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게 큰 돈을 잃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저인 듯한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평소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매일 적어도 한 번씩은 꼭 울었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신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을 때는 더 많이 울었습니다. ‘잘못한 건 그 사람들이지, 환자분 잘못 아니에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말에, 응석부리고 싶었는지 더욱 눈물을 쏟았습니다. 기계만 덩그러니 놓인 방에서 심리 상태를 측정할 때엔, 정말이지 목 놓아 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에 떠돌아다닙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날 늦지 않게 출근하려면 어서 자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들어 오히려 잠이 더 달아납니다. 조바심이 난 탓에 침대에서 확 일어나 거실을 뱅글뱅글 걸어다닙니다. 그러면서 거실 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대출을 갚으려면 집을 내놓아야 할 테니까, 그럼 이건 중고상점에 팔고, 저건 안 되고, 아 이건 연애할 때 같이 샀던 거니까 좀 아깝네... 이러다보면 새벽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신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만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습니다. 소위 말하는 ‘꿈도 안 꾸고 자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수면제나 진정제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약이 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약은 저를 금방 재웠습니다. 이건 술을 마셨을 때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술은 저를 졸리게 하고, 재웠다가 도중에 깨우기도 하는데, 약은 졸리게 하는 중간과정 없이 어느 순간 훅 잠에 들게 하고 쭉 재워서 아침에 깨웠습니다. 아주 놀라웠습니다.
거의 2개월 가량 매일처럼 처방약을 먹고 잠들었습니다. 약에 내성이 생길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저는 약 없이는 푹 잘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약의 양은 아주 적었고, 의사 선생님께서도 제가 먹는 약이 강한 약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저는 스스로가 약에 의존적으로 되어 간다는 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몇 번 약을 끊고 자보려고 했는데, 약 없이도 잘 자야 한다는 압박감이 거꾸로 저를 각성하게 만들어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속이 심하게 쓰렸습니다. 워낙 위가 안 좋긴 했지만, 이렇게 척추 근방에서부터 근육이 당기는 느낌이 들면서 쑤시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머리도 깨질 것처럼 아프고 자꾸 헛구역질이 올라왔습니다.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보다 하고 참기에는 통증이 꽤 심했기 때문에, 동네 내과에 예약을 해서 위 내시경과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비장이 커져 있고, 혈소판과 백혈구 수치가 낮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원인은 동네 내과에서 알아낼 수 없으니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진을 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마침 주말인지라 그냥 집으로 바로 왔습니다. 내시경 후유증인지, 몸이 급작스레 안 좋아져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끙끙 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게 별 것도 아닌 증상 같은데 왜 이리 유난스럽냐고 타박하던 신랑이, 저의 체온이 39.6도를 찍은 걸 보고는 깜짝 놀라 아들을 데리고 해열제를 사러 나갔습니다. 밖은 찌는 듯한 더위인데 저는 혼자 너무 추워 벌벌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머리가 무겁고 몹시도 어지러웠습니다. 손가락 하나도 꼼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겨우 휴대전화를 제 옆에 끌어다놓고 증상의 원인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비장이 커지고, 혈소판과 백혈구 수치가 낮은’ 경우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히는 병은 담낭암, 두 번째는 췌장암, 세 번째는 백혈병이라고 나왔습니다. 백혈병 이라는 단어까지 보고 나서 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조용한 집에서 홀로 천장을 쳐다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신랑한테 빚만 남겨놓고 이렇게 죽는가보다’란 것이었습니다. 인생이 참 허망했습니다. 10년 간 열심히 벌어서 빚 갚으려고 했는데, 빚도 못 갚겠구나, 뭐 이런 종류의 염려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온종일 헛구역질이 심하고 목이 부어서 뭘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신랑이 사온 호박죽을 먹여주었는데, 한 숟가락을 겨우 삼키고는 목이 아픈 나머지 절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루를 꼬박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는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신세가 처량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몸이 다소 나아지자, 거울을 보는데 눈의 흰자위가 노래진 것 같았습니다. 황달이 온 것입니다. 그제서야 제 증상의 원인을 알았습니다. 저는 A형 간염에 걸렸던 것입니다. 7월 초에 무심코 먹었던 조개젓이 문제였습니다. 조개젓은 그때 뭐하러 먹었나라는 후회보다는, 담낭암도, 췌장암도, 백혈병도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기쁨이 훨씬 컸습니다.
A형 간염은 법정 전염병이기 때문에 그 길로 대학병원에 일주일 간 입원했습니다. 간수치가 떨어지면서 몸과 머리가 금세 가벼워지고, 소화불량이 없어져 입맛이 돌아오고, 몰라보게 건강해졌습니다. 서둘러 입원하느라 집에 놓고 와버린 정신의학과 약을 처음에는 아쉬워했지만, 그 약 없이도 병원에서 일주일 간 잘만 잤습니다. 우습지만 절대 못 끊을 것 같았던 정신의학과 약을 간염 덕분에 그 자리에서 딱 끊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병원 식사 맛없어서 먹기 싫다는데, 호박죽 한 숟가락도 못 넘겼던 저는 매끼를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입원해있는 제게 신랑이 박완서의 글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중국 속담이 하나 있었습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줄창 링거를 맞느라 양손 혈관에 여기저기 바늘 자국이 생기고, 링거 거치대 때문에 엘리베이터로만 층간 이동을 할 수 있었는데, 드디어 퇴원 전날 링거를 떼고 자유롭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계단을 맘대로 오르내리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요! 그리고 링거줄 없이 이를 닦고 화장실을 가고 샤워를 하는 게 얼마나 편안한 일이었는지요. 진실로 땅에서 걸어 다니는 건 기적이었습니다.
예전에 ‘돈을 잃은 것은 적게 잃은 것이고, 사람을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은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란 글귀를 보았을 때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과 ‘건강’을 가벼이 봤다기보다, ‘돈’을 크게 봤기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아니, 돈을 잃은 게 왜 적게 잃은 거야. 어떻게 해서 번 돈인데.’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건강’을 잃어보니까, 희한하게도 그 순간 돈 잃은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프고, 아프고, 아플 뿐이었습니다. 이래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거라고 했나 봅니다.
다시 건강을 찾은 지금, 저는 모든 것을 되찾은 셈입니다. 건강하고, 주변에 사람도 많으니, 이참에 돈도 다시 열심히 벌면 될 일입니다. 신랑과 아들만을 빚더미에 내몰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합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가족들과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역시 돈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앞으로도 힘든 순간은 종종 찾아오겠지만, 그 때마다 간염으로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씩씩하게 극복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