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메리 Nov 15. 2018

예고 없이 찾아온 프리랜서의 성수기

기술도 없는 사무직 퇴사자의 프리랜서 도전기


지금까지 이 글을 쭉 따라와 주신 분들은 알고 있겠지만,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제대로 된 첫 일감(단행본 번역)을 따기까지는 기약 없는 1년 이상의 기다림이 필요했고, 그 일을 마친 뒤 두 번째 일감을 받기까지는 또다시 2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일주일 이상 작업을 쉰 적이 없다. 아니, 쉬기는커녕, 이따금씩 일이 너무 밀려서 새로 의뢰받은 일감을 거절하거나 휴가를 가면서도 업무용 노트북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연출될 정도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프리랜서의 성수기를 보내고 있다. 물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가도 별안간 기약 없는 공백기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프리랜서의 숙명인 만큼, 이 상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길고 불안한 백수 생활 끝에 찾아온 이 호황기는 적어도 현재까지 1년 이상 공백 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이 갑작스런 성수기의 시작점은 번역 에이전시에서 두 달 만에 걸려온 두 번째 단행본 의뢰 전화였다삶에 통달한 어르신들은 제비의 날갯짓만 보고도 폭풍이 몰아칠 조짐을 알아차린다는데, 나는 인생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빗방울이 꽤 따갑게 어깨를 때릴 때까지만 해도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인가보다 생각했을 뿐 이게 폭풍 같은 성수기의 전조이자 본격적인 프리랜서 인생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나는 그저 오랜 만에 들어온 일감 소식에 흥분했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조만간 찾아올 다음 번 백수기에 대비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프리랜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무렵은 직업적으로 굉장히 애매한 시기였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시기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경력으로만 따지면 나는 이미 한 명의 어엿한 프리랜서였다. 중간 중간 공백이 있어서 그렇지 번역이며 웹툰이며 1인출판까지 다양한 작업에 프로로서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다, 각 서점에서는 옮긴이 자리에 내 이름이 인쇄된 책이 당당히 판매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나는 여전히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이 모든 일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돈이 될 만한 일은 몇 달에 한 건 정도에 불과했고, 작업 하나가 끝난 뒤 어김없이 찾아오는 긴 공백기를 감안하면 내 평균 소득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계도 유지하지 못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 벌어들인 수입이 아니라 두 번의 직장생활을 통해 모아놓은 저축으로 먹고사는 현실을 생각하면, 나는 도저히 스스로를 진짜 프리랜서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이 바닥에 뛰어든 목적은 쇼핑이나 여행에 쓸 용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살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여유자금으로 재테크를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남에게 손을 벌리거나 저축을 까먹지 않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올리지 못한다면 일을 몇 건을 했든 진짜 프리랜서가 아니라는 것이 당시의 내가 느낀 현실의 벽이었다. 이 시기에 내가 당당히 ‘프리랜서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없었던 것도, 이따금씩 ‘난 그저 프리랜서 흉내를 내며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자괴감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상황적 한계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두 번째 단행본 일감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이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했고, 번역을 하면서도 또 다시 찾아올 공백기에 대비하여 1인출판은 물론 각종 파트타임 자리나 요즘 잘 나간다는 유튜브까지 다양한 옵션을 찾아보며 이리 저리 생계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 갑자기 또 다른 일감이 들어왔다. 예전에 한 번 참여한 적이 있던 계간지 공역 건이었는데, 출판사에서 내 원고를 나쁘지 않게 봤던지 다음 호 작업을 추가로 요청해온 것이다. 이때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충분했고, 무엇보다 일을 하는 도중에 다른 의뢰가 겹쳐서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마냥 뿌듯한 마음으로 흔쾌히 작업을 수락했다. 그런데, 어라?, 얼마 후 같은 출판사에서 다른 잡지의 공역까지 맡아달라는 의뢰를 해왔고, 그로부터 며칠 후에는 1년 전에 정기 간행물 작업을 했던 또 다른 출판사에서 일감을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렇게 일이 몰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상황 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단행본 1권, 공역 3건을 동시에 작업하는 바쁜 스케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몇 달 전 그만둔 법률사무소에서 연락이 온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전화를 건 변호사는 외국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체결하여 영어로 법률문서를 주고받을 일이 생겼다며, 가능하면 쭉 같이 일했던 내게 계약서나 소송 서류 번역 등을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밀 유지에 민감한 법률 업무의 특성상, 낯선 번역회사의 얼굴도 모르는 번역가에게 작업을 맡긴다는 것이 껄끄럽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사실 이 시점에는 일정이 꽤 타이트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금 망설여졌지만, 전문적인 법률문서 번역은 일반 책 번역보다 단가가 더 높았고, 불과 몇 주 전까지 최저 생계비도 벌지 못한다며 자책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당장 돈이 될 기회를 차버리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한때 직원으로 일했던 회사와 생각지도 못했던 프리랜서 외주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일감에 얼떨떨하고 주말까지 작업에 매달려야 하는 일정이 버겁기도 했지만, 어쨌든 몇 주만 지나면 다시 백수기가 찾아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두자는 심정으로 일단 들어오는 의뢰를 최대한 거절 없이 받았다.


그런데 두 번째 단행본을 마치고 겨우 한숨 돌리려는 찰나 바로 세 번째 단행본 번역이 들어왔고, 그 뒤로도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단행본이 연달아 들어왔다. 그 사이에 진행했던 공역이나 외주 일감도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오히려 클라이언트가 다른 클라이언트를 소개해주거나 고객사가 규모를 확장하면서 거래처가 조금씩 늘어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단행본 두 권을 동시에 번역 중이고, 잡지 공역이나 외주 문서 번역 일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가끔은 인터넷에 올린 그림들을 보고 일러스트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내 글과 그림을 책으로 내고 싶다는 출판사의 연락을 받아서, 난생 처음으로 ‘옮긴이’가 아닌 ‘글쓴이’로서 원고 작업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이 갑작스런 성수기의 시작점은 번역 에이전시에서 두 달 만에 걸려온 두 번째 단행본 의뢰 전화였다그 날 이전의 프리랜서 생활이 좌절과 기쁨과 또 다른 좌절로 연결되는 에피소드로 가득했다면, 그 날 이후의 일상은 매일 매일 비슷한 날들의 연속으로 기억된다. 비슷해서 지루한 나날이 아니라, 비슷해서 행복한 그런 나날들로. 톨스토이는 말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대개 엇비슷하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은 각기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라고. 나는 이 문장에서 ‘가정’이라는 단어를 빼고 ‘프리랜서의 일상’이라는 표현을 넣어도 얼추 들어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그저 버티다보니 어느 순간 일이 풀렸다’는 식의 우연한 결말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기까지의 결코 짧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내가 뛰어들었던 크고 작은 도전들을 생각하면, 이 작은 성취가 그저 우연의 선물이라고만은 여겨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를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내가 자신을 프리랜서라고 당당히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못 된다.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가방은 너무 비싸고, 원고료를 받은 날 큰맘 먹고 들른 정육점에서도 한우 등심이 담긴 팩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호주산 갈비살을 계산대에 올려놓기 일쑤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외국어로 된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이따금씩 후배들을 만나면 기꺼이 밥을 사주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설이 나오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구입해 읽는다. 나는 3년 전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회사 밖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인간’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는 이야기였다.


다음 편에서는 내가 프리랜서로 어떻게 사는지, 다시 말해서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얻은 삶이 행복한지수입은 얼마나 되는지불안하진 않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전하면서 이 글을 일단 마무리하려 한다.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작가 유튜브: 서메리Merry Se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