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로 로봇 청소기를 사서 쓰고 있다. 요즘 들어 삶은 바쁘고 성격은 게을러졌는지 이삼일 만에 청소기를 한 번씩 돌리는 것도 상당히 귀찮은 일임을 절실히 느낀 탓이다.
그래서 현대 가전 삼신기라는 로봇 청소기 덕분에 나는 청소 노동에서 아주 자유로워졌을까? 답은 ‘어느 정도는 그렇다’이다. 분명 편해진 부분이 있지만 ‘청소는 이제 로봇이 하니까’ 하고 손을 놓을 정도로 편해지진 않았다는 뜻이다.
기대와 달랐던 점부터 쓰자면, 일단 로봇 청소기가 안정적으로 청소할 수 있게끔 환경을 갖추고 설정을 맞추는 부분이 상당히 번거롭다. 로봇 청소기란 보통 거리 측정 센서가 회전하면서 지도를 그리게 되어 있는데, 이게 입체가 아니라 로봇 청소기의 높이에서 평면을 인식하니까 그보다 낮은 장애물은 매번 충돌 센서로 알아차려야 하고, 충돌 센서보다 더 낮게 깔린 장애물은 알아챌 방법이 없다. 최신형 고급 제품은 카메라가 달려서 모든 장애물을 파악하지만, 내가 중고로 산 모델은 저렴한 ‘가성비 모델’이라 거기까지 지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선’이나 ‘수건’, ‘ㄴ자로 꺾인 사이드 테이블의 다리’, ‘매트’, ‘양말' 따위는 아무렇게나 밀어대고 집어먹다가 브러시가 꼬여서 멈추거나 동선이 꼬여서 시간과 배터리를 한참 낭비하기 일쑤다. 결국 이런 부분을 미리 체크해서 금지구역을 설정해 주고 장애물을 치우는 게 나의 일이다. 만화 ‘시구루이’를 보면 장님 검객이 결투를 잘 할 수 있도록 조력자가 미리 자갈 따위를 치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체로 그것과 비슷한 셈이다.
내가 전선이나 양말 따위를 미처 못 보았다면? 잠시 후에 SOS를 듣고 달려가서 구해줘야 한다. 만약 집 밖에서 SOS를 듣게 되면 어쩔 방법도 없이 속만 태워야 하니, ‘로봇 청소기가 나 없는 사이에 구석구석 말끔히 청소해서 바닥 청결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미래적 일상’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 셈이다. 로봇 청소기의 능력에 맞춰 생활 패턴을 뜯어 고치거나 금지구역 설정을 100% 완벽히 맞춘다면 괜찮겠지만, 로봇의 편의를 챙겨서 인간이 생활을 바꾸는 것도 좀 주객전도가 아닐까?
그리고 이 주객전도가 극을 달리는 때가 바로 ‘대청소’를 시도할 때다. 식탁 밑, 소파 밑, 침대 서랍 뒤쪽까지 아주 깔끔히 청소하려고 작정하면 바닥에 있는 모든 물건을 옮기든지 어디 올리든지 해야한다. 식탁 의자는 식탁 위에 뒤집어 놓고, 소파 앞의 전기 장판은 접어서 소파에 올리고, 침대 서랍은 뽑아서 침대 위에 올리고, 바퀴 달린 책상 의자는 어디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청소가 끝난 구역으로 밀어 놓는다. 그런 뒤에 로봇 청소기가 마음껏 뜻을 펼치게 하면 청소야 말끔히 되긴 하지만, 치워뒀던 물건을 제자리로 돌리는 동안 심각한 회의감이 들곤 한다. 이건 시간을 아낀 것도 아니고 노력을 아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로봇이 청소를 위해 나를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닐까? 10만원만 더 보태서 고급 모델을 샀다면 이런 수고는 줄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쓰고 또 쓴 물건을 헐값에 처분하고 다른 것을 사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고,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열심히 타협점을 찾았다. 그리하여 어느 수준 이상의 세심한 청소는 구식 청소기를 쓰기로 하고, 어쩐지 뭔가 꼬이면서 리셋된 맵(지도와 청소기 위치가 저장된 것과 심하게 다르면 초기화되곤 한다)도 몇 번 재설정하면서 이래저래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이제는 로봇 청소기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면서 적당히 공생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로봇 청소기가 발 수건과 매트를 공격하지 않게 설정했고, 제멋대로 문을 닫고 셀프 감금되지 않는 법도 가르쳤으며, 사이드 테이블과 부엌의 발판을 치워두기 좋은 배치도 알아냈다. 걸레질 할 때 마루가 썩을 정도로 물을 써대는 건 분사구를 바늘 구멍 두 개를 낸 테이프로 막아서 해결했다.
덕분에 이제 로봇 청소기가 일하는 동안 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상태에서 청소처럼 귀찮은 노동을 로봇에게 맡긴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이다. 매끈한 바닥을 유지하자고 누가 묵직한 청소기를 질질 끌면서 팔을 뻗었다 당겼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환호를 해도 모자라다. 아마 돈을 내고 사람을 써도 이렇게 마음이 편하진 않으리라.
물론 이 안정을 얻기까지 로봇 청소기와 상당한 갈등을 빚긴 했지만, 지금까지 무수히 그랬듯이 편의성과 돈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은 거라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싶다. 이번에는 그게 좀 길고 까다로웠을 뿐이다. 그런 난관을 거친 덕분에 이제 그 어떤 로봇을 상대해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감도 생겼으니 어디서 돈 주고도 못 배울 경험을 쌓았다는 생각도 든다. 고생을 정신 승리로 포장하는 면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근미래에 찾아올 반려 로봇의 초기형이 어떤 난장판을 벌여도 침착하게 상대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하나만은 확고하다. 그때쯤에는 ‘나 때는 말이야, 로봇청소기가……’하고 으스댈 수고 있겠고.
그나저나 만사 마음대로 되는 게 없고 상대가 나에게 딱 맞춰주지 않는다는 점은 생각하기에 따라선 인간적인 게 아닐까?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본작,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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