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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14. 2018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잘 보면 뜻밖에 데스크톱이든 노트북이든 컴퓨터를 싹 몰아서 내다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것들을 잘 보면 버려진 컴퓨터라고 해서 전혀 쓸 수 없는 상태는 아닐 때가 많아 놀란다. 분명 정밀한 기기인데도 돌이킬 수도 없을 정도로 고장나는 경우도 많지는 않은 듯하다. 냅다 던지거나 물을 쏟지 않고, 먼지도 잘 털고 정리도 해주면 꽤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집에 낡은 컴퓨터가 입고되면 이것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지 점검하는 것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핵전쟁으로 문명 대부분이 파괴된 세계에서 ‘헤헤, 이건 쓸 만할 지도 모르겠는걸’ 하고 잡동사니를 주워모아 수리하는 상점을 운영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주워온 컴퓨터가 유용하게 쓰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도 쓸 만한 컴퓨터라면 당연히 버릴 리가 없고, 그리고 낡은 컴퓨터라도 잘 관리해서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라면 그런 식으로 무방비하게 완제품으로 냅다 갖다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버려진 컴퓨터를 주워다 수리해 본다는 것은, 컴퓨터에 대해 정말 잘 모르고 대체할 여유는 있는 사람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중고로 처분하기도 귀찮아서 갖다 버린 경우만을 바라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도둑놈의 심보라, 정말 멀쩡하고 좋은 컴퓨터가 버려진 경우는 없었다. 멀쩡한 물건이 버려지지 않는 사회는 시민 의식이 높거나 절약하는 사회일 테니 기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반길 수만은 없는 것이, 그 결과 내가 하는 짓은 버려진 컴퓨터를 주워다 잘 닦고 부팅이 될 때까지 손을 본 다음, 다시 내다 버리는 짓이 될 확률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거나 초기화따위를 해 본 사람은 짐작할 수 있듯, ‘주워온 컴퓨터를 부팅이 될 때까지 손 본다’는 것은 문장으로 쓰면 지극히 간단하지만 여간 번거로운 짓이 아니다. 이상이 있는 부품을 찾아내서 정상 부품으로 갈아끼우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포맷을 하고 윈도우까지 새로 깔아봐야 할 수도 있다. 프랑켄슈타인 씨가 이 무덤 저 무덤을 파헤쳐 신선한 장기를 손에 넣은 다음 열심히 꿰매고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것과 비슷한 짓이다. 심지어 십중팔구 멀쩡한 물건이 나오지 않는 것까지 똑같다.

사실 나도 꽤 예전에는 관련 지식에 어두운 사람들이 대충 버리는 물건이 제법 될 테니 잘하면 부품을 조합해서 그럭저럭 쓸 만한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데스크탑을 사자니 돈 아깝고, 없으니까 은근히 아쉬운 상황이라 그런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몇 번 시행착오를 겪어본 결과 내가 얻은 결론은 ‘다들 버릴 만한 물건만 버린다’ 는 것이었다. 그리고 변변치 않은 물건들을 아무리 모아봤자 대충 10만원쯤 주고 산 중고보다 못할 게 틀림없다는 확신도 얻었다. 10년 전 CPU와 10년 전 램이 절묘한 시너지 효과를 내서 5년 전 물건 같은 성능을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아귀만 맞으면 그럭저럭 탈 만하게 되어 있는 자전거가 아니니까.


컴퓨터는 고쳐도 쓸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감을 잡기가 상당히 어려운 물건이다.


하지만 그런 결론을 얻은 뒤에도 넷북을 손볼 일이 생기고 말았다. 외관으로는 하등의 이상 없이 완전히 멀쩡하게 생긴 넷북이었으므로  또다시 은근한 기대감이 생겼다. 넷북은 부품을 갈아끼울 수도 없으니 성공 아니면 실패로 순식간에 결론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내부가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무선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트랙패드 드라이버도  제대로 깔려있지 않았고, 심지어 문서함에 쓰던 파일도 고스란히 있었다. 



상태라 그렇게까지 엉망이니 원래 낼 수 있을  성능을 가늠할 수도 없었다. 잔뜩 녹슨 골동품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녹을 닦아내고 광을 내어 보는 수밖에.  그러나 그건 처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지독하고 고역스러운 작업이었다. 무선 인터넷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XP를 업데이트 해야  했는데 공식 사이트에서는 더이상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기저기를 뒤적인 끝에 간신히 업데이트 했고, 삼성에서 제공하는 자동  업데이트 프로그램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온갖 드라이버를 한참 뒤적인 끝에 겨우 필요한 것들을 설치했다. 하드도 정리하고  아무 쓸모 없는 램 상주 프로그램들도 청소했다. 그리하여 넷북은 몇 시간 만에 겨우 진창에서 기어나와 원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것도 멀쩡한 기기는 아니었다. 아니, 멀쩡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철지난 기기였다. 그  고생을 해서 살려놨는데, 유튜브조차 제대로 띄우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컴퓨터를 보면 늘 신기하게 느낀다. 분명 한때는 깔끔하고  가벼우며 웹서핑과 문서 편집에 최적화된 기기라고 선전했을 물건인데, 세월이 좀 지났다고 이 정도로 못 쓸 물건이 될 수 있는  걸까? 10년 전의 웹사이트가 지금의 웹사이트보다 훨씬 가벼웠다는 말인가? 시대가 지나면서 기술이 발전하고 플래시도 퇴출되었으니  예전 기기로도 충분히 가뿐히 웹서핑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에 누군가는 답을 갖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나는 아니다. 나는 결국 이 넷북을 대단히 저렴한 가격에 팔기로 했는데, 매입 업체에서도 거절당한 것은 물론이고  일반 중고 장터에서도 원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요즘이야 스마트폰도 이보다 훨씬 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물건의 가치는 동일한 무게의 지점토보다도 떨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물건을 꼴도 보기  싫다고 내다 버리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을 뒤적여서 그나마 멀쩡한 물건으로 만들어놓은 시간이 아까워서 도저히 냅다 던질  수가 없었다. 한때는 멋진 디자인에 가벼운 무게로 썩 괜찮은 기기라는 평을 받았을지도 모를 물건이, 이제는 아무도 원치 않는  고물이 되어 처박혀 있다고 생각하면 괜한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누구나 한때 썩 괜찮은 평을 받다가도 시대가 지나면 동일한  능력을 갖고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취급을 받을 수 있는 법이구나 싶어 오싹하기도 하고, 그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부단히 노력하고  살아야 하는데 나는 지금 남들 열심히 살아가는 시간을 낭비해서 쓰레기나 갖고 노는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참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심란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하여 며칠간 내 마음을 괴롭혔던 그 넷북은 지나가는  고물상에게 만 원인가에 매각됨으로써 내 곁을 떠나갔다. 잘 돌아가게 만들어 팔든 주워온 그대로 팔든 가격은 매한가지였겠으나  그만하면 잘 팔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쯤은 해체되어 쓸 수 있는 금속만 새로운 생명을 얻지 않았을까? 요즘은 폐전자제품에서  귀금속이나 희토류 따위를 추출하는 기술이 많이 발달했다던데, 기왕이면 그렇게 깊이 품고 있던 귀한 가치를 다시 쓸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본작,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Daum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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