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자의 옷장 Sep 06. 2023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6)

소설의 제6장

  “날이 참 춥군. 런던의 겨울은 너무나도 가혹해. 이탈리아의 나폴리라는 도시는 그렇게 날씨가 좋다던데 가본 적이 없구만. 이전에 나폴리에서 온 손님이 나폴리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꼭 나폴리에 오라고 했었는데 기회가 한 번도 안 올 줄은 누가 알았겠나.”

  “그러게 말일세. 나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가보질 못했네.”

우리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식당으로 향했다. 추위를 뚫고 도착한 식당은 그 어떠한 곳보다도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오! 또 오셨군요.”

  “반갑네. 오늘은 3명일세. 자리 있나?”

  “물론입니다. 따라오시죠.”

  “고맙네.”

  “여기로 앉으시죠.”

  “고맙네. 아, 바로 주문해도 될까? 그리고 미안한 부탁을 하자면, 점심이지만 저녁 메뉴도 혹시 주문이 가능한가?”

  “제가 셰프에게 한 번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 고마워.”

종업원은 주방으로 향했다. 우리는 옷가지를 정리하고 앉아 식당의 온기를 느끼며 있던 차에 종업원은 돌아왔다.

  “모든 메뉴 가능하다고 합니다.”

  “오! 다행이군. 그럼 스프랑 로스트비프 그리고 요크셔푸딩을 명수대로 그리고... 비프웰링턴... 술은 레드와인을 부탁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저트는... 이튼 메스가 좋겠군. 이것도 명수대로 준비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종업원은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점심이지만 많이들 먹게나. 추운 겨울엔 이 식당만큼 가슴 따뜻하게 다가오는 음식을 내어주는 곳도 없을 걸세. 도움 받은 것들도 많아 대접을 하고 싶어 많이 시켰고, 어제가 크리스마스이기도 했으니 시간의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너그럽게 받아주게나.”

  “친구가 밥을 산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잘 먹도록 하지. 근데 비프웰링턴까지는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아니 여긴 딱 셋이 한 조각씩 나눠먹기 좋은 사이즈의 비프웰링턴이야. 그리고 여기의 비프웰링턴은 꼭 먹어봐야한다네. 그리고 오늘 우린 혈기왕성한 청년과 같이 왔지 않나. 자네도 괜찮지?”

  “제가 이렇게 얻어먹어도 되나 싶습니다.”

  “자넨 저 친구와 달리 충분한 자격을 가졌지. 오늘 나를 도와 치수를 적어주지 않았나. 집에서 그게 가능 할 줄은 절대 몰랐어. 다 자네덕분이야. 사실 친구놈보다 자네한테 대접하고 싶어 왔으니 부담 갖지 말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습니다. 이미 저는 오늘 많은 선물을 받았는걸요.”

  “괜찮아. 괜찮대도 그러나. 다시 또 그러면 집으로 보낼 걸세.”

친구는 호방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친구의 말을 듣는 게 좋아. 이 친구의 성격은 장난 아니거든. 자네도 이미 몇 차례 경험 해보아 알겠지. 그러나 이 친구의 미각은 믿어도 좋아. 음식에 진심이거든. 내 장담하는데 이 친구의 쾌락은 음식과 음악에 있을 거야.”

  “내가 또 뭐 언제 그렇게 음식과 음악을 밝혔다 그러나. 그냥 좋아하는 것뿐이지... 둘 다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그건 맞지. 하하하.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자연뿐이 없지 않겠나.”

  “아니, 남성복도 있네. 그것이 나에겐 가장 아름다워.”

  “먼저 빵과 스프 그리고 와인 먼저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은 눈치도 못 채게 와있었다.

  “고맙네.”

  “빵은 방금 나와 뜨거우니 조심해주세요. 대신 그만큼 맛있을 겁니다.”

  “고맙네. 오늘은 우리가 행운아들이군.”

  “맛있게 드세요.”

종업원은 아주 나이스한 미소로 서빙을 마치고 돌아갔다.

  “자, 먹지. 아... 혹시 오늘도 기도를 하나?”

  “어젠 교회여서 했지만 오늘은 저 혼자 하고 먹어도 됩니다.”

