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과 불안의 끝에서 다시금 새로운 나를 향하여
여러분이 생각하는 서른 살은 어떤 모습인가요?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자신을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INFP, INTJ, ISTJ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A는 이 질문에 평생을 얼버무리며 살아왔다. 학교 다니던 시절엔 마련된 대답이라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요, 고등학교 2학년이요, 대학교 3학년이요. 이젠 그런 것도 없이 오래 살았다. 그가 몇 살인지 정확하게 직시하는 순간이라곤, 제조약 봉투에 찍힌 두 자리 숫자를 볼 때뿐이다. 때마침, 지난주 A형 독감으로 고생한 뒤 기침이 떨어지지 않아 새로 받아 온 약 봉투에 A의 이름과 29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자신의 나이를 평생 희끄무레하게 써 온 A에게 이 숫자 또한 유의미할 리 없었다. 문득 아래에 겹쳐 놓여있던 지난주의 약 봉투가 보였다. 거기엔 28이라고 적혀있었다. 그새 생일이 지났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생일도 신경 써서 챙기지 않는 이상, 다른 날들과 다를 바 없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약 봉투 속 겨우 하나 커진 숫자는 건조하고 의미 없는 인쇄물임과 동시에…‘이 정도 나이’가 되면 생일이 특별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모순의 순간을, A는 마주하고 있었다.
A는 이런 질문에 대답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게 무슨 뜻일까 고민했다.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는 뜻일까? 사실, 학교를 빠르게 들어간 A는 평생 한 살 더 많게 호명되었다. 거기다 이제는 파기된 한국 나이 계산식으로 셌다면, A는 서른 살이었다. 이런 복잡한 사정이 지금껏 자신의 나이를 흐릿하게 놔두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력서에 나이 대신 기재된 생년월일 속 태어난 연도도- 어쩌면 서른 살이었을 수 있는 A의 나이를 뿌옇게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런 복잡한 사정 따위가 아닌, 타인에게 매겨진 두 자리 숫자를 선명히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평생 나이를 써 붙이지 않고 살아온 A도 그런 질문 앞에선 자신의 두 자리 숫자를 다시 계산해야 했다. 속으로 ‘그래, 서른 살이면 어디에든 취직하긴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A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어느 때가 되면 무언가 가져야 한다거나,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온 세상이, 마땅히 가져야 하고 겪어야 한다는 것들을 가지고, 또 경험했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A가 보기에 세상엔 서로 다른 각자의 삶이 수도 없이 많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런 규칙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머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심지어 A는 특정 나이의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걱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름다운 청춘으로 포장되는 젊음의 방황과 고통이 지독했기에, 얼른 나이가 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받은 질문에 한 치의 고민도 할 필요가 없었다. 머뭇거릴 일도 없었다. 그런가요? 하고 되물을 수도 있었다. 서른의 자신이 무언가를 마땅히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서른의 자신이 싫어 꾸며낼 이유도 없었으니까. 최소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만 있다면 그걸로 족한 것인데. 그러나 A는 멋쩍게 웃으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렇죠, 아무래도요.
아르바이트 면접을 마치고 나온 엉터리 서른 살 A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어지러웠다. 나는 마땅히 무엇이어야 하는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A는 그저 자신을 속이고 살아온 것은 아니기를, 자신을 부정하고 살아온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A는 자신이 그 어떤 방향도, 노선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서 있다고 느꼈다. 약 봉투에 30 이상의 숫자가 찍히는 날이 오면 무엇인가 달라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까? 온 세상이 나의 자리라고 부르는 장소가 생길까? 아니면 여전히 이곳에 남겨져 있을까?
황야에는 A만 알 수 있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런 말을 내 입으로 직접 하자니 굉장히 부끄럽고 또 나르시시즘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굉장히 많이 듣고 자랐다.
그 말들은 나에게 큰 자신감이 되었고, 때로는 나의 정체성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의 기억이 거의 희미하지만,
차 안에서 비를 바라보며 들었던 "너는 미스코리아가 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아직도 생생하다던지.
가족들은 내게 '너는 절대 얼굴을 다쳐선 안돼, 팔다리가 잘못되어도 얼굴은 절대 망가져선 안돼'라고 강요했었고,
또래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나에게 예쁘다고 자주 칭찬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뭐, 어렸을 땐 그저 예쁘다는 말이 좋았고, 그 말들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늘 '예쁜 애'였다. 메이크업 모델, 그림 모델, 사진 모델 같은 알바도 종종 했었다.
그때는 그게 뭐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저 내가 가진 외모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익숙했고, 그 관심이 나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관심은 동시에 나를 옥죄이기도 했다. 나는 점점 어떤 틀에 갇히기 시작했다.
내 행동, 내 태도, 심지어 내 존재 자체가 그 틀 안에서 평가받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기준엔 내가 특출 나게 아름다운 것도 아니라서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저울질하며 부러워했다.
이십 대 후반부터 호르몬 문제로 살이 급격히 찌고 나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놀라며 내가 뭔가 잘못된 사람인 것처럼 물어보기 시작했다.
'너 왜 이렇게 살쪘어? 서른 살부턴 살 진짜 안 빠져, 그때부터 늙어져, 못생겨져 지금 관리해야 해'
모두에게 더 이상 젊고 예쁘지 않은 내가 된 나는 초라하고 외롭게만 느껴졌다.
가끔도 지인들은 14년도의 나를 찾고, 15년도의 나를 찾는다.
