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안녕“ 하고 말한다.
흰꽃나도 샤프란
몇 년 전 한번 꽃을 피우더니 다시 잠이 든 것처럼 꽃을 피우지 않았다.
8월에 꽃피기 시작하는데..
올해도 그냥 지나가나 보다.
'우리 집 누구한테 또 부추는 왜 키우냐는 말을 듣겠구나.'
날씨가 좀 선들선들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 여름 내내 등한시하던 화초들을 들여다본다.
"앗! 너 뭐야?"
반가운 흰꽃나도 샤프란 꽃대가 올라와 있었다.
흙 가까이 들여다봐도 더 이상의 꽃대가 올라오는 흔적은 안 보인다.
귀하디 귀한 한송이가 올라와 하얀 봉오리가 툭하며 터져 활짝 피어 내게 인사를 한다.
“친구야, 안녕! 오랜만이야.”
요 며칠 울적하던 참인데 꽃이 건네는 인사가 황송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이 맛에 식물을 키운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으로
가만히 꽃을 보고 있으니 긴 꽃대가 흔들거린다. 나도 모르게 옛날 노래 한 소절이 흥얼흥얼 떠오른다.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시같은 노래가 가득한 7080 시대를 청춘으로 살았던 것은 행운이었다.
쿰쿰한 향기가 나던 실내와 조명은 줄에 매달린 노르스름한 백열등이 흔들거리던 날.
나무로 만든 부실한 탁자에 앉은 청춘들이 강냉이 기본 안주에 500밀리짜리의 맥주를 한 잔 마시던 날.
내남없이 아는 노래가 나오면 다 함께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던 날.
웃는 법도 술에 취하는 법도 없었던 깡마르고 꼬장꼬장한 주인 할아버지의 맥줏집 안에선 불안정한 청춘들이 왠지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안주를 안 시키고 기본 안주만 계속 리필해도 아무 눈치를 안 주었다. 하지만
'쪼끼로 쫑하면 혼난다!"
아무리 취해도 주인 할아버지가 적어놓은 주의문을 반드시 지키던 돈이 없지만 꿈이 있는 청춘들.
검정 줄에 매달린 삼십 촉 짜리 전구는 주황색 필라멘트가 선명히 보이며 은은한 빛을 냈다.
백열 전구를 따라 흔들거리던 청춘들.
생각만 해봐도 참말로 운치 있지 않습니까?
목로주점
이연실 (작곡, 작사, 노래)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 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래 그렇게 부딪쳐 보자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하려마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 줄게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에 가자
가장 멋진 내 친구야 빠뜨리지 마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도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https://youtu.be/i_pubxfxHRg?si=D1fhJV_NT_OS8Svt
"그때 마주 앉았던 싱그럽고 푸른 청춘은 어디 가고, 내 꽃을 보고 자꾸 부추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