  “아니 해주게. 어제 이 친구가 자네 기도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거든.”

  “그럼 염치 불문하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손을 모았고, 청년은 식전기도를 시작했다.

  “..... 아멘”

  “자 이제 진짜 들지.”

  “잘 먹겠네. 음...”

  “어때, 음식은 좀 입에 맞나?”

  “너무 맛있어! 사무치는 맛이야.”

  “자넨 어떤가?”

  “정말 맛있습니다! 친구 분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었군요!”

곧이어 음식은 계속해서 나왔고 우리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아마 다들 아침 일찍부터 집중하고 긴장하느라 배가 무척이나 고팠었나보다.

  “배가 찢어질 것 같군. 자네 말대로 비프웰링턴은 정말 환상적이었네. 로스트비프 또한 말할 것도 없고 말이지.”

  “맞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로스트비프와 비프웰링턴은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음식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었군요.”

  “자네들 모두 좋아해서 다행이야. 하지만 아직 디저트도 남았네.”

  “진짜 고문 수준으로 양이 많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디저트가 나왔다.

  “이튼 메스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고맙네.”

  “음! 이것도 아주 맛있군!”

친구는 아주 만족한 듯 이야기 하였다.

  “이 집은 정말 빼놓을 것이 하나도 없지. 뿌듯하군”

  “이 식당의 음식을 먹으며 점전 드는 생각인데 선생님께 질문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청년은 조심히 나에게 물었다.

  “무엇인데 그러나.”

  “선생님의 취향이 고귀함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식사 전 남성복이 가장 아름답다는 그 말을 쉽게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왜 선생님께서는 남성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나는 음식과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은 없어. 더욱이 나는 셰프도 음악가도 아니기에 그런 기회는 없었지. 하지만 남성복은 달라.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남성복에 대해 고민을 했다네. 그렇기에 내가 내린 결론으로 남성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규율이 있어서야. 그건 만드는 사람에게도 입는 사람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지. 그 규율들은 그 어디에도 법으로 적혀있지 않다네. 하지만 남자들은 그 규율을 지키며 만들고 입으려고 하지.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누구는 몸치장으로 자유를 말하려 하지만 나는 그 자유가 구체적인 자유인지 의문일세. 자유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크나큰 희생이 동반해야 비로소 자유가 찾아온다네. 그렇다면 자유만이 주어지면 옳은 것인가?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아. 자유가 팽배하면 다시금 끝없는 혼란이 찾아오겠지. 그 이유는 자유는 쾌락을 부르기 때문이야. 자유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사회라면 결국 자유는 ‘내가 좋은 것’을 쫓게 되지 않겠나. ‘내가 좋은 것’에는 너무나도 일차원적인 자극들이 많을 걸세. 어릴 적 우리도 그러지 않았나. 그 혈기왕성한 피의 혼돈에 짐승과도 같은 사상을 갖게 되고 행동을 하고 싶어 했지. 이것을 잘라낼 수 있는 것은 결국엔 규율일세. 규율이 있어야 내 자신이 어긋나는 것을 막아준다네. 남성복은 규율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 부터가 수행이야. 나를 규율에 가둬 옳은 방향을 만들게 해야 하지. 그러면 그런 질문도 있을 수 있겠구만. 남성복의 규율은 옳은가? 라는 질문 말이야. 난 당연히 옳다 생각하네. 진정한 남성복들은 전쟁터와 일터 그리고 왕정 등에서 나왔어. 전쟁터와 일터 그리고 왕정은 이미 규율이 존재하는 곳이야. 그러한 엄격한 규율 속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정제된 것이 어찌 쾌락적이겠나. 남성복은 그 위치의 어떤 인물인지를 증명해주는 것이니 절대적으로 아름답네. 결국 남자의 인생이 아닌가. 인생을 지키기 위한 규율은 너무나도 고결한 것이야. 남자들이 옷을 입는 이유는 결국에는 인생을 지키기 위함일세. 그렇다면 인생은 무엇일까... 규율 속에만 존재해야하는 인생의 의미 말이야! 나는 진정한 사랑에서 답을 찾았네. 진정한 사랑만이 나를 쾌락에서 멀게 하고 지켜야 하는 것을 선사하지. 그것은, 지켜야 하는 것은 또 책임을 만들어 내지 않나! 결국 사랑은 지키는 것이며 희생 안에 책임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지킬 것이 있는데 밖에 나가 쾌락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또 더욱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러한 위치들에서 사랑 안에, 책임 안에 남자가 살아가는 것이 남성복이니 이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 이것이 나는 진정한 ‘멋’이라고 생각한다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멋’이 아닌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짜 ‘멋’ 말일세. 이것을 통상적인 멋쟁이라고 부를 순 없겠지. 그 누구도 멋쟁이라고 부를 수 없을 걸세. 그렇기에 한마디만 더 보태자면, 남성복은 지금 떠오르고 있는 패션이라는 단어로 절대 정의할 수 없네. 이렇게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남성복이 통상적인 멋만 추구하며 대량 생산되어 나온다면 남성복의 본질은 망가지며 변화되고 그 패션이라는 것은 미래에 멋쟁이를 양산할 테지만, 진짜 ‘멋’과는 점점 더 멀어질 거야. 자본이 멋이 되는 세상이 오겠지.. 그런 세상은 너무 슬프겠지만 괜찮네. 아까 내가 집에서 얘기하지 않았나. 나와 이 청년 같은 사람들의 손은 멈추지 않았어. 계속 이어질 걸세. 우리는 진정한 ‘멋’의 한 부분을 잇는 자들이기 때문이고 그 ’멋‘이 남자 그 자체의 본질이기 때문이야. 우린 묵묵히 순례자처럼 수행하며 존재하면 그걸로 된 걸세. 나머지는 우리 후세에게 맡기지. 그리고 여태 남자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사랑을 믿고 남자를 믿으며 책임을 믿는 수밖에 없겠네.”

