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메리 Sep 27. 2018

뭔가 플러스 알파가 필요해

기술도 없는 사무직 퇴사자의 프리랜서 도전기


내가 일상툰을 올리는 블로그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한창 번역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웬 블로그 얘기냐고? 우선 이 블로그는 훗날 일이 없어서 힘들 때 내게 정신적 위안이 되어 주었고, 실제로 일감을 가져다주기도 했고, 내가 번역 외에 여러 가지 분야로 도전 범위를 넓히는 데 크게 일조한 프리랜서 생활의 일등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평소 디지털파보다는 아날로그파에 가까워(기계치라는 뜻이다) 그 흔한 SNS 활동조차 거의 하지 않던 내가 블로그 운영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은 프로 번역가로 데뷔하고 생존하는 데 필요한 플러스알파가 모자라다는 불안감 탓이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코스의 중반 무렵 나를 가장 괴롭힌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플러스알파’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프로로서 계약을 따내야 할 시기가 다가올수록 실력도 실력이지만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내 프로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전장을 내민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영문과’라는 전공은 ‘프리랜서 출판번역가’라는 업계에 진입하고 생존하는 데 전혀 유리한 요소가 아니었다. 외국에서 나고 자라거나 유명 외국 대학을 나온 경쟁자들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국내 4년제 사립대학 영문과 졸업장은 전혀 대단한 명함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세상에는 영어와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가지고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경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로펌에서 일했다고는 하지만 변호사도 아니고 평범한 사무직원이었던 내겐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경력이나 전문분야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원어민이 아닐 바에야 평범한 어문계열 전공이나 애매한 사무직 경력보다 특색 있는 전공이나 경력을 가진 경쟁자가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 내가 출판사 편집자라고 해도 실력이 비슷하다면 경영 서적은 경영학과 출신에게, 과학 서적은 엔지니어 출신에게 맡기고 싶을 테니까. 당장 우리 반 동기들만 봐도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들보다 영어 실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니면서 특별히 눈에 띄는 프로필조차 갖고 있지 못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위축되었다.




내가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차별화해보고자 ‘블로그’라는 대안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이고,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식 비유를 빌리자면 한쪽 관점(a)에서 보면 우연이고, 다른 쪽 관점(b)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a) 나는 내 평범한 프로필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 마침 들은 번역 수업에서 강사분이 “여러분 모두 시간이 있으면 블로그라도 하나 운영하길 추천한다. 자기 PR도 되고, 나중에 번역서가 나오면 홍보도 할 수 있으니까.” 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나는 그 조언에 따라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의 주제가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콘텐츠 일상이 된 것은 마침 내가 남들보다 그쪽 분야에 약간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b) 책장에 빼곡히 꽂힌 일상툰 단행본과 틈틈이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보려고 이리 저리 연습한 흔적으로 가득한 노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언제나 일상툰이라는 분야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인 그림 실력이 부끄럽고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모른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었을 뿐. 강사분의 이번 조언이 없었더라도 나는 언젠가 반드시 내 과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도전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플러스알파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내게 주제가 확실한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 보나 꽤 괜찮은 아이디어로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불안한 시선을 두리번거리며 서점의 책장 사이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내가 자신 있게 전문 분야라고 내세울 만한 코너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인터넷상에 나만의 공간을 열고 직접 그린 글과 그림을 조금씩 쌓아가다 보면, 적어도 그 분야를 다룬 책을 계약할 때만큼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이라는 위안이 생겼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블로그는 얼마 안 가 생각보다 시간과 비용을 상당히 많이 잡아먹는 도전으로 밝혀졌다. 평소 내게 ‘그림’이란 언제 어디서든 펜 한 자루만 있으면 가볍게 끄적일 수 있는 소소한 취미생활이었다. 일반 연습장은 물론이고 이면지, 전단지, 포스트잇, 냅킨까지 종이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스케치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그림을 인터넷에 올리려고 마음먹으니 태블릿이며 스캐너며 포토샵이며 온갖 고가의 장비들이 필요했다. 마음 같아서는 각종 그래픽 프로그램이 쌩쌩 돌아가는 고사양의 컴퓨터까지 갖추고 싶었지만, 거기까지는 도저히 여력이 되지 않아 우선은 원래 쓰던 고물 노트북으로 최대한 버텨보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생각지도 못한 거금의 출혈사태가 지나간 후에도 한동안은 기술적인 문제로 애를 먹었다. 내겐 태블릿도 스캐너도 포토샵도 생전 만져본 적 없는 최첨단 문물이었기에 사용법을 익히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매일 그날 분량의 번역 과제를 마친 뒤 A4용지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스캔을 떠서 포토샵으로 더듬더듬 채색을 했다. 블로그 운영 초창기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입히는 시간 자체보다 각종 검색엔진과 유튜브에 프로그램 사용법을 검색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블로그는 내게 번역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비록 다소 우연한 계기와 세속적인 목적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내 일상이 담긴 그림 한 장 한 장이 모여 한 편의 웹툰이 되는 과정은 재미와 성취감을 동시에 주는 과정이었다. 게다가 부족한 실력이나마 매일같이 이야기를 구상하고 그림을 그리고 포스팅을 하는 동안 내 그림 실력과 글 실력, 포토샵 실력은 저도 모르는 새 조금씩 늘어갔다.


이렇게 낮에는 번역 공부를, 밤에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며 지내는 동안 아카데미 종강은 하루하루 가까워졌다. 마지막 날은 여지없이 찾아왔고, 동기들과 나는 조촐히 쫑파티를 한 뒤 서로 연락하며 지내자는 인사를 남기고 헤어졌다. 나는 애매하게나마 ‘학생’으로 지낼 수 있던 시절이 완전히 지나가버렸다는 찝찔한 기분을 곱씹으며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내 신분이 번역가를 지망하는 학생에서 번역가를 지망하는 백수로 바뀐 그 시기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지 약 1년이 지난, 딱 그때만큼 맑고 따뜻한 초여름이었다.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작가 유튜브: 서메리MerrySeo

이전 09화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