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영원하지 않은 인연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발견하기

‘우리’가 다시 '너와 나'로 시작하는 새로운 여행!

by 메리힐데

영원할 것 같았던 관계가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나의 일부가 없어진 것 같은 공허함에 꽤 오랫동안 전원이 꺼진 로봇이 되곤 했다. 눈을 감으면 죽음인 듯했는데, 기가 막히게도 눈을 뜨면 삶이었다. 해가 떠있어도 밤이었고, 달이 뜨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낮에는 눈치를 한가득 보며 시끄러운 어둠 속에서 세상을 피했다. 떠오른 태양을 피하려 눈을 감았고,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밝음에 손으로 눈을 가리곤 했다. 밤에는 자연스러운 어둠 속에 빛나는 작은 별과 달을 피하려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빛을 피하기 위해 최선의 어둠을 만들어내려 애썼다.


나는 언제나 낡지 않는 로봇이고 싶었다. 최신으로 업데이트되어 언제나 주위에 도움이 되어주는 로봇이길 바랐다. 그럼으로 사랑받고 싶었다. 낡을 바에는 망가져버리고 싶었다. 낡은 로봇에 싫증내고 하나씩 새로운 로봇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너무나도 마음 저린 일이었기에, 낡고 고장 난 부분 하나 없는 무결한 로봇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녹슬지 않으려 애썼다. 고장 나지 않으려 애썼다. 낡지 않으려 애썼다. 사랑받기 위해 애썼다.


차라리 전원이 꺼져 다시는 켜지지 않는 것이 하나씩 고장 나는 것보다 나으리라 생각하며,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사랑을 잃어갔다. 하지만 전원은 꺼지지 않았고 어디에서나 밝아오는 빛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피어오르는 빛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로봇드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동물만 사는 1980년대 뉴욕의 한 아파트에 사는 개는 꺼진 tv 액정에 홀로 사는 스스로의 반영이 비칠 때마다 고독이 치민다. 때마침 개는 tv 광고에서 쓸쓸한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반려 로봇을 본다. 동거를 택한 개와 로봇은 서로의 삶에서 다시 마주하기 어려울 찬란한 우정을 나누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행복은 스스로 확신하는 순간 증발해버리고 만다. 어느 날 개와 함께 해수욕을 즐기던 로봇은 그만 고장이 나 멈춰 선다. 개는 백사장에 로봇을 잠시 남겨둔 후 서둘러 수리 도구를 갖춘 채 다시 휴가지를 찾지만, 그새 폐장한 해변엔 다음 여름까지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공지와 함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날 이후 둘은 밤낮으로 상대의 꿈을 꾼다. 홀로 남은 로봇은 우두커니 자신이 없는 개의 시간을 그린다. 다시 혼자가 된 개는 삶의 모든 순간바다 로봇의 흔적을 찾는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나 화려한 그래픽 디자인 없이도 나를 눈물짓게 했다. 사랑에 빠진 직후의 환희와 상대의 부재가 불러오는 적막함, 우정과 사랑 모두에 존재하는 순정과 질투 등의 감정을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지나간 인연에 말없이 감사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용기 내어 했던 모든 사랑에 감사하게 만들어준 영화였다. 상처받아도 사랑하기로 했던 스스로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어둠 속에 있는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나를, 다시금 빛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준 영화였다.


고장 난 채로 외롭게 개와의 재회를 상상하며 버티던 로봇은 결국 고물상에서 파편들로 해체되어 죽음을 마주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윽고 다른 이와의 만남으로 라디오로 대체한 새로운 몸을 지니고 다시 태어난다. 새로운 사랑 곁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는 건물 옥상에서 우연히 개를 마주하나 그에게 다가가지 않는 대신에 그가 좋아하던 노래 <september-earth, wind & fire>를 튼다.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이윽고 춤을 추기 시작하고, 창문 아래에 있는 개도 같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둘은 처음 만날 때 춘 춤을 춘다. 잠시나마 재회를 상상했지만 결국 로봇과 개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새 연인 곁에서, 어여쁜 추억을 간직한 채로 새로운 사랑을 이어나간다.


개와 로봇은 이별을 품은 현실적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함께하는 동안 하나의 취향이 곧 둘의 취향이 되었고, 상대의 취미가 서로의 재미가 되었던 시간들. 다시는 서로와 그 시간들을 함께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려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이 모여 새로운 자신을 세울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한 채로 멀리서 서로의 행복을 염원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로봇과 개는 사랑했던 모든 시간을 잠시나마 되돌아보며 지낸다. 그러나 그때로 되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사랑은 온갖 고독을 넘어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이니까.


로봇드림의 사랑은 사랑의 성숙함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그것을 새로운 곳에서 만들려 하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사랑도 그렇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마치 모든 파편이 분리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공허함과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사랑을 하게 될 때, 우리는 또다시 회복의 기회라는 희망을 마주한다. 충분한 어둠을 지나고 나면 빛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겨난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사랑하는 것은 중요한 부품이 빠진 고장 난 로봇으로 살아갈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만들어간다. 인생 여정 속에서 경험을 확장해나간다. 그 시간들이 나를 새롭고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사랑에 아프고 사랑에 상처받아도, 사랑에 살고 사랑에 희망을 둔다.


당신과 함께한 여행을 간직한 채로,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동안, 꾸준히 사랑하며 살아갈 '너와 나'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당신과 내가 만나 '우리'가 되었다가 다시금 '너와 나'가 되어 걸어갈 모든 날에, 사랑할 용기가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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