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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혼잣말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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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산팔육 Nov 26. 2019

2019년 말에 쓰는 자기소개


1986년 2월 7일에 태어났다. 그 당시 2월생은 일곱 살에 학교를 보냈는데, 그 탓에 나는 아직도 서른다섯 살과 서른여섯 살을 오가며 살고 있다. 연장자 편의를 향유하기 위해 주로 서른여섯 살로 살았으나, 86년에 태어나 서른여섯 살이 되기 위해서는 매번 혹독한 입증의 부담을 안아야 했다. 근데 그 논리가 친구들이 서른여섯이니까 정도의 궁색한 수준이고 지난 35년간 한 번도 증명된 적은 없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은 암만해도 없다. 1남 2녀 중 막내라 다들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하는데 암만해도 그 기억이 나질 않는다. 들어보면 큰누나처럼 흥이 많지도, 작은누나처럼 독하지도 않고, 그저 수더분하고 혼자 블록을 쌓고 노는 아이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수차례의 자아분열을 경험하고 있는데, 아마도 지금의 나와 가장 비슷한 자아를 형성했던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지금의 나와 가장 다른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탐욕이 많고 유명세를 좇으며 복수에 능한 아이. 6살 많은 작은누나의 시를 훔쳐 교내 우수상을 타고, 필요할 때면 같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의 아들로서 지위를 십분 이용했다. 소풍을 가서는 아이돌 그룹 행세를 하고, 이를 위해 매번 친구 집에 모여 각자 파트의 춤을 연습했다. 지고는 못 사는 성미 탓에 친구 가방에 김 가루를 털어 넣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동정심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에 송아라는 지체아가 있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던 송아는 수업 시간에 혼자 고함을 치거나 도시락을 까먹었다. 유난히 피부가 하얗고 귀염상에 외양만은 늘 깔끔했던 송아를 나는 살뜰히 챙겼다. 아이들에게는 반장인 탓에 챙긴다고 둘러댔지만 나는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동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그 관계는 비극이 된다. "너 송아랑 좀 닮은 거 같은데?"라는 시답잖은 농담 이후로 나는 송아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왕따였던 송아는 반장의 비호가 사라진 다음부터는 좀 더 적극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함께 유명세를 좇는 아이들에게 송아가 얻어터졌던 날, 담임은 아이들 대신 송아의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며칠 후, 송아는 우리를 떠났다. 어른들 소문에 송아 엄마가 고집을 꺾고 송아를 특수학교로 보냈다고 했다.


그 사건 때문이었을까. 나는 중학교에 가서부터 조금씩 착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것의 더 큰 계기는 지금의 부산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한 반이었던 상현이, 승환이, 준규, 봉주는 모두 한없이 착한 심성의 아이들이었다. 복수가 버릇이던 나는 처음으로 내가 악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성실하고 이타적인 그들과 피시방을 다니며 나는 아이템처럼 성격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성격 개조가 끝나던 중학교 3학년 즈음 나는 말이 없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주로 만화책을 읽거나 예쁜 여자 상상을 했다. 그때 친척들 사이에서는 내가 좀 이상해졌다는 말이 돌았다. 아이가 이상하다기보다 급변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후로는 대체로 비슷한 성향을 유지했기 때문에, 한때 내가 점잖은 사촌 형의 성미를 긁다 결국 힘에 못 이겨 광광 울어대던 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공부에 올인했다. 그때쯤 되니 그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부산 친구들과 다른 학교로 배치되는 바람에 더 이상 피시방에 갈 일도, 성격을 개선할 일도 없었다. 승부욕은 살아있어서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하는 얘기는 모두 받아 적었다. 또한 나는 학교에서 졸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깨어있는 내 후순위 아이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흡사 전형적인 안경잽이의 자아였다.


다만, 나는 책을 읽거나 세상사에 대해 숙려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적 연령은 성격 개조가 끝나던 중학교 3학년 무렵에 멈춰 있었다. 그 때문일까. 당시 학교에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무원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교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정부는 이에 대해 늘 미온적이었다'라는 문장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고3 나이에 이미 '미온적'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던 무원이는 아직도 내 마음속 전교 1등으로 남아 있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나는 유명세를 좇던 어릴 적 자아로 다시 살게 된다. 대학에서도 키가 쑥쑥 자랄 만큼 이차 성징이 늦었던 나는, 막둥이가 아닌 외려 신입생으로서, 친누나가 아닌 선배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다. 당시 나의 싸이월드는 '눈부신누님', '늘씬한누님'들로 가득했다. 아마도 내 지적 연령은 그때까지도 중3에 멈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용감한 아이였다. 교양 수업에서 만난 아이를 좇아가 번호를 딴 것이 자랑이 되고, 기숙사에서 서빙을 하던 누나와는 기어이 밖에서 밥을 먹었다. 아마도 '완벽한누님'이 그 누님이다. 그렇게 사랑에 직진하던 나는 군대에서 지독한 짝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놈의 승부욕 때문에 2년 동안을 반쯤 미친 상사병 환자로 살았다. 그럼에도 휴가를 나와서는 잊지 않고 눈부신누님, 늘씬한누님, 완벽한누님들과 밥을 먹었다.


