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일터는 훌륭한 동료가 있는 곳이다
DVD 대여 업체에서 글로벌 공룡이 된 넷플릭스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넷플릭스를 알기 전과 후’로 나누는 걸 봤습니다. 그때는 피식 웃었는데 미드 시리즈를 모두 보고 난 지금은 그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무척 바쁘고 고된 하루를 보낸 후, 좋아하는 미드를 아껴서 한 편씩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더라고요.
넷플릭스의 2020년 1월 실적 발표는 많은 CEO를 배 아프게 했습니다. 4분기 매출이 30.6%, 영업이익이 8.4% 증가하면서 2019 년 매출 200억 달러(약 23조 3,000억 원), 영업이익 26억 달러(약 3조 290억 원)를 기록했거든요. 물론 아마존과 디즈니의 추격이 위협적이고, 시장 포화라는 도전 과제로 상당히 고전하고는 있지만 넷플릭스는 여전히 업계 최고의 자리에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최대 수혜 기업이기도 하고요.
잘나가는 기업을 보면 누구나 성공 비결을 궁금해합니다. 당연히 넷플릭스의 성공 전략에 대해서도 여러 분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기업 전략에는 워낙 여러 변수가 맞물려 돌아가기에 특정 기업의 성공 전략을 무작정 따라 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대로 따라 해도 실패하는 비즈니스가 수두룩하니까요.
다만 넷플릭스의 초기 사업 모델이 반쯤은 우연과 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라고 해도, 초반의 성공을 넘어서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하는 비결은 충분히 살펴볼 만합니다.
넷플릭스는 인재를 대하는 방식이 남다릅니다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기업은 생산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제조업과 달리 사람, 즉 직원의 역량에 의지합니다. 기업의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는 뛰어난 인재를 끌어오고 유지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실리콘밸리의 다른 기업들을 배 아프게 할 정도로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주는 대기업,
미래 잠재력이 높은 콘텐츠 기업이라는
매력도 있지만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는 2009년 ‘자유와 책임의 문화: 넷플릭스 컬처 데크’ 라는 문서를 사내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넷플릭스 인재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어떤 사람들이 최고의 실적을 내며 일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징표입니다. 넷플릭스처럼 급속히 성장하는 실리콘 밸리 기업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명확히 정의하거나 공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문서는 공개되자마자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에 영감을 주는 지침서가 됐습니다.
주요 항목은 이렇습니다.
Seven Aspects of our Culture: 넷플릭스 문화의 일곱 가지 측면
• Values are what we Value: 우리가 실제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진짜 가치이다.
• High Performance: 높은 성과
• Freedom & Responsibility: 자유와 책임
• Context, not Control: 통제보다는 일의 맥락을 전달
• 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 긴밀하게 연결되었지만, 느슨하게 구성된 조직 구성
• Pay Top of Market: 동종 업계 최고 임금
• Promotions & Development: 승진과 성장 기회
출처: 넷플릭스의 ‘자유와 책임의 문화(Freedom & Responsibility Culture)’ 문서
최고의 자유와 보상을 해주겠다, 탁월함만 유지해준다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엉성해 보이기까지 하는) 문서 전반에 흐르는 기조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탁월함을 추구한다. 우리 문화의 목적은 우리 스스로 탁월함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복지를 경쟁적으로 어필하는 실리콘밸리의 유행에 선을 긋습니다.
훌륭한 일터는
훌륭한 동료가 있는 곳이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같이 일하는 팀장에게 배울 건 하나도 없고 동료들은 발목을 잡는 무능한 사람들뿐이라면, 일하는 시간과 공간이 지긋지긋해집니다. 구내식당이 5성급 호텔 수준이라도, 온갖 편의시설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어도 위안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저도 돌이켜보면 회사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들은 어렵다고 소문난 프로젝트를 탁월한 멤버들과 힘을 합쳐 성취하던 때였습니다. 넷플릭스의 태도는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잡스는 “사람들은 뛰어난 인재들은 남들과 함께 일하는 걸 싫어 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A급 선수들은 A급 선수들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단지 C급 선수들과 일하는 걸 싫어할 뿐이다” 라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직원에게 말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너희를 관리(control)하지 않을 거야.
