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소바와 보바리즘
1977년.
내가 가장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낸 해로 기억한다. 유치원 때였다거나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는 식의 막연한 기억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1977’이라는 숫자 자체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해 내가 정말 유독 행복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는지, 판문점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달력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집앞 골목길의 흙냄새, 소중히 모았던 딱지들, 원더우먼의 주제가, 친구들의 웃음소리. 지금은 모두 흐릿한 수채화처럼 번져 있지만, 딱 하나만은 선명하다.
음식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와 함께 먹은 그 한 끼다.
어머니는 60년대에 숙명여대를 졸업한 재원이었고, 유복한 집안의 장녀로 자라셨다. 그런데 가난한 교사인 아버지에게 시집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외할머니는 선생질하는 집에 시집가서 딸이 고생한다며 몇 날 며칠을 우셨다고 했다. 결혼 후 어머니의 하루는 새벽마다 연탄불을 갈고, 오래된 입식 부엌에서 밥을 짓고, 아들들을 돌보는 일로 채워졌다. 나는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서 연탄불 가는 것만 안 했으면 좋겠다고 버릇처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새벽에 갈아낸 연탄재는 늘 집 밖에 내놓였다. 우리는 공연히 그 재를 발로 차서, 어머니의 일을 하나 더 만들곤 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서 아들들을 키우며, 어머니의 손은 점점 거칠어졌다.
어머니에게도 반짝이는 날들이 있었을 게다. 곱게 양장을 차려입고 나를 데리고 나섰던 그날처럼.
시내에 친구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곳은 백화점 꼭대기 층 식당가, 지금 생각해 보면 신세계 백화점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백화점 식당은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마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고급스러운 일식집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왔다.
네모 반듯한 나무 상자 위에 단정하게 놓인 국수. 그리고 세게 쥐면 금세라도 깨질 듯한 가느다란 목의 하얀 호리병과 작은 종지가 탁자 위에 놓였다. 국수라고 해야 소면을 간장이나 김치에 비벼 먹거나, 멸치국물에 말아먹어 보았을 뿐이다. 이건 무슨 음식일까? 어떻게 먹는 것일까? 이런 건 그림책에서도 만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작은 종지에 우아하게 호리병을 기울여 검은 쯔유를 따랐다. 처음엔 간장인 줄 알았다. 그리고는 국수를 그 쯔유에 살짝 찍어 먹으라고 했다. 국수 끝을 그 검은 액체에 살짝 적셔 입에 넣는 순간, 내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 혀 위에 번졌다. 예상과 달리 짜지 않았고, 달고, 깊고, 그윽했다. 어린 내가 그때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맛이었다.
나는 먹는 내내 그 예쁜 자기 호리병과 사각형의 국수 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와 그 친구분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날 무엇을 샀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그 국수와 검은 쯔유와 생애 처음 느껴본 그 맛과 분위기만이 남아 있다. 그 정갈한 절차와 단아한 아름다움은 어린 내게 황홀한 허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메밀국수와 사랑에 빠졌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도 메밀국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아내가 음식솜씨가 좋아서 모든 음식을 잘해주지만, 메밀국수는 내가 아내에게 해주는 음식이다. 집에는 일식집과 같은 정갈한 메밀국수 세트가 있고, 무는 늘 갈아서 냉장고에 보관해두어 언제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입맛이 떨어지거나 날씨가 더워지면, 모처럼 냄비를 꺼내 물을 끓인다. 그러면 아내가 “메밀국수하게? 많이 좀 해” 하고 말하곤 한다. 그래도 나는 꼭 2인분만 삶는다. 메밀국수는 내게 원래 그렇게 먹는 음식이니까.
쯔유를 물에 희석하고, 갈아 둔 무와 아내가 썰어준 파를 넣어 장국을 만든다. 국수는 여러 번 헹궈 메밀 특유의 거친 전분기를 씻어내고, 물기를 빼 정갈하게 소반에 올린 뒤 구운 김을 살짝 올린다. 장국에 와사비를 조금 풀어 국수를 적신다.
찰박.
국수와 장국이 혀끝에 만드는 그윽한 단맛. 나는 다시 1977년, 어느 백화점 꼭대기 층의 식당가로 돌아가 있다.
보바리즘(Bovarysme). 플로베르의 소설 주인공 보바리 부인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자신을 낭만적인 주인공으로 착각하는 허영을 '보바리즘'이라 부른다.
매일 새벽마다 연탄을 갈고, 부뚜막에서 상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어떤 오후 한나절에 누린 짧은 허영. 어머니가 갈아내던 연탄은 검고 맑은 쯔유가, 새벽마다 내놓던 연탄재는 정갈한 잿빛 국수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날 백화점 꼭대기 층에서 맛본 것은 단순한 국수가 아니라, 그 단아한 상차림이 허락한 짧고 달콤한 보바리즘이었다.
지금도 메밀국수를 먹을 때면, 그 시절의 작고 허영심 많던, 아니, 심미적이었던 아이와 눈을 맞춘다. 화려한 시내의 백화점, 곱게 차려입었던 어머니의 옆얼굴, 생전 처음 보는 하얀 자기 호리병, 그리고 검은 쯔유 위로 조심스레 떨어지던 가는 국수 가닥들.
Bovarysme
/bɔvaʁism/
플로베르의 소설 Madame Bovary의 주인공 Emma Bovary에서 유래. 철학자 Jules de Gaultier가 1902년 개념화. 낭만적 환상 속에서 현실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자신을 실제 자신으로 착각하는 것. 현실과 욕망 사이의 만성적 불일치에서 비롯된 자기기만, 혹은 자기 낭만화.
노트: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백화점 식당에서 먹었던 메밀국수의 추억을 통해 1970년대 중산층 가정의 생활 감각과 여성 노동의 비가시성을 함께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가족의 일상을 떠받치면서도 쉽게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어머니의 수고, 그리고 백화점 식당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던 세련됨과 풍요, 도시적 삶에 대한 근대적 욕망은 제게 이 기억을 단순한 음식의 추억 이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제목으로 가져온 ‘보바리즘(Bovarysme)’을 허영으로만 보지 않고 삶을 견디게 하는 상상력의 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