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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Oct 29. 2023

택배 배달 일지 2화
( "밤12시까지 배달하다")

"택배 기사의 눈으로 본 세상: 감동, 분노, 그리고 희망"

어느덧 택배 배달일을 한 지 1주일이 지났다. 정확히 5일 되는 날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그 과정을 풀어본다. 택배 배달 완료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기 위해 4, 5년 이상을 일한 팀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래서 택배 스캔 완료를 잡는 편법들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방법을 실행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바로 실행한 나에게는 편법이 맞지 않았다. 조금의 편리함과 시간 절약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오히려 나를 괴롭혔다.


정해진 규정대로 안하고 편법을 쓰는 것, 물론 잘못된 방법은 아니다. 왜냐하면 프로그램 상에 그러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택배 배달 물건을 모든 사람을 직접 만나서 건네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도 안 되고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일하러 가서 집에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이 일상화 되었고 오히려 만남을 꺼리는 분위기 자체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택배하기에는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도 사실상 끝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라 택배도 점차 바뀌어 가는 실정이기는 하다. 점점 다시 사람들이 집에 있는데 문앞에 두고 갔냐는 둥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형국이다.


아 그전에 내가 사용한 편법에 대해서 이야기 해본다. 쉽게 말하면 규정이란 이런 거다. 누구에게 주었는지 기재하고 물건은 어디에 뒀는지 고객과 반드시 통화 후에 놔둬야 하는 것이다. 편법이란 이러한 과정을 일일이 기재하지 않고 일괄로 본인 체크하고 전송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어차피 고객들이 이제는 알아서 택배가 언제 오고 어디다 두는지 알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고가의 제품이 아니라면 잃어버리더라도 버는 거에 비해 손해가 작으니 감수한다는 마인드다.


사실 나도 배달을 해본 결과 그런 규정들을 지키면서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고 하루 배달해야 할 물량이 너무 많다. 게다가 시간이 지체되어서 늦게 오면 다른 고객들에게 혼쭐이 난다. 그냥 문앞에 뿌려버리고 클레임 몇 건만 해결한다 식으로 하는 게 이해가 되었다. 물론 고가의 제품인지 아닌지 사실 구별이 어렵다. 핸드폰이고 뭐고 그냥 뿌리는 배달 기사들도 틀림없이 있다.

 

아무튼 나도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고 그 방법을 배워 실행에 옮겨 보았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배송이 증가했고 고객들에게 클레임 전화가 배달 중에 빗발치면서 멘탈이 나가게 되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흐름에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주소지에 밥도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때 내게 들은 생각은 하나였다. "아 그냥 다 버리고 가고 싶다."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내 마음속 심정은 그러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마음은 급해졌고, 배달 주소를 찾기 위해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콜센터에서는 오배송을 바로 처리하라고 독촉한다. 그렇다고 처리 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오배송한 곳의 물건을 그 집에서 들고 들어가 버리면 난감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명백한 내 잘못이기에 물어봐야 한다. 그래서 배달하다 말고 오배송 지역을 몇 번 왔다갔다 하니 시간 소요를 너무 많이 해버렸다. 그냥 천천히 놀면서 서서히 하는 게 빠르게 움직이고 뛰어다니는 것보다 빠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뛰면 체력이 빠지고 그렇게 되면 정신 상태도 약해진다. 쉽게 주변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된다. 가끔 불친절한 택배 기사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전화 받을 시간조차 없다. 밥은 고사하고 몇 일을 빵으로 떼웠다. 그렇게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곳이다. 그냥 남들이 보았을 때는 "아, 택배기사가 무슨 시간이 없어 할 것 다 하던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온 지 얼마 안 되서 지역이 생소한 내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밤 12시까지 배달을 해서라도 완료한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랐다. 끝없는 물량에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시간은 참으로 생소한 느낌이었다. 가끔 일 안하고 쉴 때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할 게 없었는데 택배하니까 시간의 소중함을 엄청 느끼는 중이다. 어쨌든 그렇게 한 번 호되게 혼이 난 후 이후에는 다시 점검을 하는 쪽으로 변경을 하게 되었다. 일괄 전송은 절대로 하지 않고, 사소한 사항이라도 기재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다. 직접 가져다 준 곳은 사실 거의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비대면으로 물건을 놓고 갔을 때 터진다. 주소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다른 아파트랑 착각해서 잘못 가져다 주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귀찮아서 안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분명 시간은 더 걸린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오배송이 날 확률이 적어져서 다른 지역으로 쉽게 이동하지 않아도 되며, 고객에게 클레임 전화가 오더라도 사진을 보여주면서 응대하면 거의 대부분 수긍한다. 전화의 대부분은 본인이 물건을 받지 않아 생기는 일이다. 분명 가족들이 가져와서 집에 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확인을 귀찮아하거나 눈에 바로 보이지 않으면 전화를 바로 건다. 계속해서 확인하면 결국 집안의 냉장고나 어딘가에 누군가가 놓아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고객 스스로가 사과를 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되지만, 또 다른 생각으로는 전화를 처음부터 안 받았으면 알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예전에 어떤 택배 회사에서는 전화 문의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책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인들에겐 1통화일지라도, 기사들은 훨씬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해야 해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사진을 보내주면 대부분의 클레임이 사라진다. 증거 사진을 본 후에는 굉장히 쉽게 수긍하게 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 날 이후로 나는 다시 원래의 방식으로 돌아갔다. 설령 시간이 좀 더 걸린다 해도 내 방식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로 그 이후 클레임 전화가 크게 줄었다. 아예 안 오는 날도 있었고, 오더라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


