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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Jul 09. 2021

가야 할그곳까지,오늘도 파이팅!

올림픽대로

K는 일주일에 세 번 올림픽대로를 지난다.

사정상 살고 있는 서울의 가장 서쪽 강서에서 일을 하러 서울의 가장 동쪽까지 올림픽대로를 운전해 출근한다. 그래서 가장 많이 다니는 길, 자주 다니는 길을 꼽으라면 걸어서 다니는 길이 아니라 차로 이동하는 올림픽

대로를 꼽는다. 얼추 왕복 70킬로는 거뜬히 넘으니 일주일에 3일이면 210킬로미터, 일 년이면 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다.

올림픽대로는 모두 알다시피 도시고속화 도로다.

고속화 즉, 빨리 달릴 수 있게, 달리라고 만들어진 도로다.

그러나 역시 모두 알다시피 가장 막히는 도로가 올림픽대로다.

그래도 K에겐 집에서 직장까지 최단거리로 다닐 수 있는 길이며 큰 사건사고가 없는 이상 꾸역꾸역 밀려서라도 전진이 가능한 도로라 올림픽대로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너무 멀어 이사도 생각했으나 여러 사정이 겹쳐 한 해 한 해 지나다 보니 5년이 넘었다.      


서울의 가장 서쪽 가양대교에서 올림픽대로로 빠져나오는 새벽, 드디어 시작이다.

올림픽대로의 아침은 계절 따라, 하늘 따라 백가지로 다르다.

특히 봄과 초여름 동쪽에서 해가 뜨고 볕의 방향이 서서히 바뀌며 한강을 비추는 모습은 올림픽대로를

운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까지 하게 한다. 물론 가끔은 눈이 부셔 운전에 거슬리긴 하지만.

탁 트인 한강을 끼고 조금 더 달리면 봄에 최고인 여의도를 통과한다.

스치기만 해도 문드러질 듯 연한 연두색으로 시작해 매일 세상의 모든 초록을 다 보여주는

여의도 주변 가로수들은 봄에 가장 좋다.

차 안에서 피고 지는 벚꽃을 볼 땐 오히려 조금 더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 오랫동안 눈에 담아 두고 싶어 진다. 


여의도를 지나 한강철교 아래를 지날 땐 항상 막힌다.

가로수와 꽃으로 마음을 달래 놓곤 이젠 좀 정신 차리고 가라는 듯 바짝 신경을 쓰게 한다.

이제부터가 본 게임이다. 하루라도 붐비지 않는 날이 없는 강남권으로 들어선다.

반포대교부터 한남대교를 거쳐 동호대교, 영동대교까지 어김없이 쭉 밀린다.

줄을 잘 서야 잘 풀린다는 말이 있지만 올림픽대로에서는 줄을 잘 서봐야 거기서 거기다.

간혹 사고가 있어 특히 막히는 차선이 있긴 하지만 늘 다니는 사람은 빨리 가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

혹은 애써야 5분 더 빠르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선지 대부분의 차량은 차선을 바꾸느라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진 않는다. 간혹 깜빡이도 켜지 않고 슬쩍 들어오는 차들이 있긴 하지만 K는 짜증을 내 봤자

기분만 망가질 터 그냥 참아주기로 한다.


강남권을 벗어나면 일사천리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가로수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풍요로운 녹음이 등장하는 강동으로 진입한다.

드디어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신호다.            

 

저녁과 밤의 올림픽대로는 역시 막힌다. 그러나 이미 퇴근길이니 막혀도 마음은 편하다.

운이 좋아 일찍 퇴근했는데 더 운이 좋아 노을까지 볼 땐 정말 최고다.

저녁노을과 지는 햇볕에 반짝이는 한강은 세상 시름을 잠시지만 잊게 만든다.

저녁을 지나 밤이 시작될 무렵의 올림픽대로는 낮과는 아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한강 다리마다 다른 색과 모양의 불이 켜지고 강 건너 멀리 온갖 빌딩에서 빛을 내뿜으면

마치 다른 세상 다른 세계로 들어와 운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음악까지 곁들이면 막히는 퇴근 시간도 슬쩍 넘어가고 견뎌내게 된다.       


처음부터 올림픽대로의 경치까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다.

가장 먼저 다가온 두려움은 속도였다. 길이 조금만 뚫린다 싶으면 냅다 밟아대는 차들과 맞춰 달리려니 핸들을 잡은 손에 무리하게 힘이 들어가고 바짝 긴장해 운전한 날이면 뻗기가 일쑤였다. 그러니 고속화도로 위에서

막히길 바라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까지 갈 곳이 있으니 너무 속도를 내지 못해도 문제였다. 날씨 따라 철 따라 도로 사정이 천지차이로 달라지니 이젠 눈, 비 소식이 얼핏이라도 들리면 몇십 정거장을 가야 해도 지하철을 이용한다.


길이 막히는 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사고에 대한 위험이다.

간혹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새치기를 하는 차들도 있는데 처음엔 분이 나서 혼자 온갖 욕지거리를 해대기도

했다. 그러나 가끔 손을 창밖으로 길게 뻗어 충분할 만큼 미안함을 표시하며 순서를 앞서 가는 차들을

보고 있자면 없던 자비나 관용이 생겨나기도 했다.            


K는 퇴근 후 산책을 나설 만큼 저녁시간이 여유롭지 않다.

그래서 올림픽대로 위, 차 안에서 혼자 하는 오전 산책, 저녁 산책 ‘같은’ 시간을 갖으려 한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직 혼자 가만히.

가끔은 해결되지 않은 집안 문제가, 회사 일거리가 떠올라 온 정신이 산란스럽지만 그럴 땐 막혀도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몰라 좋다.

무언가 생각거리를 가지고 타도 하늘 위 구름에 설레고 유난히 반짝이는 강에 마음이 흘러가 버리면

생각들이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가끔은 누가 뭐랄 사람도 없으니 되는대로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시간을 잊기도 한다.

     

어떤 날은 시원하게 뻥뻥 뚫린다.

어떤 날은 과연 오늘 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게 꽉 막히기도 한다.

심지어 뚫리다 막히기도 하고, 그 반대도 비일비재하다.

사람이 사는 것도 올림픽대로도 모두 그렇다.      


K는 오늘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운전을 시작한다. 

올림픽대로에 접어들자 역시 수많은 차들이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차들이 다른 이유겠지만 한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

가야 할 그곳까지 오늘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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