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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메리 Oct 11. 2018

무슨 일이든 일단 하고 보자

기술도 없는 사무직 퇴사자의 프리랜서 도전기


반 백수, 반 프리랜서로 하루하루 버티던 어느 날, 경찰관으로 일하던 소꿉친구 P가 평일 대낮부터 전화를 걸어 왔다. 밥이나 술을 먹자고 연락할 시간은 아니고, 특별히 죄 지은 일도 없는데… 의아해하며 휴대폰을 집어든 그 순간까지만 해도, 나는 그 통화가 내 첫 번째 정식 프리랜서 일감으로 연결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P가 연락한 목적은 밥도 술도 수사도 아닌 부탁이었다. 경찰 내부적으로 쓰는 용어인 듯 생소한 표현이 군데군데 섞인 복잡한 설명을 통해 내가 이해한 그의 아쉬운 소리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P는 모 지역 경찰서의 ‘청문감사관실’이라는 팀에서 일하고 있다(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일반 기업의 법무팀 비스무리한 곳인 것 같다). 경찰도 일종의 조직인지라, 각 지역 경찰서들은 상위 기관인 중앙 경찰청의 지휘 아래 다양한 내, 외부 홍보 캠페인을 진행한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경찰서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한 경찰이 웹툰을 통해 홍보 활동을 벌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윗선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작품을 본 내 친구와 팀원들은 마침 내부적으로 기획 중이던 경찰관 품위 유지 캠페인(?)에 웹툰을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조직 규정 상 내부 캠페인에는 예산이 거의 책정되지 않는데다 작업물을 외부에 공개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이름 있는 작가를 섭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던 P는 마침 출판계 쪽에서 밥을 벌어먹고 있다는 내 존재를 떠올렸고, 평일 대낮에 뜬금없이 전화를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구구절절한 설명이 따라 붙은 부탁의 핵심은 바로 ‘주변에서 웹툰을 그릴 수 있을 만한 이름 없는(=단가가 매우 저렴한) 일러스트레이터를 알아봐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훗날 프리랜서가 되고 보니 돈을 많이 안 주려는 고객들은 꼭 이렇게 길고 장황한 명분을 덧붙이는 경향이 있다)

물론 P가 당시 내 사정을 정확히 알았다면 이런 부탁을 했을 리 없다. 나는 엄밀히 말해서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출판계에서 일하고 싶어 얼쩡대는 뜨내기였으니까. 상황을 잘 모르는 그가 나를 찾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내게는 이름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를 소개해줄 능력이 전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하고 끝낼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몇 개월 간 매일같이 일상툰을 그려 올렸던 내 블로그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이 한 통의 전화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찰나의 희망과 함께.




평소의 나라면 언감생심 그 일에 숟가락을 디밀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일상툰 블로그를 운영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번역가가 되는 데 일말의 차별성이라도 만들어보고자 시작한 일이었지 그 아마추어 수준의 그림들을 가지고 정식 일감을 따거나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원고료를 많이 쳐줄 수도 없고 작업물을 외부에 공개해서도 안 된다는, ‘진짜’ 일러스트레이터라면 누구나 꺼릴 만한 악조건이 내 마음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호기를 묘하게 자극했다. 어차피 제대로 된 프로를 섭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쪽도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을까?


나는 미안하지만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를 소개해줄 여건은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며, 혹시 사정이 급하다면 내 그림도 한 번 고려해봐 줄 수 있겠냐는 말과 함께 그 동안 부끄러움에 지인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던 블로그 주소를 슬쩍 불러주었다. 20년을 알고 지냈지만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P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절반씩 섞인 반응을 보였다. 부탁을 하러 전화했다가 졸지에 부탁을 받게 된 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일 터였다. 그는 일단 윗선에 한번 보고해보겠다는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나는 놀랍게도 그 ‘윗선’이 내게 일을 맡기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록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멀쩡한 기관(세상 모든 기관 중에서 사기를 칠 가능성이 가장 낮은 바로 그 기관)과 웹툰 그림작가 계약을 맺은 것이다.


대체 사정이 얼마나 급했기에 무엇 하나 검증된 것 없는 나를 쓰기로 마음먹었을까 진지하게 궁금해 할 새도 없이, 경찰서에 찾아가 관계자분들과 인사를 나눈 순간을 기점으로 얼떨떨한 웹툰 작가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맡겨진 일은 경찰들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규정을 주제로 한 캠페인 웹툰의 ‘작화’ 부분이었다. 쉽게 말해서, ‘글’ 부분을 맡은 작가가 그 주에 연재될 줄거리를 보내주면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당장에 돈도 안 되고, 경력에 도움이 될지 어떨 지도 알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이 뜻밖의 기회는 적어도 내게 프리랜서의 업무 프로세스를 제대로 체험시켜 주었다. 원고 작성에 앞서 기획 회의를 거치고, 완성된 글 원고를 받고, 마감에 맞춰 스케치 초안을 보내고, 몇 번의 협의와 수정을 거친 뒤 채색까지 마친 최종 원고를 납품한다. 당시에는 한 명의 프리랜서로서 이러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감격스러웠다. 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마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것도 뿌듯했고, 비록 경찰서 인트라넷에만 올라가는 작품일지라도 한 편의 웹툰에 ‘그림: 서메리’라는 문구가 떡하니 찍히는 것도 신기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프리랜서 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내내 얼떨떨한 기분으로 참여했던 웹툰 연재는 약 8개월의 여정을 끝으로 무사히 완결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가장 큰 자산은 프리랜서의 도전 범위가 무한히 넓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의 나는 ‘일단 번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블로그 운영을 포함한 모든 노력의 초점을 그 쪽으로만 맞추고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직장인 시절을 쭉 거치며 몸에 밴, 한 방향만 바라보고 달리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들어온 웹툰 일감에 어설프게나마 도전하는 동안, ‘프리랜서는 내키는 일에 마음껏 도전해도 된다(아니,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는 편이 더 좋다)’는 사실이 마음에 확 와 닿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수가 연기를 하고, 유투버TV에 출연하고, 작가가 콘서트를 여는 시대인데 나는 어째서 한 우물에만 목을 매고 있었을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번역가 지망생’에서 ‘프리랜서 지망생’으로 넓히고 점점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어쨌든, 내가 8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애매한 웹툰 하나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프리랜서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업로드가 몇 화쯤 진행됐을 무렵부터는 긴 기다림에 보상이라도 하듯 다른 일감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답답하고 지지부진하다고 느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기회의 물꼬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트이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작가 유튜브: 서메리Merry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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