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도 없는 사무직 퇴사자의 프리랜서 도전기
번역 아카데미 종강과 함께, 나는 좋든 싫든 ‘프리랜서’의 세계에 내던져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프리랜서 ‘지망생’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홀로서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웠고, 다른 건 몰라도 그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는 사실만큼은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객인 출판사 입장에서 본 나는 여전이 경력 하나 없는 무명의 신인에 불과했고, 당연한 일이지만 경력 하나 없는 무명의 신인에게는 그 누구도 일감을 맡겨주지 않았다.
물론 프리랜서 시장에 뛰어들자마자 일이 물밀 듯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자리를 잡기 전까지 여기 저기 문을 두드리며 고달픈 시기를 보내리라는 각오도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시간이 한 달, 두 달 흐르는 동안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커져갔다. 퇴사 전에 나름대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배움의 과정이 다 끝난 이후의 미래까지 내다볼 수는 없었다. 더 이상은 학생이라고 핑계를 댈 수도 없는 마당에 이 애매한 시기가 기약 없이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애초에 넉넉하지도 못했던 희망과 자신감을 자꾸만 좀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를 단순한 백수가 아니라 불완전하게나마 ‘프리랜서’의 범주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기간 동안 번역계의 언저리를 맴돌며 부스러기 같은 일이나마 주워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업계든 마찬가지겠지만, 번역가의 사회에도 번듯하게 자리 잡은 프리랜서가 맡기에는 너무 사소해서(다시 말해 힘들고 돈도 안 되고 보람도 없어서) 나 같은 초짜들에게나 떨어지는 일들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로 치면 ‘행인1’이나 ‘학생3’ 같은 바로 그런 일들이.
예를 들어, 나를 포함한 번역계의 엑스트라들은 언젠가 주연으로 데뷔할 날을 꿈꾸며 ‘원서 리뷰’라고 불리는 작업을 도맡아 했다. 원서 리뷰란 쉽게 말해서 출판사가 정해준 원서 한 권을 통째로 읽고 요약해서 보고서 형식으로 제출하는 일이었다.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보통 책 전체가 아니라 나 같은 ‘리뷰어’들이 요약해준 A4 10~15장 분량의 보고서를 읽고 그 책의 출간 여부를 결정한다) 출판이 확정된 번역서를 옮기는 정식 번역가는 수백만 원의 번역료를 받지만, 애초에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리뷰어에게는 권당 1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수료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 책이 출간될 때 리뷰를 한 사람의 이름이 어디에도 남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평균 2~300페이지의 원서를 읽고 분석하는 데 못해도 1주일가량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달 내내 일해도 통장에 50만원이 꽂힐까 말까한 단가는 받을 때마다 자부심보다 자괴감을 유발하는 수준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기회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까 싶어 쥐꼬리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입을 올리며 자투리 일에 매달리던 몇 개월 사이, 함께 번역가를 준비했던 동기들 중 세 명이 정식 번역서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차례차례 들려왔다. 내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물론 그렇겠지만) 남들보다 이르게 데뷔 기회를 잡은 동기들은 실력과 더불어 각각 미국 대학 졸업, 화학공학과 전공, 교사 자격증 보유라는 ‘눈에 띄는’ 프로필을 가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평범한 전공과 경력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점점 더 위축되었다.
퇴사 후 1년 동안 영어 공부며 번역 공부에 열심히 매달렸고, 나름대로 플러스알파를 만들어보고자 일상툰 블로그도 시작했다. 하지만 그 1년여 간의 노력은 (말 할 필요도 없이) 나를 영어 원어민으로도, 번역의 달인으로도, 파워 블로거로도 만들어주지 못했다. 손에 들린 패를 아무리 노려봐도 일관되게 별 거 없는 평범함 뿐, 그 어떤 비범한 부분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착잡했다.
돌이켜보면 이 무렵은 퇴사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간 중에서 가장 큰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시기였다.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하냐고 묻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딱 떨어지는 대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프리랜서 번역가라고 하자니 내 이름으로 작업 중인 역서 한 권이 없었고, 백수라고 말하기엔 이 바닥에 쏟아 붓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컸다. 겉으로는 늘 “그냥 번역 비슷한 거 하고 있어~”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열등감과 부담감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넘실대고 있었다.
특별히 대범한 것도, 남들보다 끈기가 강한 것도 아닌 내가 그 서럽고 배고픈 날들을 견뎌낸 것은 오직 회사로 돌아가기가 죽을 만큼 싫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대가 아니었다. 자투리 일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수입을 올리지 못했던 나는 5년 간 조금씩 모아온 저축이 떨어지는 순간 이 도전도 끝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끼고 아껴봤자 추가적인 수입원을 만들지 못한다면 앞으로 1년 정도가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일 터였다.
나는 자신을 타일렀다. 어차피 그만둔 회사, 어차피 단절된 경력이라면 그냥 견딜 수 있을 때까지 한 번 견뎌보자고. 지금 포기하나 1년 뒤에 포기하나 별로 다를 것도 없지 않느냐고. 만약 그 기간이 지날 때까지도 눈에 띄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취업준비를 하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든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고.
그렇게 버티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내가 버티면서 할 수 있는 노력이라 봤자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A급 인재가 못 된다면 B급 인재 중에서 B+급이라도 한번 되어 보자는 것이 내가 택한 전략이었다(사실상 유일한 옵션이기도 했고). 별다른 특장점도 없으면서 성실하다는 평판마저 잃으면 끝이라고 생각한 나는 마감 절대 어기지 않기, 까다롭고 돈 안 되는 일도 웃으면서 받기, 업무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 유지하기 등 자신만의 룰을 세운 뒤 정말 이를 악물고 지켰다. 이 외에 내가 자신 있게 어필했던 강점(?)을 굳이 꼽자면 로펌에 다니던 시절 고객에게 치이고 변호사에게 까이며 단련된 전화 응대 스킬(아이구 부장님, 그럼요~ 네네네네 잘 알겠습니다. 네네네 지금 바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혹은 정중하다 못해 비굴한 이메일 작성 능력(바쁘신 중에 메일을 드리게 되어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이번에 연락을 드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옵고…) 정도가 있을까? 내세울 수 있는 게 성실함과 원만함뿐이라면 그런 장점이라도 제대로 보여주자고 마음먹은 나는 고향에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면서까지 마감을 지켰고,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웃는 낯을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처럼 어떻게든 프리랜서 번역가가 한 번 되어보겠다고 몇 달간 발버둥 친 끝에, 드디어 내게도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첫 정식 일감이 들어왔다.
그런데, 어라? 내가 따낸 첫 일감은 뜬금없게도 번역이 아니라 웹툰 그림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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