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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Nov 05. 2023

택배 배달 일지 3화 ("택배의 오디세이")

미지의 배달지로의 여정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5시에 눈을 떴다. 평소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는 내게 아침은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이다. 전날의 치열했던 행적을 뒤로하고 어제의 착불비에 대해 생각한다. 현금을 미리 준비해서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미리 준비하지 못해 계좌 입금을 약속하고 물건을 주지만 역시나 입금을 안 하는 사람이 생긴다.


입금이 귀찮아서 안 할 수도 있고,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닌데 물건이 와서 돈을 주기 싫은 마음에 입금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행한 정당한 일에 돈을 받지 못할 때면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주변 동료들이 말해준 것처럼 그런 일이 발생하면 수취 거부로 반송 시키라는데 전화도 안 받고 집에는 아무도 없고 계속 그 집만 신경쓰자니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었다.


다음에 또 왔는데 착불비를 안 주면 반송시키기로 다짐했다. 애초에 착불 제도라는 것을 없애야 하는데 왜 존재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일부러 기사들 고생시키려고 만든 제도인지, 서로 불편한 게 한 두 개가 아닌데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택배비를 일부러 날로 먹으려고 하는 건지, 제도의 취약성을 노리고 계약한 거 보면 나쁜 놈들이 많은 것 같다. 고쳐질 때까지 투쟁하고 싸우는 것만이 답인 것 같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우려 반, 기대 반 속에 역시나 일이 또 터졌다. 그것은 택배지 주소가 이상한 곳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도로명 주소가 그렇게 잘 되어 있음에도 못 찾는 곳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티맵이나 카카오맵 등 네비로도 찾을 수 없는 곳이 있었다. 근처만 가면 사라져 버리고, 지도에 분명히 표시되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이 있으며, 네비는 가라고 하지만 길은 막혀 있는 곳들이 있다.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분명한 것은 혹시나 하고 내가 잘 모르는 곳이라 낮에 간 게 신의 한수였다. 어두웠다면 아마 전혀 찾지 못했을 것이다. 도무지 입구를 찾을 수가 없고 큰 도로를 빙빙 돌기를 몇 번 한 후 위성사진으로 샛길이 있는 것을 보고 진입했다. 아직도 이 경기도에 개발이 되어 있지 않는 도로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처음에는 진입로를 봉쇄했길래 아니 어디로 들어가라고 이렇게 만들었나 불만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잘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길을 헤매서 잘못 진입하는 날에는 많은 사고가 일어날 법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는 사람만 진입하고 되도록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면 잠길 것 같이 낮은 도로에 차량은 한 대밖에 지나다닐 수 밖에 없고 나가는 출구가 없어서 저녁에 왔으면 끔찍할 뻔 했다. 그나마 같이 일을 하는 형이 동승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나 혼자 진입해서 혼자 허우적 댔다면 빠져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어떤 곳은 지도상에 길이 있어 진입했지만 길은 막혀 있고 이 집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는 곳이 있었다. 결국 도보로 수차례 확인했고 결국 찾아냈다. 보물찾기 같은 이런 실태는 찾았으니 망정이지 못 찾고 헤맸을 때는 너무 힘들었다. 다음 배송 지역에도 가야 하는데 고객은 전화도 안 받지 길은 모를 때 멘탈이 붕괴되었다. 다행히 끝내 구석구석 뒤져서 찾아냈고 고객과 통화가 되어 원만히 해결 되었다. 또 다른 곳은 산꼭대기에 지은 회사였다. 진입로를 못 찾아서 빙빙 돌아서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찾아갔다. 경사가 심해서 겨울에 이곳에 택배가 나오면 어떻게 전해줄지 막막했다. 그냥 밑에 세워놓고 수레 끌고 올라가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현재 맡아서 하고 있는 구역은 그야말로 택배하는 사람들이 기피할 만한 장소인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버티다가 자리가 나면 바로 옮겨가고 신입들의 무덤처럼 여겨졌다. 택배쪽에 이모부가 일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지역은 쉬는 날에라도 찾아가서 미리 지역을 익혀놔야 배달하기 수월하다고 이야기 할 정도이니 악명 높은 곳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다른 택배사들은 길도 잘 찾고 빠르게 배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너무 징징 댄 거 같아서 우는 소리는 그만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 배달을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 다음날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자신도 택배기사인데 택배 물건을 보아하니 주소도 이상하고 그곳에 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같은 건물이 4개나 있는데 그 중에 잘못 가져다 놓으신 거 같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나와 동종업계에서 일하시는 분이라 조회가 가능했고 내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물건을 배달하고 찍은 사진을 보니 주소가 건물 이름만 있고 도로명 주소가 없던 것이었다. 그분이 다행히도 고객에게 연락해서 직접 물건을 전달해줬다 하니 참으로 고마웠다. 물론 고객이 물건을 받지 못했다고 연락이 오면 찾으러 갔겠지만 그분 덕에 집에서 더 쉴 수 있었고 앞으로는 주소 확인을 정확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지도 앱을 많이 사용하는 시대다. 경로는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 길을 따라가면 대략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보장된다. 그런데 그 길이 어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차량 진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택배를 할 때 이런 문제에 부딪히면 그 때마다 멘탈이 흔들려서 이런 일에 더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완벽하다고 자만하지 말고 더 관심있게 물건을 보고 배달해야 겠다.  


