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우리의 시간을 꽂습니다
오늘, 새 가구 하나를 집으로 들였습니다.
남편이 업어서 데리고 왔어요.
버려진 가구였습니다.
아침 아이들 등원 길.
집 앞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 길이었어요.
쓰레기장에 또 가구 한 무더기가 버려져 있네요.
누가 이사를 간 모양입니다.
'왜 버려졌을까...
왜 같이 못 가고 여기 이렇게 남겨져 있을까...'
버려진 가구를 보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씁쓸하고, 쓸쓸합니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시작 부분입니다.
11살의 언니 사츠키와 장난꾸러기 4살 메이가 아빠와 함께 시골로 이사를 갑니다.
덜컹덜컹~
파란색 트럭에 살림살이들을 한가득 싣고
시골길을 신나게 달리네요.
사츠키와 메이와 아빠.
식탁과 책상과 서랍장.
맨 뒤에 용케 매달려 있는 의자까지.
작은 트럭에 몸을 싣고, 함께 달립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함께 살던 가구와 살림살이들을 빼곡히 싣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이 장면이 저는 참 좋습니다.
사츠키와 메이가 자라온 시간들이
책상 위에, 서랍 안에, 의자 끝에
대롱대롱
예쁘게 매달려 있네요.
새로 이사할 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구는 이런 가구가 아닐까요?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못 지나가듯
가구 짓는 엄마는 버려진 가구 옆을 그냥 못 지나가지요.
슬금슬금, 다가가는데!
심상치 않은 기운이...
책장이...
너무 예쁜 책장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 오늘은 그냥 못 간다....
내 너를 꼭 데리고 갈 것이다!
옆에 계시던 경비원 아저씨께 가지고 가도 되냐고 여쭈니,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간 물건들이니 가지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큰 아이 얼른 데려다주고,
바로 남편을 불러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남편이 업어서요.
저는 신나서 쫄래쫄래 따라왔지요.
심봤다~!!!!
집에 데리고 와서,
깨끗하게 닦으니 더 예쁘더라고요.
'예쁘다'를 백 번은 외친 것 같아요.
나 오늘 진짜 심봤다!!!
집에 있는 가구들이랑도 너무 잘 어울립니다.
책장 옆에 같이 버려져 있던 서랍도 데리고 왔어요.
정말 예쁘지요?
색이 벗겨진 손잡이마저 사랑스럽습니다.
마침 책장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좋네요. 이것은 분명 운명입니다. 책장과 저의 운명적인 만남임에 틀림없습니다!
요즘 만들어지는 책장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못 사고 있었거든요. 책장 뒤에 붙은 표를 보니 90년대에 만들어진 책장이에요. 80년대, 9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가구는 정말 좋아요. 튼튼하고 아름답습니다. 혹시, 집에 그 시대의 우리나라 가구가 있다면, 절대 버리지 마세요. 보물이에요, 보물!
이 책장, 제가 찾고 있던 딱 그 책장입니다!!!
제 책상이랑 의자랑 마치 세트인 것처럼 너무 잘 어울리지요?
이 좋은 책장을, 버리고 가시다니요.
이 예쁜 책장을, 쓰레기장에 두고 가시다니요.
어쩌지요.
이 아이, 보물입니다.
요즘에 이런 책장 찾기 힘들거든요.
정말 잘 만들어졌고요.
몹시 예뻐요.
책장의 첫 주인 분과의 인연은 끝이 났지만
이렇게 저와 인연이 닿았네요.
소중한 인연 오래오래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책 옆에 저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시간도 함께 꽂아 두겠습니다.
곁에 두고 아끼며, 함께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