어른으로서 최고로 대우하고 자유를 존중할 테니
우리의 가치와 기대를 따라와 줘.
넷플릭스가 직원을 어른으로 대하면서 기대치를 최고로 높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최고의 팀이 회사 성장에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는 절차적인 일은 아무리 잘해도 평균 대비 2배 정도의 성과를 올릴 뿐이지만,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일은 평균보다 10배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최고로 창의적인 팀은 그 가치가 엄청나다고 확신하는 거죠.
우리도 직원을 어른으로 대우하는지 생각해봅시다
넷플릭스는 직원을 어른으로 대우합니다. 실무자를 ‘인폼드 캡틴 informed captain(가장 잘 알고 있는 수장)’이라고 부르며 재량을 일임합니다. 동시에 그에 따른 탁월함과 무거운 책임도 요구하죠. 담당자는 ‘어떻게 하면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까’를 집요하게 고민할 뿐 (잘못되면 본인 책임이니까), ‘상사의 의중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요즘 90년대생에 대한 한탄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일에 무성의하고, 일찍 퇴근해서 자기 생활만 즐기고 싶어 한다면서요.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세대라면 스타트업에 그토록 열정을 쏟아붓고, 스펙을 위해서 기성세대는 엄두도 못 낼 성실함을 보일 리 없잖습니까.
우리는 밀레니얼 직원을 어른으로 보기보다는 미성숙한 수습생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권한과 가이드를 주지 않는 등 아이처럼 대접하면서 아이처럼 군다고 비난하면 안 되죠.
보고서를 써도 어차피 팀장이 다 뜯어고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바꾼다면 누가 의욕적으로 쓰겠습니까. 머릿속에 원하는 게 정해져 있으면 미리 말해주든지요. 알아서 쓰라고 해놓고, 결국 가져가면 데드라인이 가까이 올 때까지 전면 수정과 깨작깨작 수정을 반복합니다. 그러니 미적대며 가장 늦게 주는 게 현명하고 효율적입니다. 시킨 것 외에는 쓸데없이 나서서 할 필요도 없고 말입니다.
직원이 의욕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도 비극이 벌어집니다. 온갖 업무가 제안자에게 떨어지기에 당사자의 삶은 피폐해지지만, 성과는 팀장이나 선배가 대표로 가져갑니다. 직원은 아직 책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이런 경험이 세 번만 반복되면 아무리 의욕적이고 창의적인 직원도 무기력해집니다.
업무 배분도 마찬가지입니다. 90년대생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성장을 중시하는 세대입니다. 예전처럼 막내니까 허드렛일 만 시킨다고 생각해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 그럼 막내가 복사해야지, 너무 고귀하게 자라셔서 허드렛 일은 싫다고? 그러면, 부장인 내가 하리?”
제 말은 막내라는 이유로 당연한 듯 보조만 맡기는 게 아니라그 직급과 경험에서 할 수 있는 소규모 프로젝트를 찾아 맡기라는 겁니다. 어른이니까요. 대통령이 오는 1만 명 규모의 국제 행사에서도 복사 담당 직원은 무기력하고 지루합니다. 하지만 소규모라 하더라도 자기가 기 획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갖는 프로젝트 PM이 되면, 비품을 사러 뛰어다니더라도 눈이 반짝거리기 마련입니다.
“직원을 아이로 대하는 리더는 일상이 피곤합니다. 베이비시터처럼 매사에 챙겨야 하니까요. 리더는 고단한데 직원은 점점 어려집니다. 자기 스스로 판단하거나 책임을 지지도 않고, 시킨 것 이외의 일을 하기도 싫어하거든요. 눈을 비비고 다시 봐주세요. 그들은 어른입니다. 어른처럼 대하면 어른처럼 행동할 겁니다. 자유와 권한, 그리고 책임을 주세요.”
열심히 일하는 데 말 때문에 손해보고 있다면?
일상의 언어와 다른 '일의 언어'를 배우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