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彼者 心安也』 열아홉 번째 글
약속 시간 2시.
나는 이미 1시 50분에 도착했다.
그런데 상대는 2시 20분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기를 바라보다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오시는 중이신가요?”
잠시 후 돌아온 답은 익숙하다.
“죄송해요, 길이 좀 막혀서요.”
하지만 그 길이 매번 막히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지각은 단순한 ‘시간 관리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반복되는 지각에는 심리적 우위와 관계 태도의 무의식이 숨어 있다.
특히 거래 관계에서라면, 그 의미는 더 분명해진다.
시간을 늦추는 사람은 종종 관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 한 광고대행사 대표는 이런 경험을 털어놓았다.
“한 거래처 담당자가 매번 미팅 시간을 10~15분 늦어요.
처음엔 바쁜가보다 했는데, 나중엔 알겠더라고요.
‘내가 조금 늦어도 당신들은 기다려야 하는 관계다’라는 무언의 신호였어요.”
그는 결국 그 거래처와의 협력을 중단했다.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결국 신뢰도 지키지 않아요.”
짧지만 강한 말이었다.
시간을 지킨다는 건 단순한 성실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상대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지각이 반복되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자기중심형 지각자.
자신의 일정을 기준으로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습관이 된다.
이 유형은 본인에게만 관대한 사람들이다.
시간을 늦추는 행위가 타인의 일정과 감정을 얼마나 흔드는지 모른다.
둘째, 관계권력형 지각자.
지각을 ‘무기’처럼 쓰는 사람이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던진다.
실제로 협상 장면에서도 이런 전략을 쓴다.
늦게 등장함으로써 심리적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처음엔 강하게 보여도, 결국 신뢰의 이탈로 끝난다.
셋째, 불안형 지각자.
이들은 완벽주의적 불안 때문에 늦는다.
출발 전까지 옷차림, 자료, 메시지까지 점검하느라 시간을 놓친다.
겉으론 무책임해 보이지만, 사실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비난보다 심리적 안정감이다.
그렇다면, 반복적으로 지각하는 거래 상대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무조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관계가 꼬이기 쉽다.
대신 원칙과 신호의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
첫째, ‘한 번은 이해하되, 두 번은 기록하라.’
첫 지각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는 패턴이다.
그때는 “앞으로 일정은 미리 조정해 주세요”라고 명확히 말해야 한다.
기록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의 증거가 된다.
둘째, 다음 약속은 ‘시간 제한형’으로 설정하라.
“2시부터 2시 40분까지 가능하겠습니다.”
이 한 문장만으로 상대는 늦을 때의 불편함을 인식한다.
시간이 곧 거래의 신뢰라는 걸 느끼게 해야 한다.
셋째, 지각을 반복하는 상대에게는 ‘중요도’를 낮춰라.
그 사람을 기다리며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그 대신, 그 시간에 다른 일정이나 작업을 배치하라.
이건 단순한 효율이 아니라 자기 존중의 태도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지역 행사 납품 업체가 약속된 회의에 30분씩 늦었다.
처음엔 “지방이라 차가 막혔다”는 핑계였고, 다음엔 “급한 전화가 와서”였다.
그러던 중 담당자는 결심했다.
“이젠 기다리지 말자.”
그날부터 회의 시작을 늦추지 않고, 시간에 맞춰 문을 닫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다음 회의부터 그 업체는 10분 일찍 도착했다.
그들은 ‘시간을 지키는 문화’가 강요가 아닌 상호 존중의 약속임을 깨달은 것이다.
지각이 일상인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면,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그들은 단순히 무례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불안이나 권력욕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 심리를 읽는 순간, 우리는 기다림에서 자유로워진다.
결국 중요한 건 상대의 시간감각이 아니라,
내가 내 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시간을 지킨다는 건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존중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다.
늦는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내 시간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