마찰, 때마침 더 나은 회사로의 이직 등… 천방지축 서른 살을 보냈다.
이런 스타트 덕분인지 그 이후 몇 년 동안 욕망 가득한 30대 초반을 보냈다. 그런 덕분인지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어느 정도의 경력, 어느 정도의 자산,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쌓여 이제 평범 정도가 된 것 같다.
그토록 기다렸던 서른 살 그리고 30대.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만족스럽게 살았다고. 이런 자신감의 시작을 만든 서른 살의 나에게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다.
서른 살의 내가 있기에 나는 나이 듦이 두렵지 않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진짜 늦었지만 포기만 하지 않으면 시간은 지나가게 되어있고, 성장한 내가 되어있다.
앞으로 더 성숙하고 지혜로워질 내가 기대된다. 내 인생, 우리 인생 파이팅!
서른 살.
달리 부르면 이립(而立) :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
서른 살은 나에게 찬란했던 이십 대에게 안녕을 고하는 시기였다.
해보고 싶은 것을 모두 해본 이십 대였기에 맑은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남들은 자리를 잡을 때라 생각하지만 나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원래 내가 전공했던 직종을 떠나 아예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기로.
그리고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문과생이 이과를 공부하기 쉽진 않았지만 포기는 없었다. 그냥 했다.
덕분에 나의 진로를 바꿨고, 현재도 계속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서른 살에 의미 부여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영원할 줄 알았던 20대가 지나간 나이라 그런 걸까.
시원섭섭한 감정이 드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십 대가 힘들었던 사람은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나이가 될 수도 있고, 이십 대를 즐겁게 보냈던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 서른 살이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마흔 살도 될 것이다.
서른 살은 인생을 통틀어 보면 아주 젊은 나이이다.
체력이나 건강은 이십 대와 다르겠지만, 관리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인생에 나이라는 핑계를 만들어 제한을 두고 살지 않는 게 내 목표이다.
내 욕망에 솔직해야 나 자신이 행복하고 나 자신이 행복해야 주변인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물론 책임을 지는 일은 다른 문제지만.
이상 다음 주제를 기대하며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