친구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사라지면 어쩌나.“

  “그렇다면 구체적이지 않은 끝없는 자유로 세상은 혼란 속에 존재하다 쾌락으로 종말을 고하지 않겠나.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듯 말이야.”

  “무서운 얘기군. 옷이 그렇게까지 해석 되다니. 근데 듣다보니 재밌구만. 희생에서 자유가 온다면 희생이 책임이고 그것이 규율을 만드는데, 결국 규율을 지키는 것은 자유를 선사하겠구만!“

  “맞네! 남자들은 규율 안에서 한 없이 자유롭지! 생각해보게 우리나라도 법이 있지 않나. 법이 곧 규율인데 법 안에 사는 우리는 지금 자유롭지 않나? 같은 것이야. 아주 구체적인 자유이지. 좋은 법이 옳게 작용하고, 우리가 그 좋은 법을 인정하고 이행한다면 그 안에서는 한 없이 자유롭지. 하지만 나쁜 법은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긍정적인 것은 그 어떤 것도 창출해내지 못하지 않나. 남성복도 그런 것일세. 남성복은 좋은 법전이야. 그리고 그것을 더 좋고 올바르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남자들이 해온 일이고 또, 할 일이지. 좋은 법전은 좋은 역사와 좋은 이해 그리고 많은 공부와 경험을 통해 나오는 것이니 이것은 옳게 갈 수 밖에 없네. 그 법전을 잘 이해하고 이행할 때 우리에게 선사되는 ‘입음’이라는 가치는 진정한 자유를 선사하지. 아주 구체적인 자유 말일세. 하지만 조금이라도 잘못 이해했다면 ’입음‘은 망가지네. 사이비 종교 같은 것이야. 그거 아나? 사이비 종교도 우리가 교회에서 보는 성경을 쓰는 곳이 있다더군. 그러한 사이비는 결국 성경보다 사람이 먼저가 됨에 따라 망가진 곳 아닌가? 그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옷이 입히지만, 옷이 먼저인 사람이 되는 것이지. 어떻게 옷이 먼저 존재하고 사람이 존재하겠나. 사람이 존재하기에 옷이 따라오는 것이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그리고 성경이 존재하고 기독교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야. 법 또한 그렇지 않나. 사람이 존재하기에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법이 존재하기에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 옷이든 법이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야. 옷을 입는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자신의 규율과 철학을 입는 사람이 되어야 하네. 그러려면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이 되어야해. 아니면 결국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뿐이지. 규율은 몸에만 맞는다고 맞는 것이 아니거든.“

  “그런데 자네가 이야기 하는 것은 수트만의 이야기인가?”