어쨌든 밤 12시까지 배달을 해야 했던 그날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많은 신호 위반 카메라와 제한 속도 30km 구간이 있는지, 지도를 봐도 찾을 수 없는 주소가 왜 이렇게 많은지... 그리고 전화를 걸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데, 받지 않으면 물건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그런 심적인 부담감도 컸다.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건지, 처음부터 모든 기사들이 이런 고충을 겪는 건지, 내 자신에게 여러 질문들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하지만 같은 지역을 매일 다니니까 점점 익숙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객들이 오후 6시 이전에 물건을 받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서 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더 벌고자 해서 많은 물량을 받기보다는, 지역을 천천히 익혀나가고,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점 좋아져야 일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배달 에피소드 3가지"


배달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3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다 먹는 한 택배기사의 모습이었고, 두번째는 택배를 집 앞에 던지고 간다고 욕하는 할머니, 세번째는 엘레베이터에서 인사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택배 기사들이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밥을 안 먹는 이유는 일에 집중이 잘 되는 것도 있지만, 그 시간이 배달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후 6시 이후가 되면 귀가하는 사람들로 인해 주차가 어려워 배달에 어려움을 겪고, 원래 많은 물량을 소화하려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 택배 기사들이 파업할 때 보면 남의 물건으로 인질 잡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직접 배달해보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빵과 우유, 삼각김밥으로 떼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애처롭게 보였다.


할머니는 택배기사가 물건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가서 그로 인해 쌀이 터졌는지 피해를 본 모양이었다. 그때 내가 든 생각은 쌀을 좀 치워두던지, 택배를 잘 놓을 수 있게 공간을 좀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항상 집에 사람이 있는데 왜 두고 가냐고 화를 낼 때가 있다. 그때 든 생각은 어차피 대면해봐야 할 말도 없고, 물건만 잘 두고 가면 더 이상 볼 일이 없는데 왜 그럴까하는 의문이었다. 오배송은 잘못 가져다 놓은 거니 할 말이 없지만, 제대로 된 주소에 비밀번호까지 걸려 있는 곳에 두고 가는데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다. 200명의 사람과 전화통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직접 대면해서 전달해 주려면 저녁 12시가 되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내 집에 오는 사람이 반갑고 말 한마디라도 정겹게 나누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가 빨리 받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도 빨리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 집에 사는 아이와 같이 탔다. 문 앞에서 아이에게 물건을 전달해주고 인사하던 아이의 모습이 생각났다. 경계심에 서 있고, 낯선 사람을 회피하는 경향이 아닌, 안녕히 가라고 인사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사람마다 성향이 모두 다르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마음이 닫혀버린 사람들을 볼 때면 안타깝다. 나도 어느덧 흉흉한 어른들의 시선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했다.


대기업의 횡포로 단가를 후려칠 생각만 하지 말고, 적정한 수수료와 함께 서비스를 개선한다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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