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밀어내는 건 결국, 이렇게 작은 숨 하나였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세상이 유난히 무겁고, 하루가 버겁게만 느껴지던 때였다. 내가 버티지 않으면 하루가 무너질 것만 같았고, 조금이라도 힘을 풀면 모든 게 한 순간에 흩어질 것만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날들이 길게 이어졌다.
아무리 버텨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결국 모든 것을 혼자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긴장했고, 늘 온몸에 힘을 잔뜩 준 채 하루하루를 견뎠다. 버티는 것이 생존이라고 믿으며, 두려움까지 숨이 막히도록 끌어안고 살아갔다.
"결국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겨우 견디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딘가 아주 깊고 어두운 곳으로 천천히 끌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만 짙어졌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했다.
“네까짓 게 뭐라고.”
처음엔 그 말이 거칠게 들렸다. 마음을 긁어내는 상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곧 그 말이 내 어깨를 천천히 풀어주었다. 마치 오래 붙들고 있던 거대한 세계를 향해 누군가 대신 외쳐준 것처럼.
그렇게까지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까지 네가 혼자일 필요는 없다.
그 말은 겉으론 상처처럼 보였지만, 묘하게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 안에는 조용하고도 따뜻한 역설이 숨어 있었다.
"힘 좀 빼."
남다른 존재가 되고자 애쓰며 살았던 나는, '넌 그렇게까지 거대한 존재가 아니야'라고 말해준 그 사람의 입을 통해 진짜 위로를 받았다.
"네 까짓게 뭐라고. 힘 좀 빼. 그냥 너로 살아"
나는 혼자서 세상을 뒤집을 힘도,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괜찮았다. 내가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삶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다는 것은 결함이 아니라, 내가 진짜 감당할 수 있는 무게였다.
기대와 역할,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숨어 있던 욕심까지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이 시작됐다.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더 깊은 어둠이 찾아왔지만, 오히려 어둠이 가장 짙어진 그때, 흑백이었던 내 세상에 빛이 한 줄기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세상이 다시 제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힘을 주고 버틴다는 건, 사실 두려움을 쥐고 있는 손의 모양과 비슷하다. 놓치면 사라질까 봐, 놓으면 무너질까 봐, 손끝까지 온 힘을 끌어모아 붙잡고 있는 모양.
나는 관성처럼 굳어 있던 손아귀를 천천히 풀어보기로 했다. 평생 살아온 방식과 결별하는 일, 나를 죄어오던 힘을 내려놓는 일은 내게 작은 혁명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혁명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선택이었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듯 보이던 날, 나는 절망의 절벽 앞에서 기적을 만난다. 떨어지면 죽음인 줄 알았던 그곳에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었다. 떨어지지 않으려 애썼던 내 눈앞에, 기적처럼 놓인 다리 하나.
그제야 알았다.
끝까지 버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음을.
“그래, 나는 작다. 작으니까 버틸 수 있고, 작으니까 내려놓을 수도 있다. 이 무게는 내 것이 아니다.”
그 말이 어둠 속 작은 등불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모든 걸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 오늘을 살아내기만 해도 충분한 사람.
나는 작은,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임을, 그날 처음 알았다.
매달려있던 손아귀를 놓는 순간, 삶이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
깊게 막혀 있던 숨이 다시 몸을 돌아오기 시작했다.
삶이 생명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버거운 날이면 나는 다시 그 말을 불러낸다.
“힘 좀 빼. 네까짓 게 뭐라고.”
자책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가볍게 돌려놓는 주문처럼, 과하게 쥐고 있던 것들을 천천히 흘려보내는 숨처럼.
모든 짐을 끌어안으려는 완벽함을 멈추게 하는 말.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게 해주는 말.
나를 다시 작고 온전한 ‘하루’로 데려오는 말.
힘을 빼면, 살아있는 것들은 스스로의 결을 따라 흐르기 시작한다. 물이 바위를 밀어내지 않고 곁을 감싸 흐르듯, 세상 또한 그렇게 나와 함께 흘러간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있기에 살아 숨 쉬며, 각자의 속도로 흘러간다.
나는 세상을 붙들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시간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내가 버티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매일의 하루가 나를 받쳐주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밀어주며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힘을 뺀다는 것이 포기가 아님을.
힘을 뺀다는 건, 잠시 세계를 믿어보는 일. 내가 아닌 무언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 빛이 스며들 작은 틈 하나를 열어두는 일이었다.
지금도 어두운 날은 찾아온다. 한 걸음도 나아간 것 같지 않은 날, 빛이 없는 터널을 손으로 더듬듯 걸어가는 날. 그럴 때면 나는 다시 그 말 하나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본다.
"힘 좀 빼. 네까짓 게 뭐라고"
그러면 다시 숨이 깊어진다. 아무 말 없이 흐르던 시간들이 조용한 손길로 나를 붙잡는다. 부드럽게 끌어주며 '오늘'이라는 자리로 데려다준다.
힘을 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작은 빛, 먼 곳에서 오는 희미한 희망의 기척, 그리고 어디에도 가려지지 않는 지금의 나.
결국 나를 살린 건 큰 용기도, 대단한 의지도 아니었다. 그저 힘을 빼도 괜찮다는 작은 한마디.
그 말이 내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 빛이 들어오게 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도 내가 길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둠 속 작은 등불이 되어주었다.
나를 살린 건 이 짧은 한마디였다. 너무 짧아서 놓치기 쉬운, 그러나 가장 깊은 말.
"힘 좀 빼. 네 까짓게 뭐라고."
이 말은 오늘도 내 어깨를 풀어주며, 다시 살아갈 길을 열어준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끔은 이런 말 하나에 비로소 숨을 쉬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둠을 밀어내는 건 결국, 이렇게 작은 숨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