친구는 질문을 또 하나 던졌다.

  “아니. 아니지. 절대 아니야. 수트는 위대한 옷이고 최고의 옷이라고 생각하지만 책임의 최전선에 있는 옷을 무시할 수 없어. 오히려 그것이 더욱 위대할 수 있지. 예를 들어 어부들을 생각해보게나. 그 춥고 고독한 망망대해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책임을 위해 거친 파도와 죽음의 결투를 한다네. 그들은 그 춥고 습한 곳에서 그 결투에 이기려 기름이 가득한 니트를 입지. 그 옷이 찢어지고 해졌다 하더라도 그 옷은 위대한 옷이야. 아니 위대하다 못해 숭고하다 할 수 있겠지. 자네는 그런 옷을 욕할 수 있겠나?”

  “아니 못하지.”

  “그렇지! 그들은 그렇게 그곳에서 싸우기 위해 그들의 의복을 규율 안에 만들고 규율을 만들며 입네. 그들이 만들고 이행하는 ‘입음’이라는 가치는 그런 것이겠지?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존경해. 물론 어부뿐만 아니라 석탄을 캐는 이들과 또 다른 모든 노동자들도 마찬가질세. 그 숭고한 규율 입는 자들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나? 그들의 옷이 찢어지고 더럽다 하더라도 그들의 인생과 그에 대한 책임으로 만들어진 규율은 참으로 멋있는 것이야. 오히려 이렇게 수트 안에 규율을 지키며 깔끔 떨며 살아가는 것이 가끔은 창피할 때도 있어. 그러나 남자들은 한 위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각자 위치에서 각자의 규율로 나아가야한다 생각하네. 그들은 그들의 숭고한 규율을 지킬 테고, 나는 내가 맡은 규율을 지키면 되는 것이겠지.”

  “생각해보면 나도 아버지께 많은 것을 배웠네. 특히 성인이 되며 더욱이 많은 것을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지. 옷을 입는 방법 왜 입어야 하는지 세세하게 설명을 들었었네. 물론 나도 내 아들에게 그랬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이 규율이라 생각하진 않았어. 그저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옳은 것인 줄 알고 한 것이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규율이기에 아버지의 옷장이 내 옷장이 되고 내 옷장이 곧 아들놈한테 가는 것 이구만. 남자들의 옷장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었어.”

  “맞네. 물론 그런 가르침을 나는 받지 못했지만 말이지.”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청년은 말을 거들었다.

  “저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물려받을 옷장도 없고 말이죠. 하하하.”

  “자네가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너무 실언한 것 같지 않나...”

  “괜찮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실언하니 또 생각나는 것이 있군.”

친구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자넨 나이가 드니 말이 너무 많아졌어. 예전엔 한마디도 하지 않아 실어증이라도 온 줄 알았는데 말이지.”

  “용서해주게. 이 나이가 되도록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지 않나. 그리고 이렇게 옷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기회도 없기 때문에 말만 길어지는군. 하지만 이것은 정말 중요한 얘기야. 자네들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나?”

“아니 없네.”

“그게 무엇입니까?”

