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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31. 2017

식당 앞의 메뉴판 염탐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를 보면 사기꾼이 자신은 돈 자체보다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시킬 때 가격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갈구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대사를 보고 이만저만 감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란 나도 그런 소망을 품을 만한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습성이란 다름아닌 ‘음식점을 고를 때 바깥이나 인터넷에 가격표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지 않으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고전적 뱀파이어처럼 문 밖에서 기웃거리며 벽에 걸린 메뉴판이 보이지 않을까 안쪽을 엿보게 된다. 딱히 죄를 짓는 것도 아니면서 가게 안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까봐 먼 발치에서 눈을 찡그리고 엿볼 때도 있다.

당연하게도 그런 짓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은데, 사실 가게쪽도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라고 생각하면 값을 잘 보이는 곳에 붙이든 메뉴판을 내놓든 하기 때문에 그렇게 기웃거려봤자 십중팔구 발길을 돌리게 되어 있다. 그러자면 나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쫓겨난 네로같은 심정을 맛보곤 하는 것이다. 얼어죽는 운명보다야 훨씬 낫긴 하지만…….

까짓거 뭐 얼마나 한다고 그걸 못 들어가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우리 가족이 6만원을 예상하고 간 대게집에서 얼떨떨한 기분으로 16만원이라는 대지출을 하는 걸 목도한 이후로 ‘까짓거 뭐 얼마나 하겠어’ 라는,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확실한 정보 없이 전쟁터에 나갔다간 영혼에 상처를 입을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고로 식사를 할 때는 뭘 얼마에 파는지 최대한 알아보고 들어가려 하는데, 사무실이 많은 지구에서는 특히 값을 알아보는데 상당히 애를 먹게 된다. 젊은이들이 많은 대학가 등지와 비교하면 영 편치 않다. 대학가는 500원의 차이에도 상당한 경쟁력이 발생하는 곳이라 가격을 잘 보이게 해놓든지, 아니면 무턱대고 들어가도 딱히 근심스러울 가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역시 사회란 무서운 곳이고, 먹고 사는 일이 쉬운 게 하나 없는 모양이다.


근사한 식당일수록 가격을 알 수 없어서 가게를 코앞에 두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한다


예전에 하루 한 끼에 딱 1000원어치 더 고급스러운 식사를 하면 어떨지 진지하게 계산해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짜장 대신 볶음밥을 먹는 식이다. 한 달에 서른 끼 정도를 먹는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3만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한다. 일 년 내내 이 수준을 유지하면 36만원이 더 나간다. 흉악한 지출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작 그걸 아껴서 그럭저럭 목돈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돈을 모으는 것보다 알파고가 인류를 지배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러니 식사 수준을 높여서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삶의 질을 간단히 높일 수 있는 방법이리라. 월 30000원짜리 식생활 업그레이드 패키지 서비스 구독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쉽지도 않은 것이, 취미를 위해서든 창작을 위해서든 이런저런 문화 생활은 해야 하는데 돈은 한정되어 있으니 끌어올 예산으로 식비를 고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돌려막기가 하루이틀 일도 아니다. 먼 과거부터 원하는 걸 갖기 위해 손쉽게 선택한 것이 바로 식비 줄이기였다. 그때는 정말 줄일 게 전혀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고, 게다가 어차피 감량을 위해 먹을 걸 줄여야 할 때도 많았던지라 어찌 보면 아주 합리적인 소비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릴 적 예산 편성 방식이 늙도록 이어졌고, 그 결과 음식점 앞에서 기웃거리며 가격표를 염탐하는 수상한 남자가 탄생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뼛속까지 스며든 습성이 혼자 있을 때면 그럭저럭 도움이 되지만 타인과 식사를 할 때면 아무래도 부끄러워진다. 혼자서만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음식을 찾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성인으로서 온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닌데도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분명 자격지심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아서 한 번은 독서 모임 뒤풀이에서 ‘자, 그럼 제일 싼 걸 먹을까요?’하고 반농담을 던짐으로써 이를 극복해보려고 한 적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아무도 맞장구를 쳐주지 않아서 그만두고 말았다. 부끄러움을 유쾌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스스로 수용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은 이런 궁상스러운 짓을 집어치우고 먹을 거나 잘 먹고 다니는 게 옳지 않은가, 사는 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즐기자고 식비를 줄인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문화란 항상 그 쓸모없는 부분을 즐기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고, 나는 그중에서도 글짓기라는, 특히 쓸모없는 부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해왔다. 그러니 맛있는 밥을 먹자고 문화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좀 과장하면 자신의 정체성에 반하는 일이 되고 만다. 물론 둘 중 하나만 골라야만 하는 것도 아닌 만큼 문화생활도 하고 맛있는 밥도 잘 챙겨먹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지일 텐데, 그런 선택지란 누구에게도 공짜로 주어지지 않으니 그때그때 적절한 재정적 타협점이나 정신적 균형점을 찾으며 사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균형 잡기의 여정에 메뉴판 염탐하기가 항상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우울해지는데, 음식점들은 제발 가격표를 찾기 쉬운 곳에 게시해주실 수 없으실지요?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본작,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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