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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혼잣말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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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산팔육 Nov 20. 2019

군대 이야기

8월의 뜨거운 아침이었다. 전역한 친구들의 무용담에 이미 기합이 바짝 든 아이들이 혹시 아는 친구라도 없는지 서로를 쳐다보았던 날은. 그렇게 아이들은 운동장이 아니라 연병장이라 부르는 곳에서 오(伍)와 열(列)을 배우며 훈련소의 첫날을 보냈다. 아는 친구 하나 없이. 그날 밤에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는 방송이 있었다. 나는 부모님께 군대에서 일어날 어떤 일도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겁니다라고 썼다. 마치 평행우주에 있다는 듯이.


한 달 후 자대로 배치받았을 때,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동기 3명이 있었다. 키가 크고 하얀 아이와 키가 크고 까만 아이, 그리고 키가 작고 하얀 아이가. 나는 처음 보는 거대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키와 피부색으로 그들을 겨우 구분하며 관등성명이라는 걸 배웠다. 관등성명이란 누군가 어깨를 치면 이병 박.희.원.이라 쩌렁쩌렁 대답하는 것. 관등성명이 익숙해질 즈음 나는 동기들과 함께 군가를 배웠다. 어느 가혹한 작곡가가 군가를 무려 10여 곡이나 만들어 놓았다.


그러고 보면 군대는 참 배울 것이 많았다. 이불을 개는 방법과 빗질을 하는 방법, 심지어 손걸레를 빨 때도 정해진 법도가 있었다. 바느질과 다림질을 하는 방법, 매듭을 묶는 방법 등 몇 가지는 군 밖에서도 유용한 기술이 되었다. 그때 배운 일광소독으로 서하의 인형을 햇볕에 말려주기도 한다. 문제는 선임마다 알려주는 법도가 제각각이어서 서로 다른 선임들에게 서로 다른 이유로 혼이 난다는 것이다. 그때 다른 선임 탓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더 이상 선임과 법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즈음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독서를 나는 군대에서 했다. 그 탓에 질리지도 않고 수십 권의 책을 독파했고, 덕분에 반쯤 미친 상태로 전역을 했다. 장자의 나비처럼 내가 꿈속에서 책이 된 것인지, 아니면 책이 꿈속에서 내가 된 것이지 구분하지 못했다. 내무반에 앉아 그 만물일체를 경험하고 있으면 후임들이 구석에 모여 군가를 연습했다. 나는 방해가 될까 막사를 나와 장자의 나비처럼 혼자 걸었다.


훈련소에서 부모님께 한 약속 덕분에 나는 이 정도의 기억만 갖고 전역을 했다. 몇 가지 가사 기술과 무거운 책들을 이고. 그렇게 나온 위병소 밖은 여전히 8월의 뜨거운 아침이었다. 내가 군대에서 나온 것인지 군대가 내 안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아의 구별이 없는 그곳에 나는 나머지 기억들을 모두 묻었다. 훗날 나의 군대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물론 아직도 가끔 꿈 안에 있다. 가혹한 작곡가와 책이 된 나비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군가 10곡을 완창하는 하얀 아이가. 마치 평행우주에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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