“스프레차투라는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의 카스틸리오네(Baldassare Castiglione)가 궁정론(The Book of the Courtier)에 적은 단어라네. 그 뜻은 쉽게 말하자면 모든 것이 내제되고 계산된 무심함이자, 계산된 부주의야. 사람들은 모두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나. 물론 나도 그랬고 말이야. 뭐 자네들도 그랬을 수 있겠지. 근데 생각해보게. 완벽함은 내 삶에 옳았던 것인가? 완벽함을 추구하며 그것을 세상에 뽐내다보면 내 실수에 공격받을 일이 많아. 사람들은 완벽함 속에 흠을 잡으려 노력하지. 그리고 완벽함을 추구하려면 내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거짓말만 늘어날 뿐일세. 내 부족함을 가려야 하거든. 그렇기에 그러기보단 내 부족함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더욱 좋지 않나 싶네. 그 부족함은 이미 인지하고 계산된 것이겠지. 마치 런던의 귀족들이 수트를 입을 때 일부러 양말을 쫙 펴서 신지 않고 약간의 주름을 만드는 것과 같이 말이야. 부족한 것을 당당히 보여줬을 때만이 나는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나타내는 말이 스프레차투라가 아닐까 싶어. 고도로 계산된 부족함은 고도의 자아성찰일 테니 말이지. 불완전함만이 완전함을 이길 수 있어.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불완전하고 항상 어린 존재들 아닌가. 어리기에 가능한 것이야. 우리가 90을 넘겼지만 항상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은 어리기 때문이겠지. 물론 어제 말했듯, 하는 일에도 마찬가질세. 그것을 인정해야만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고 당당할 수 있어. 즉, 겸손해야하는 것이야.”

  “맞는 말일세.”

  “그리고 이것은 어부와 노동자들의 해진 옷들과도 같다고 생각한다네. 그들은 그것을 의식치도 않겠지. 이미 알더라도 말이야. 그것이 자신의 인생이고 삶인데 더 증명할 것이 없는 의미이지 않겠나. 그 겸손한 삶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스프레차투라를 유머라고 하지만, 삶을 증명하고 겸손의 자세를 갖는 것이라 나는 유머라고는 생각하기 싫네. 그건 스프레차투라를 패션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야. 그렇기에 오히려 이것에 패션 안에서 심취해버리면 교만의 끈을 잡는 것과 다름없기도 한 어찌 보자면 아주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지. 아름다워 보인다고 무턱대고 열면 안 되는 것이야.”

  “그것 또한 맞는 말이군.”

  “아! 그리고 죽음! 죽음 말일세! 자네의 죽음을 위해 옷을 지어 달라 했던 그것! 그것 또한 자네의 부족함을 나에게서 표현하기 위해서였나?”

  “뭐 어찌 보면 맞는 말이지. 나를 자네만큼 잘 아는 사람은 아내 한 명뿐이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지. 나는 나의 모습으로 가고 싶었고 그 옷은 사랑으로 만들어지길 원했을 뿐이야. 근데 그건 자네가 말하는 사랑이랑 비슷하기도 하겠지만 조금 모습이 다를 수 있겠구만. 그 사랑이 무언지 답을 찾는 것은 자네의 몫이겠지.”

  “평생을 사랑에 고통 받으며 살았는데 사랑으로 또 고통 받을 생각을 하니 끔찍하군. 이 나이에 그런 것은 심장에도 뇌에도 좋지 않아 보이지 않나?”

  “그래도 내가 모르는 것을 자네는 만들겠지. 오늘 규율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무 어리다는 것을 깨달았어. 나 또한 다 아는 것 마냥 자만했네. 전문가를 무시하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지. 전문가는 전문가구만. 근데 내가 어렸던 것은 물론 자네에게 아직 말 못한 것이 있고 아마 그것 때문일 테야. 

  “무엇을 또 그렇게 사람 좋은 얼굴로 숨기고 있나.”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곧 자네도 알게 될 거야. 그러나 그 날이 늦었으면 좋겠군.”

  “무슨 그런 부정스러운 말을 하는 게야. 그런 말은 말게. 옷을 만들 사람으로서 힘이 빠지는군.”

  “미안하네. 그래도 사실인걸.”

  “그 얘긴 여기까지 하지. 나중에 둘만 있을 때 따로 듣도록 하겠네. 저 젊은 친구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 좀 보게나.”

  “저런. 내가 생각이 짧았군. 미안하네.”

  “그러고 보니 질문은 저 친구가 했는데 자네랑만 대화를 한 기분이군. 어찌, 질문에 답이 좀 됐나?”

나는 청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많이 배웠습니다. 저도 고민해고 풀어야 할 숙제가 더욱 많아진 느낌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럼 슬슬 일어날까? 밥도 다 먹었고 뱃속도 든든하니 이제 집에 가서 조금 쉬고 난 일을 해야겠어.”

