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대개 아침에 피고 저녁이 되면 진다.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꽃을 보게 되면 신기하다. 꽃이 밤에 피는 이유는 식물은 최대광합성량이 정해져 있는데 광합성을 많이 하면 말라죽는다. 꽃과 식물이 균형이 깨지지 않기 위해 꽃은 기온이 낮은 밤에 핀다. 수정은 야행성 나방등이 한다. 꽃이 밤에 피는 이유는 과학적이지만 사람들 눈에는 밤에 피는 꽃이 신기하기만 하다.
밤에 피는 꽃에는 박꽃, 하늘타리꽃, 달맞이꽃 등이 있다. 그중에서 달맞이꽃은 이름만 들어도 밤에 피는 꽃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달은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달이름이 붙은 달맞이꽃에도 어떤 신비감이 있다. 달맞이꽃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달을 사랑했던 요정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요정들은 별을 사랑했다. 그런데 홀로 달을 사랑하는 요정이 있었다. 별이 뜨면 달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 요정은 별이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넋두리를 한다. 별을 사랑한 요정들이 이 말을 듣고 제우스에게 일러바친다. 제우스는 화가 나서 달을 사랑한 요정을 달이 없는 곳으로 쫓아버린다. 달의 신인 아르테미스는 자기를 사랑한 요정을 찾아다녔지만 제우스의 방해로 만날 수 없었다. 아르테미스는 달을 사랑했던 요정이 죽은 뒤에야 요정을 찾을 수 있었다. 제우스는 뒤늦게 요정의 영혼을 ‘달맞이꽃’으로 만들었다.
인디언 마을에도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인디언마을에 로즈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로즈는 밤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달을 더 자주 만나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다. 로즈에게는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였다. 로즈는 화가 나서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남자를 뿌리치고 도망간다(어떤 이야기에서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로즈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고, 밤이면 달을 보며 청년을 기다렸다. 2년이 지난 후 청년은 로즈를 찾아 나섰는데 로즈는 없고 달맞이꽃만 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반집 아들과 혼인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처녀가 혼자 달구경하다 멋진 총각을 보고 넋을 잃고 만다. 양반집 아들보다 이름도 모르는 총각을 흠모하게 된 처녀는 양반집 아들과 혼인하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처녀는 마을에서 쫓겨나고 골짜기에 버려진다. 두 해가 지나고 사람들이 골짜기를 찾았을 때는 처녀는 온데간데없고 달맞이꽃이 피어있었다.
달을 사랑했던 요정,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한 처녀, 달밤에 만난 사람을 사랑한 여인의 슬픈 이야기가 달맞이꽃에게 전해진다.
달맞이꽃은 꽃이름이 상당히 우리말스럽고(?) 어린 시절 시골마을 길가나 물가,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흔히 보았던 꽃이라 우리나라 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달맞이꽃 원산지가 남아메리카 칠레라고 한다.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졌는지 모르지만 미루어보건대 우리나라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아마도 누군가 우리식으로 지어낸 이야기인 듯하다. 이야기란 것이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인 것이지만.
저수지 근처에서 자라는 달맞이꽃
달맞이꽃 학명은 ‘Evening primrose’이다. 해석하자면 저녁에 피는 '고지식한 장미'이다. 홀로 달을 사랑했던 요정을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다.
달맞이꽃은 7월에 노란색으로 줄기 양옆에서 1개씩 핀다. 곧은 줄기 윗부분에서 마주 보며 작은 줄기를 내리고 여러 송이 꽃이 핀다. 꽃의 크기는 보통 2~3cm이며 꽃잎 4개, 수술은 8개, 암술은 1개이다. 낮에는 입을 꼭 다물고 있어서 꽃을 관찰하기 쉽지 않다. 달밤에 달빛을 받은 달맞이꽃을 만나게 된다면 화려함에 반하게 된다. (이번 여름에 시골집에서 달맞이꽃을 보았다. 산속 깊은 저수지 둑에 피어 있는 달맞이꽃은 무엇을 기다리는지 홀로 고고히 피었다. 낮에 잠깐 다녀간 시골이라 밤에 핀 달맞이꽃을 찍지 못했다. 밤에는 동무들이 여럿 나와 합창을 할지도 모른다. 다음엔 꼭 찍어야지.)
달맞이꽃은 1m 정도 자라는데 줄기가 단단하고 뿌리가 깊다. 어릴 때 밤에 활짝 핀 달맞이꽃을 보면 신기했다. 하지만, 줄기에는 털이 많이 나 있어서 손을 대지 못했다. 뿌리 쪽으로 내려갈수록 붉은빛이 났고, 뿌리는 또 어찌나 단단한지 쉬 뽑히지 않았다.
꽃이 피었던 자리에서 이듬해 다시 꽃이 피어서 여러해살이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두해살이 풀이라고 한다. 아마도 처음 뿌리를 내렸던 곳에 씨앗이 떨어져 이듬해 피어나고 또 피어나니 여러해살이풀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첫해에는 원줄기 없이 뿌리잎이 배추처럼 자라다가 겨울을 지내고 다음 해에 줄기를 만들어 곧게 자란단다. 우리 눈에는 언제나 곧게 자란 줄기를 가진 단단한 달맞이꽃만 자주 보인다.
낮에는 입을 닫은 달맞이꽃
요즘은 낮에 도시 정원에서도 달맞이꽃을 만날 수 있다. 낮달맞이꽃인데 이 꽃은 낮에 핀다. 분홍 달맞이꽃도 낮에 화단에서 볼 수 있다.
예로부터 달맞이꽃은 약초로 많이 사용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피부염이나 종기를 치료하는 약재로 썼고, 뿌리를 달여서 먹으면 고열로 인한 감기나 인후염에 효과가 있다. 씨앗은 월견자(月見子)라고 부르며 고지혈증에 사용한다. 특히 따뜻한 성질인 달맞이꽃은 자궁 내 혈행을 촉진한다고 하여 여성에게 좋은 약초로 전해진다. 달맞이씨유는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레산(감마리놀레산, 오메가 6 지방산일종)을 함유하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으로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인터넷에는 달마이꽃종자유로 만든 여성용(경년기여성,월경불순) 영양제가 많이 나와 있다.
몇 해전 갱년기가 찾아온 언니가 시골에 갔을 때 달맞이꽃을 캐는 것을 보았다. 필자도 요즘 갱년기가 찾아와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체력도 약해졌다. 시골로 달맞이꽃을캐러 떠나야 할까 보다. 그리고 슬픈 달맞이꽃 이야기를 새롭게 써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