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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원 May 05. 2024

그리움과 죄스러움

1980년대 부산으로 떠나다.

오늘은 

2024년에서 2008년의 나를 바라 보았다.


2008년 

고향 여행은 나를 찾는 여행이었다면

2024년에서 2008년을 보는 오늘은

고향 여행을 회상하며

다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고 있다.


후회하지 않는

미래의 나를 만나기 위해

지금의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과거의 나에게 질문하고 묻고 답하며…

고민과 번민으로 가득 찬

현재의 나를 위로하고 있다.


나 어릴 적 살던 부산진구 전포 4동은  

지금은 e 편한 세상시민공원 1단지 가 되었다.

만약, 만약에 내가 부산을 떠나지 않았다면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그리고 나이 든 내가

부산에 있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

누구를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은 몇 명이었을까?

그리고 저기 저 아파트에 살고 있었을까?

상상해 보지 않았던

또 다른 나의 삶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 글을 정리하는 2024년 오늘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사진 속 골목 끝 집은 이웃사촌으로

오랫동안 교류했던 이모집이다.

사진 속 전체가 한 집이었다.

큰 정원과 아주 큰 연못이 있었던 집이었다.

이모집을 생각하게 하는 연못의 연꽃

제민한의원 할아버지께서 한의원 경영으로

수입이 늘면서 큰 집을 구매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대지가 넓은 집을 분할하여 할아버지는

여러 채 집을 지은 후 매각하셨다.


삼촌들과 이모도

새로 지은 각각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 난 어린 나이여서,

할아버지께서 양도를 했는지

삼촌들과 이모에게 매매했는지는 모른다.

전포 4동 이모네 집

대지를 분할하여 집을 짓기 전

큰 정원과 아주 큰 연못이 있던 집에서

나와 동갑내기 이모집 아들과

그의 남동생과 나는 주말이면 아주 신나게 놀았다.


우리는 긴 나무 작대기를 톱으로 자르고

망치로 못을 박아서 나무칼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무칼을 갖고 훈련 놀이도

실제 칼싸움 놀이도 했다.

당시 우리는 장난감을 자급자족하였다.


주말 내내 공부는 하지 않고 뛰어놀던 우리들을

삼촌과 이모는 가끔씩은 우리를 불러 혼을 내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뿐,

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던 국민학생이었다.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전포 4동을 떠나 양정4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후로 부모님과 이모와 삼촌네와의 왕래가 뜸해졌다. 

이사 후 나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웃사촌과의 거리도 멀어졌다.


내가 고등학교 때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던 날

그때 이모와 삼촌들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우리 집에 와서 그렇게 울고 가신 삼촌 모습

삼촌은 내 손을 잡고

자주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던 말...


세월이 흘러 흘러, 고향 여행을 온 나는

이모와 삼촌, 동갑내기 친구를 찾지 않았다.

아직은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제민한의원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이모와 삼촌들을 찾으려 하지 않는

애써 외면하려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그날의 삼촌 눈물이 내 가슴에 박힌 순간이었다.


살면서 인연의 끈이 끊어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인연을 다시 찾는 것은

사람으로 또 어쩌면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인연은 어떠한 의미일까?

삶에서 만나야 하는 인연은 어떤 분들일까?

고향 여행에서 나를 찾는 여행에서

인연과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과 이모네 식구들에게

그리움과 죄스러움이 북받쳐 오름을 느끼며

골목길을 돌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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