그런 요망한 아이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은 '독서의 경험'이었다. 군대에서 시작되어 복학 이후까지 지속되었던 그 놀라운 첫 경험으로 인해 나는 정말로 이상한 아이가 된다. 설명하자면 무척이나 긴 얘기가 될 텐데, 가령 "누나 저 아직 살아있어요~"라고 쪽지를 날리던 아이가, "깊은 생각에 빠지다 보면 외부의 대상에 기억과 이성을 고정하게 되는데 현실의 긴요한 것을 잠시 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울 때가 있습니다."라고 쓰는 아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감성 과잉과 문장의 늪에 빠져 많은 글을 쓰게 된다. <나는 미(美)를 위해 죽었다>, <오후 네시>, <군대에서 반말했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 <무용지물로 끝나는 새드 스토리>, <너가 문득 웃길래>, <7월의 어느 비 오는 오후,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같은 글들을 방구석에서 썼다. 절반은 베낀 것이고, 절반은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들이었다. 그 무용한 집필활동을 대학교 4학년까지 지속하게 된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번듯한 자격증 하나 없이 무려 스물다섯(또는 스물여섯)이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간의 모든 낭만을 접고 실사구시를 다짐하게 된다. 마침 그때 나보다 똑똑해 보이지 않는 친구가 합격했다는 이유로 행정고시를 시작했고 2년 반 만에 그 친구가 나보다 뛰어났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고시를 한 덕분에 지금의 아내 유리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행정고시 낙방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사무관 대신 회사원이 되고는, 집에 도착해 유리와 함께 TV 앞에 앉아 밥을 먹는 게 유일한 낙이 되었다. 집에 먼저 온 날은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잠이 든 적이 많았는데 가끔 송아가 나오는 꿈을 꿨다. 그렇게 침대와 TV 앞을 오가며 지내다 우리는 서하를 가졌다. 큰 축복과 작은 번민의 시작이었다. 남들도 다 겪는 그 육아의 부침 속에서 나는 말 못 할 자아분열을 경험하며 유리에게 많은 죄를 지었다.


이 마지막 자아에 적응할 즈음 나는 다시 글을 쓰게 된다. 묻지도 않은 아빠의 인생을 미리 설명해두기 위해, 그 기이하고 죄 많은 일생을 고백하기 위해서. 그렇게 지금까지 <엄마 어디가>, <롯데>, <외할아버지>, <나는 왜 이렇게 졸보가 되었나>, <혼잣말>, <나이 듦에 대하여>, <군대 이야기>, <인생에 대하여>, <봉주>, <어느 날 현관을 나오며>, <문장의 역사> 같은 글들을 퇴근 후 방구석에서 쓰고 있다.


돌이켜보니 어떻게 그토록 빈번히 자아의 변동을 경험하였나 싶다가도, 그 모든 자아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곧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탐욕은 식욕이 되어 혼자 2인분을 시킨 후 잔반을 양산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쓰는 글들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유명세를 좇던 버릇이 남았기 때문이며, 송아 꿈을 꾸는 날에 눈물이 나며 잠에서 깨는 것은 여전히 동정심이 많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자아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경험은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자아를 총동원해야 한다. 말없이 세상사를 숙려하다가도 가요가 나오면 아이돌 행세를 하고, 졸음을 이기며 블록을 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또 성미를 온화하게 개선할 줄 알아야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엄마 아빠의 인사도 넙죽 받을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하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자아가 없다.


그래도 아빠가 된 덕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서하는 나보다 훨씬 선하고 이타적인 아이라는 것. 유리는 늘 눈부시고 완벽한 엄마였다는 것을. 혼자 블록을 쌓고 노는 나를 보며 엄마가 지었을 자랑스러운 표정과 아빠는 틀림없이 나의 모든 자아를 기억하고 있음을. 또 내가 삶의 결정적 순간을 쓰기 위해 애썼다는 것과 그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그래서 그 시절, 외양만은 늘 깔끔했던, 송아 곁에도 분명 모든 자아를 총동원하던 엄마가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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