  “그래.”

나는 종업원과 눈 맞춤을 시도했다. 다행히 금방 성공하였고, 나는 손으로 계산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종업원은 계산서를 들고 왔다.

  “어떻게, 음식은 괜찮으셨습니까?”

  “완벽했네 덕분에 잘 먹었어.”

  “여기 계산서입니다.”

나는 주섬주섬 돈을 꺼냈다.

  “여기 있네. 잔돈은 괜찮아.”

  “그러기엔 너무 많이 주셨는데요?”

  “괜찮아. 자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었는 걸. 그럼 나는 가보겠네. 좋은 연말 보내고, 내가 새해까지 오지 않는 다면 신년인사를 못 전할 수도 있으니 먼저 전하지. 좋은 새해 되게나.. 셰프한테도 잘 전해주게.”

  “네!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도 좋은 연말과 좋은 새해를 맞이 하기 바라며 또 건강하시기도 바라겠습니다.”

  “건강하지 않고는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없지. 하하. 진짜 가네. 다들 일어나지.”

우리는 식당에서 나왔다.

  “그럼 자네는 1월 1일에 내 집으로 짐을 옮기는 것이지? 자식들한텐 이야기 했나?”

  “그렇지 않아도 오늘 편지를 쓰려고 하네.”

  “그렇군. 그럼 아들도 한 번 여기로 오라고 하지 그러나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바쁘고 가정도 딸려 어찌 될지 모르지.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긴 하려 하네.”

  “좋아.”

  “저는 이 책을 언제까지 가져다 드리면 될까요?”

청년은 물었다.

  “아무 때나 다 읽으면 집으로 가져다주게. 부담 갖지 말고 오래 읽어도 되네. 물론 내가 죽기 전엔 가져다 줘야겠지.”

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농담이야. 하여튼, 편하게 읽고 편하게 가져다줘. 부담 갖지 말고 말이지. 그럼 오늘은 이렇게 헤어지는 걸로 합세. 다들 고마웠어.”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 낮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은근한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렇기에 나는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고 패턴지를 구매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 있나?”

  “네 나갑니... 오! 오래간만입니다 마스터! 너무나 반갑습니다! 은퇴하시는 날 인사하러 와주신 이후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혹시 어쩐 일이십니까?”

  “패턴지를 조금 사러 왔네.”

  “패턴지 말입니까? 아니, 다시 옷을 만드시는 겁니까? 아님 누굴 가르치시려 그러시는 겁니까?”

  “아니 뭐, 그럴 일이 좀 생겨서 말이지.”

  “마스터가 다시 옷을 만드신다면 정말 런던 시내에 다시 소문을 내고 싶군요!”

나는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냐, 아냐. 그런 일은 아닐세. 수트 두 벌만큼의 패턴지만 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나는 제발 더 이상의 질문이 없기를 바라며 패턴지를 기다렸다.

  “여기 있습니다. 정말 다시 옷을 만드시는 건 아니지요?”

  “아닐세. 그냥 지나가다 추억에 사러 들어왔을 뿐이야. 인사도 하고 말이지.”

  “그렇다면 너무 아쉽습니다...”

  “그럼 나는 가보지. 연말 잘 보내고 좋은 새해를 맞이하길 빌겠네.”

  “네, 조심히 들어가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네. 잘 있게.”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그냥 원단에 초크질을 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나온 초심에 조금 흥분했었나보다. 나는 집에 돌아와 옷을 정리하고 재단대 위에 패턴지를 펼치고 다이어리를 가져와 꼼꼼히 읽으며 아무 주문도 하지 않은 친구놈을 욕하며 어떻게 만들지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가장 기본으로 하자!’ 그것이 나의 결정이었다.

  “좋아. 한 번 해보지.”

나는 패턴지에 연필을 대고 정성스레 패턴을 그리기 시작했다.



* 이 글 등 패션 알려주는 남자, 남자의 옷장으로 적히는 모든 글의 저작권 및 아이디어는 패션 알려주는 남자, 남자의 옷장 본인에게 있습니다.


06SEP2023

이전 05화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