그때 가장 예뻤다고 너도 알지 않냐며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 여기 있는데, 심지어 세월이 흘러 여유가 생기고 성격도 좋아졌건만(!) 모두 나에게 돌아가라고 말한다.
한국식 나이로 서른, 만 나이로 스물여덟이 되었을 때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 턱살이 미치도록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 작은 거슬림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턱선에서 볼살로, 볼살에서 팔뚝살로, 팔뚝살에서 뱃살로, 뱃살에서 또다시 다른 살로,
눈가 주름에서 팔자 주름이, 팔자 주름에서 목주름이, 목주름에서 또 다른 주름이, 그 주름 몇백 개가 전부.
결혼 전에는 얼마나 심했던지 내 세상이 거울과 킬로그램에 갇혀있는 것만 같았다.
식이 끝나고 비행기에서 친구들이 찍어준 결혼사진을 확인했을 때도, 나는 내 팔뚝과 턱살이 얼마나 나왔는지만 확인했다.
최근에 친구와 함께 <서브스턴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호러와 고어를 통해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비판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지금의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주인공들이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과 분노는 마치 내가 느끼는 감정과 닮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이렇게 슬픈 고어 영화가 또 있을까?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지금 이렇게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이 이렇게 많아도, 이 외모 정신병이 영원히 낫지는 못한다는 게, 또 많은 여성들이 그럴 거라는 게 참 마음이 아프다."
올해 5월이 되면 나는 진짜로 서른 살이 된다. 사회는 서른 살의 여성에게 많은 것을 강요한다.
젊음을 유지하라, 아름다워져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라.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무례한 강요에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알고 있다. 내 몸은 내가 살아온 시간이고, 내 얼굴은 나의 이야기다. 변화는 사라짐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하나이다. 스무 살보다, 서른 살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내 모습이 사회의 기대에 맞춰져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 않기로 결심했다.
서른 살의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더 이상 남들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며 내 이야기를 써 나갈 수 있게
서른 살의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 몸을, 내 변화를, 그리고 나의 모든 순간을.
그 사랑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고, 그리고 그 사랑이 나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또 수많은 작고 큰 외모정신병을 앓고 있을 나의 동성친구들에게도 오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지금까지 여성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 강하다는 것은 절대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서른 살을 두 번 보냈다. 정책의 변화 덕분에 정식 나이가 만 나이로 변화하면서 그렇게 됐다.
처음 서른 살을 맞이했을 때는 생각보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주변에서 20대 초반에 언니들이 30살이 되니 우울했다. 울었다. 그런 얘기들을 했어서 긴장했고 조금 걱정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왜 그렇게 30살에 다들 의미를 부여했는지 첫 서른 살에는 사실 의아했던 것 같다.
아마 많은 이들이 어릴 때 막연히 30살이 된 나를 상상했고, 그게 현실로 다가왔을 때 상상과의 괴리감이 컸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러한 부분은 물론 있었다.
어린 시절 30대가 된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줄 알았다. 어른으로서 멋진 사람이 되어 있겠지?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 같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30살이 되어도 아이 같았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물리적으로는 벗어났으나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함) 심지어 다른 이들은 미혼이기에 이해한다지만, 나는 가정을 이뤘음에도 아직까지 원가족인 부모님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살고 있다.
언제까지?라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나는 아직도 지금의 내가 아이 같기 때문이다. 30살이 두 번이나 지나갔음에도, 그렇게 지금 이 순간 서른한 살로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철이 없고 무지하다. 그러한 내가 때로는 스스로 한심하지만 때로는 또 그렇게 기댈 곳이 있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껴 그러한 거지 하며 애써 외면하게 된다.
나에게 두 번째 서른은 새로운 기회였다. 어쩌면 이건 내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 아닐까?
두 번째 서른 살에는 의미 없이 살지 마라. 두 번째 30살을 맞이하면서는 첫 30살과 달라져라.
이거 혹시 정부가 준 기회가 아닐까?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까지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자기 계발에 발을 들이게 됐다. 너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핑계로만 살던 인생에 변화를 준 것 같다. 뭐라도 들으려고 노력했고, 30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고민도 많이 한 것 같다. 그래도 엉망진창으로 흘러갔던 첫 번째 서른 살 보다 많은 마음가짐이 준비된 채로 31살의 새해를 맞이했다.
요즘 새해가 되어 나는 Coursera(https://www.coursera.org/)라는 자기 계발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는데,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유료로 1년 구독 중인데, 유료로 이용하면 수업을 완료했을 때 수료증을 받을 수 있고, 그 수료증을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수 있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영어라는 장벽이 있지만 나에겐 구글번역기가 있다. 크롬 페이지 번역도 있다.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무려 22개의 코스를 완료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자기 계발을 하면서 그래도 두 번째 서른 살을 지나 2025년 서른한 살이 되어 나는 조금 변화할 수 있었다.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래도 내가 갱생의 여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라 참 다행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예전 언니들이 말했던 것처럼 무언가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서른 살이 실패를 했다거나 무언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분기점까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난도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20대는 100세 시대를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새벽 6시에서 아침 7시 사이밖에 안 된다고.
30살도 아니 30대도 그러하다 고작 우리는 아침 7시에서 아침 8시 사이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부터 아침을 어떻게 맞이해서 어떻게 하루를 알차게 보낼 것인지 이제부터 써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아침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다들 즐거운 하루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