"이모부의 전화"


택배를 4년 전에 4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뒀다. 이전 회사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해서 그만뒀다. 돈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욱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배달하는 지역을 관장하는 팀장과의 불화 때문이었다. 이모부의 소개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팀장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팀장에게 잘 보여야 했고, 일을 배운다는 명목하에 무보수로 15일 가량 일해줬다. 다들 그런 식으로 배운다고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이기 때문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초반만 버티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팀장의 횡포에 견딜 수 없었다.


커피값과 프린트 인쇄비 명목으로 월 2만원 거출, 팀장의 배달 오래 걸리는 지역 떠넘기기, 내 배달 물량이 끝나면 저녁에 본인 구역 배달 요청하기, 아침마다 커피 타게 하기, 다수의 물량 입고 시 본인 스캔 잡기 등, 신입에게 돈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등 남을 이용해 먹는데는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 사람들이 모두 팀장의 횡포에도 그냥 수긍하고 지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팀장이라는 명목하에 그 사람이 시키는 행동에 대해 반문 한 번 하지 않고, 먹고 살아야 되니까 그냥 순응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먹고 살려면 그런 부당함 정도는 참고 지내야 한다는 마인드였다. 참으로 치사한 방법이었다. 위에다가도 이야기 해볼까 했지만, 생각보다 그 팀장의 위치는 견고했고, 결정적으로 이모부에게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어차피 다시 돌아오라는 이직 제안도 받았으니, 미련없이 아무 말 하지 않고 떠났다.


정의감을 불태운다면 맞서 싸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사실 내 갈길 챙기기 바빴다. 한 명이라도 동조하는 이가 있었다면 싸워봤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만둔다 했을 때 같이 들어온 동기는 자기 친구를 내 자리에 넣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같이 욕할 때는 언제고, 일자리가 생긴다니까 좋아하는 그 모습은 현실 사회를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 같았다.


어쨌든 그때는 그렇게 그만두고, 4년 후에 다시 복귀를 했다. 다행히 이전에 그만뒀던 그쪽 지역은 아니다. 배달하기에는 그때보다 어려운 지역이지만, 이곳 팀장은 전혀 다르다. 돈을 거출하지도, 본인 배달 물량을 시키지도 않는다. 물론 아직 얼마 안되서 모를 수 있지만, 일단 그때는 첫 인상부터 별로였다.


내가 들어간 지역은 배달이 어려운 지역이라 모두가 기피하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스트레스가 없어 마음은 편하다. 이모부가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는 그냥 나 스스로 하고 싶었다. 도움 준다는 말은 고맙지만, 그때 얻은 상처는 꽤 크다. 그냥 명목상으로만 알겠다고 말은 했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다. 개인사업자이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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