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메밀 Sep 23. 2023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세요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

 우울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10대에 겪었던 우울은 만성적이었지만 비교적 가벼웠고, 항상 자살욕구와 함께였다. 이것을 1번 우울이라고 하겠다.


 그에 반해 20대 초반에 다시 찾아온 우울은 기간이 짧지만 아주 중증이었고,

 이상하게도 자살욕구는 거의 없었다. 이것을 2번 우울이라고 하겠다.


1번 우울과 2번 우울을 모두 극복한 지금, 두 번째 우울이 더 어려웠다고 생각해 본다. 지금의 삶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데 그렇다고 죽어버리긴 싫고, 하지만 현재의 삶을 바꿀 심신의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든 버티고 합리화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자주 되뇌던 문장이 있다.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세요'였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12살이었던 내가, 18살이었던 내가, 22살이었던 내가 죽지 않고 버텨왔던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좋은 직장, 좋은 학벌, 좋은 스펙" 등이 없어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정서적으로 힘들고 불안정했던 10대를 지나왔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니깐 우울감이 조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말 그대로 그냥, 살아있음에 감사하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죽고 싶은 이유도 사실은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 삶이 원하는 삶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서 힘든 게 어떤 것인지 아주 잘 안다. 닿을 수 없는 모습이고 발전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도저히 이대로는 살고 싶지 않아 죽음을 선택하려는 마음도.


살아있는 게 너무 힘들어도, 하루만 더 살아보자고 무례한 부탁을 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라고 같이 세상에 떵떵거려 보자.

이전 04화 갓생이 별거냐! 살아있기만 하면 갓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