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부산으로 떠나다.
아래 사진의 골목길을 이용하면 아랫동네에서
우리 집까지 바로 연결되는 지름길이다.
큰길로 가면
국민학생 5~6학년 걸음으로 15~20분이 소요되는 데
이 길로 가면은 10분 이내로 갈 수 있다.
이 지름길을 이용하려면
다른 집의 마당을 지나가야 하기에
아무 때나 가지 못하고 그 집 대문이 열려 있거나,
열려 있어도 주인집 아주머니가 눈치를 살피며
쏜살같이 뛰어가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이 지름길을 가끔 이용하기에,
주인집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집 마당을 지난 가는 것에 예민해하셨다.
가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들키면
욕과 함께 물세례를 받으며
총알 같이 마당을 가로지르는 경우도 있다.
무섭기도 하지만 나름 짜릿하다.
대문이 잠겨져 있을 경우에는
다시 내려와 큰길로 집으로 갈 때는
시간이 더 소요되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은
가끔씩 행운을 바라며, 이 지름길을 선택한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알면 재미없지만, 모르기에 도전 의식이 생기며
가끔의 행운이 계속 도전하게 만드는 것 같다.
동네 구조가 이렇게 된 것은
부산 지형과도 상관이 있다.
부산은 평지보다는 산과 언덕이 많다.
부산 동네와 마을 그리고 골목들 중 상당 부분은
6.25 피난 민들이 집을 짓거나, 천막을 지으면서
동네가 형성이 되었다.
피난민이 정착을 하면서
산을 깎고, 터를 닦아 집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개발로 주 도로와 골목 길이 정비되면서
도시의 길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지만,
비탈길과 좁은 골목길
그리고 가구 밀집도가 높은 곳은
정비가 어려워 그대로 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형성되어
지금은 부산 명소가 된 곳이 감천문화마을이다.
중학교 때인가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
6.25가 끝난 이후
본토에서 미군이 새로 전출되어
부산에 밤에 도착했다.
전쟁이 직후인데
부산에 아파트가 많아 놀랬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아파트는 없어지고,
산을 뒤덮은
쪽방촌을 보고 다시 놀랬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부산 마을 형성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1980년 대 당시 전포동
우리 동네와 아랫동네의 마을 형성사도 비슷하다.
우리 집에서 산 정상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휴일 아버지가 쉬는 날이면
난 가끔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가곤 했다.
등산 이후 일요일 아침밥은 정말 잊지 못할
나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이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등하교 길은
1/3은 평지이고 나머지 길은
국민학생에게 좀 부담스러운 경사길이 1/3,
완만한 경사길이 1/3로
도보로 30분 정 소요되었다.
우리 집을 가려면 아랫동네에서
비탈지고 경사진 계단을 지나,
다른 집 마당을 거쳐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우리 집의 옆 골목이 나온다.
등하교 길에 지름길의 유혹은 떨치기 힘들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꾸준히 도전을 하였지만
나 같은 경우 지름길 이용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높아서
지름길을 거의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성공과 실패 확률도 요인이었지만,
주인아주머니에게 욕먹는 것과
주인아주머니가 우리 어머니를
찾아오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래서 난 6학년 때부터는
지름길을 아예 이용하지 않았다.
유년 시절의 경험은 삶을 살아가는 데,
나름의 원칙과 기준의 토대가 되고 있다.
아이들끼리의 놀이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엇이 더 가능성이 좋은 것이고,
어떠한 것이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게 했다.
어른들의 개입이 없는 어린 시절 놀이 문화는
사회를 알게 하는 좋은 방법인 듯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내 성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난 도전을 좋아하지만
그 도전이 무모하다면
다른 것을 찾는 습성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 어린 시절에 지금의 내 모습을 찾게 되었다.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고 연습하는
그런 습성이 그 시절부터 익혔던 것 같다.
난 누구이며
내 만들어 가는 내 모습은 어떠한가?
추억 여행길에서 조금씩
지금의 내 모습을 찾아가는 듯하다.
내 꿈은 무엇이었을 까?
이 동네에 사는 동안 나는...
재미있게 오늘을 하루를 사는 것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타잔과 육백만 불 사나이, 컴뱃...
TV를 보면서 그들을 흉내 내고,
하고 싶은 꿈에 대해 알아가던 시절이었다.
전포 4동 그 시절 나는
꿈을 꾸는 것보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집중했던 시절이었다.
주어진 생활 속에서
재미를 찾아 몰입했고
몰입된 재미 속에서
내가 잘하는 것을 알아가던 시기...
어른이 된 지금 난
무엇에 몰입해야 하는 걸까?
몰입된 재미 속에서
나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에서 느껴지는 차이는
재미, 몰입을 추구하는 것은 같았다.
다만...
어른이 된 후 내가 선택하고 추구하는,
몰입과 재미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 다는 것이었다.
Carpe 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