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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Sep 11. 2021

태도는 자판기가 아니에요.

이젠 그만 강요하기로 해.

  아이를 키우다 보면 태도를 강요할 때가 있다. '지금의 상황'과 '너의 행동에 따른 책임'을 운운하며, 슬퍼하거나 속상해하는 마음보다 지금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요구할 때가 많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아이고,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다.'라고 다독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자랄수록, 다독임보다 '지금은 네가 그렇게 속상해할 때가 아니야.'라고 압박할 때가 많아진다.


  첫째 아이가 네다섯 살쯤 되었을까. 어린이집을 하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와 함께 자판기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커피 한잔을 뽑아 마시는 어른을 지나치게 되었다. 아이는 그 광경이 매우 신기하고 새로웠던 모양이었다. 한참을 서성이며 자판기를 둘러보고, 급기야 동전을 넣어 코코아를 뽑아 마시게 되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이나 아이는 내 손을 붙들고 자판기에 또 가자고 조르곤 하였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났을 때, 더 이상 자판기 음료에 흥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뽑기'에 대해 엄청난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다. 아이에게 자판기는 돈을 넣으면 무엇이든 뚝딱 나오는 도깨비방망이인 셈이었다.


  아이가 자라날수록 슬픈 마음과 속상함을 속으로 삼켜야 할 상황이 많아짐을 느낀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쉽사리 나갈 수 없는 상황이 잦아진다. 개학을 맞이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피곤함에 짜증이 날 때가 많아진다. 자신의 것들을 하루 이틀 동생에게 양보하다가 문득 더 이상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솟구칠 때가 있다. 이것이 비단 아이의 마음뿐일까? 서른여덟이나 먹은 내게도 이런 마음은 쉼 없이 일어나 요동친다. 출근하기 싫어지는 아침, 일터에서 시시각각 마주하는 쉼에 대한 욕구,  소통이 되지 않아서 찾아오는 관계의 어려움이 그런 마음일 것이다.


  나의 첫째 딸은 상황과 당위성 때문에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때마다 속상함을 숨기지 않는다. "나도 알아! 그래도 나는 속상하단 말이야!" 이러한 광경은 첫째 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둘째 아들은 더 가관이다. "흥! 그렇게 말하지 마! 엄마 미워!"라고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 아이들에게 '지금의 상황',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객관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나열해줘도 어른인 내가 원하는 '태도'가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고장 난 자판기에 아무리 동전을 넣어도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은 고장 난 자판기일까?


  적절한 상황에서 올바른 태도를 갖는 것이 '예의 바른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A일 때면 B의 마음을 가져야 해.', 'C라는 상황에서는 네가 이해하고 넘어가야지.'라는 식의 공식을 쥐어주었다. 돈을 넣으면 무엇이든 나오게 되는 자판기의 투입과 산출의 기본 방식처럼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자판기처럼 일대일 대응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당연하게 '상황'을 넣었으니 '태도'가 나오길 바랐다. 속상해하는 아이의 마음에 대고, "아니야. 지금은 속상할 때가 아니야."라는 이상한 공식으로 순응을 요구했다.


 며칠 전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이야기가 나의 무릎을 치게 했다.

아이들이 '공격성'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공격성'이라고 하면, 어감이 나쁠 수 있지만 공격적인 것과는 달라요. 공격성 중에서도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정상적 공격성'의 발달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군가 함부로 대하면, "왜 그러세요?"라고 물어볼 줄 아는 것, 바깥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부당한 것에 항의할 수 있게 하는 '정상적 공격성의 발달이 필요하죠. 이렇게 정상적 공격성이 발달하면, 아이는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고 지나치게 공격적이지도 않게 됩니다.

아이의 부정적인 마음의 표출은 예의 없는 것이 아니다. 슬프고 화난 마음을 말한다고 해서 올바른 태도를 갖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강요와 태도의 요구로 인해 고장 난 채로 자라게 될지 모를 일인 것이다. 나의 태도부터 '예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건강'한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속상한 나의 마음도 '이래선 안돼'라고 모른 척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야 지친 너의 마음을 향해 '이해'와 '수용'의 손을 내밀 수 있게 될 것이다.


  뾰족하게 날이  너의 마음이 네가 가진 태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미 너도 알고 있는 정답을 강요하며, 원하는 태도가 나올 때까지 타당하고 당연함의 동전을 밀어 넣는  따위는 그만둬야 한다. 내가 타당하고 당연하다며 밀어 넣을 때마다, 너의 마음이 정말 고장 나게 돼버릴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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