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트업 입사와 퇴사의 이유
10개월 전 스타트업을 퇴사했다. 스스로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실은 경영악화로 인한 비자발적 퇴사였다. 한창 번창하던 시기에 스무 명이었던 인원은 세 차례의 고용 감축 후 다섯 명이 되었다. 몇 걸음 남지 않은 런웨이를 조금이라도 늘리려면 이젠 내가 빠질 차례라는 게 재무담당자로서 내린 결론이었다. 한 명은 육아휴직을 선택했으니 결국 대표님 포함 세 명이 남게 되었다. 남은 셋이 조금 더 힘을 내 매출을 만들고 지원사업에 도전하면 근근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 사이 벤처 투자시장이 살아나 추가 투자를 받는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지 모른다가 당시의 생각이었다. 계산대로 런웨이가 늘어났고 세 명은 두 명이 되었지만 아직 회사는 생존중이다.
4년 전, 그곳에 입사할 때의 각오는 실로 우렁찼다. 여기가 회사원으로서 내 마지막 직장이다. 경제적 자유를 얻고 파이어 족이 되는 거야! 애석하게도 지금 나는 다음 직장을 구하는 중이다.
스타트업을 취사선택하는 구직자가 있겠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구직자가 있을 것이다. 부디 이 글이 스타트업 입사와 퇴사를 고려하는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스타트업 입사와 퇴사의 이유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는 친구에게 처음 들었다. 그러고 보니 10년도 넘은 일이다. 친구의 (나도 아는) 친구의 형부가 공부를 마치고 창업을 했는데 젊은이들끼리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라 다들 제 할 일을 찾아서 열심히 그러나 자유롭게 일한다고 했다. 오, 그런 회사도 있구나. 실리콘 밸리 배경의 미국 시리즈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합류하고 싶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대단하네! 거기까지였다. 대기업에서 그룹 공채를 수십 명씩 채용하던 시대에 회사원이 된 내게는 아직 딴 세상 이야기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몇 년 후, 그 스타트업이 M&A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수한 모회사가 상장사라 관련 경력이 있는 재무 인력을 찾고 있다는데 이직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왔다. 이제는 자회사가 된 그 회사의 재무팀장 자리였다. 대표님은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았고 평균 연령 삼십 대 초반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가끔은 음악도 듣고 맥주도 마시며 일을 한다나. 상상 속에서 나는 이미 둠칫둠칫 리듬에 맞춰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10년 간 거쳐온 직장은 상하 체계가 분명했고 당연히 서로를 직급으로 부르는 경직된 분위기였다. 가장 솔깃한 건 출근 시간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내게 9시 출근은 매일의 도전이었다. 1시간이나 여유가 생긴다니 그럼 출근 전에 요가도 하고 맥모닝도 먹을 수 있겠는데! 지금은 스타트업뿐 아니라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대기업도 꽤 많지만 불과 몇 년 전인데도 그땐 흔치 않았다. 그렇게나 단순하게 10시 출근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입사를 결정했다. 1시간 늦게 출근하면 1시간 늦게 퇴근한다는 당연함을 간과한 채로.
첫 번째 스타트업은 돌이켜 보면 이런 시답잖은 이유로 입사했지만 두 번째 스타트업은 조금 더 깊은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출산과 육아 휴직 후 복귀한 회사는 기존과 같았지만 달랐다. 신임대표 및 인력 일부가 퇴사해 다시 창업을 했고 나도 그곳으로 가게 됐다. 사업부가 세 개였다 하나로 줄었으니 업무량이 부쩍 줄었다. 기존의 30%의 시간만 할애해도 업무를 끝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모회사가 없으니 제출할 리포트들이 사라졌다. 넘치는 시간에 심심해진 탓인지 미래의 고민이 깊어졌고 종국에는 심심해 돌아버릴 지경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다시 누릴 수 없는 축복의 시기였는데 그땐 얼마 남지 않은 삼십 대의 에너지가 활활 타올라 이렇게 내 인력을 낭비하느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때마침 대학 선배가 최근 창업한 핀테크 스타트업에 이직했는데 재무 인력이 필요하니 주변에 추천할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들어보니 비즈니스 모델이 꽤 흥미로웠고 충분히 시장 수요가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 점이 가장 내 구미를 당겼는데 바로 아직 재무 업무량이 적으니 비즈니스 업무도 일부 맡길 생각이라는 거였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업무! 이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나를 추천했다.
입사를 결정한 다른 이유도 있었다. 스타트업의 생애주기를 알게 된 나는 다시 스타트업을 간다면 이미 엑시트 한 회사보단 초기 스타트업에 가고 싶었다. 엑시트를 한 회사는 소위 먹을 게 남지 않은 곳이다. 기왕 스타트업에 갈 거라면 초기 멤버가 유리하다 생각했다. 재직 중이던 회사는 재창업을 했으나 이미 개발자 위주로 지분 구성이 완료된 상태였고 직원들 또한 스톡옵션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없었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고 있으니 내가 도전적인 포지션으로 가는 게 밸런스가 좋을 거라 생각했고 사십 대가 되면 다시 이런 도전은 못할 거란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두 번째 스타트업을 선택했고 만 3년 후 경영악화에 따른 자금난으로 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