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바로 운동
지난 글에서 저는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ADHD 약을 먹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다시 잤습니다. 그리고 6시에 다시 일어납니다. 운동복은 이미 입었으니까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돼요. 운동화도 신발장이 아니라 현관에 딱 나와 있습니다. 해가 어두울 땐 그냥 나가고, 해가 일찍 뜨는 계절에는 선크림을 바릅니다. 저는 아침 운동으로 러닝을 합니다. 집 근처에 하천이 있어서 그 옆을 달려요.
온 세상 전문가들과 책과 영상과 기사가 운동을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작하기도 어렵고, 꾸준히 하기도 참 어렵습니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 넘쳐나는 탓에 오히려 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무뎌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새해 결심으로 운동을 한다고 했다가 실패하고 뭐 그러는 거 아닌가요. 그 중에 당연히 저도 있었고요.
그렇지만 오늘은 저도 운동하자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운동의 좋은 점은 참 많지만, 저는 ADHD 때문에 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여러 사정상 ADHD 약을 먹을 수 없거나, ADHD로 진단될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ADHD 약의 용량이 부족하다면 특히 도움이 될 거예요. 운동은 ADHD 약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 몸에 작용합니다.
ADHD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 중 가장 유력한 것이 도파민의 기능 장애입니다. 메디키넷, 콘서타와 같은 메틸페니데이트 약물은 도파민의 재흡수를 억제해요. 뇌에 도파민이 좀 더 오래 머무르겠죠. 그런데 운동은 도파민을 생성합니다. 도파민뿐만 아니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 뇌가 써먹을 수 있는 신경전달물질 칵테일이 만들어지죠. 운동은 약물이 뇌에 하는 일을 똑같이 해요. 약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겁니다.
애더럴처럼 도파민을 직접 만들어내는 약물은 국내에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환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도파민 자체가 부족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 경우에는 메틸페니데이트가 도파민 재흡수를 막는다고 해도 애초에 도파민이 부족하니까 효과를 보기 어렵겠죠. 하지만 운동도 애더럴처럼 도파민을 직접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달립니다. 도파민 만들러요.
운동이 약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건 분명합니다. 저는 달리고 나면 약을 먹었을 때처럼 머리가 차분해지고,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게 돼요. 제 욕심으로는 ADHD 약의 용량을 좀 더 늘리고 싶어요. 하지만 양극성장애 때문에 높은 용량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부족한 부분을 운동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이 ADHD 약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쉽게도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운동 후 효과를 체감하는 시간은 1시간 정도인 것 같습니다. 약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그리고 약과 운동은 확실히 뭔가가 달라요. 운동만 했을 때는 고쳐지지 않던 것들이 약을 먹으면 고쳐지곤 하니까요. 그리고 약에 부작용이라는 위험이 있다면, 운동에는 부상이라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운동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건강' 같은 장기적 이득은 잘 와닿지 않아요. 그걸 목표로 했던 지난날에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데 성공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운동은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활동인 것 같습니다. 운동을 하면, 바로 자신의 상태가 변화했다는 게 느껴지니까요. 운동은 ADHD 증상 외에 저의 불안도 잡아주고 있습니다. 운동한 날은 묘하게 의연해지는데, 알고 보니 운동이 불안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의 활성도를 낮춘다고 해요.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와 불안이 줄어드는 이유가 있었던 거죠. 다음은 ADHD와 관련된 증상 증 운동이 도움을 주는 것들입니다.
스트레스와 불안 완화
충동 조절, 강박 행동 감소
작업 기억력 향상 (쉬운 말: 덜 까먹는다)
실행 기능 향상 (쉬운 말: 덜 꾸물거린다)
ADHD 환자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권장되는 최소 운동량은 땀이 나고 숨이 차는 중간 강도로, 일주일에 150분입니다. 5일 동안 유산소 운동을 30분씩 하면 채워지는 양이에요. 하지만 매일 조금씩 하거나 주말에 몰아서 하거나 효과는 비슷하다고 합니다. 운동의 종류도 뭐든 좋다고 해요.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라면 유도나 주짓수, 복싱 같은 운동을 선택할 수도 있고, 팀 스포츠를 할 수도 있고, 같이 달릴 러닝 메이트를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ADHD는 무언가에 잘 질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운동을 백년만년 하겠다는 (불가능한)다짐보다는, 종목을 자주 바꾸는 것이 오히려 운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운동으로 러닝을 선택했고, 러닝만 죽어라 하고 있습니다. 필라테스나 헬스 PT도 받아봤지만 다시 러닝으로 돌아왔어요. 제가 러닝을 하는 이유를 몇 가지 적어볼게요.
1. 혼자 할 수 있다
저는 사회적인 상황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사람과 같이 있으려면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동원해야 해요. 그래서 누군가와 같이 운동을 한다는 건 제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필라테스나 PT도 사람과 같이 있어야 하는 운동이다 보니, 재미와는 별개로 지속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달리기는 오롯이 혼자 할 수 있어서 좋아요.
2. 수렵채집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운동'을 하자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저는 이게 그냥 몸을 쓰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을 쓰는 일'과 '머리를 쓰는 일'은 서로 다른 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요. 신경과학자 로돌포 이나스는, 부지런하게 움직이다가 어딘가에 정착하면 '뇌를 빼 버리는' 멍게의 예를 들어서 '동물이 뇌를 진화시킨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움직이기 위해'라고 말합니다. 수렵채집 시절에 뇌는 우리를 더 잘 움직이게 하려고, 그렇게 해서 생존에 유리하게 하려고 작동하지 않았을까요? 특별히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들도 수렵채집 시절에는 훌륭한 파수꾼이었을 겁니다. 다만 현대사회에는 그 시절만큼의 위협이 없으니까 이 성능 좋은 불안 경보기가 자꾸 오경보를 울리는 거고요. 그럼 우리는 '불안장애'로 진단되죠.
아무튼 저는 '달린다'는 행동이 왠지 모르게 맘에 듭니다. 제가 있는 위치가 계속 변화한다는 점도 좋아요. 아득한 옛날에 인간은 달리고 또 달렸겠죠. 도망치기 위해서든, 목표를 향해서든요.
3. 뜻밖의 명상 시간
명상은 호흡이라던가 바닥을 딛고 있는 발 등, 신체의 감각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불안이 몰려와서 신체 증상이 나타나고 현재에 머무르지 못할 때, 주변 물건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는 방법을 씁니다. 달리다 보면 이 두 가지를 다 하게 됩니다. 달리다 보면 너무 힘들죠. 그래도 목표한 시간 동안 달리기 위해서 신체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돼요. 그리고 저는 달리면서 주변의 풀이나 새의 이름을 되뇌어 봅니다. 운동을 하면 아무 생각이 안 나죠. 물론 힘들어서 그런 거지만, 저는 그게 바로 '지금 현재에 머무르는' 감각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역시 운동을 꾸준히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참 운동을 못하다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도 자주 오고요. 저는 그럴 때 '운동'을 시작한다기보다 '활동량'을 늘린다는 생각으로 접근합니다. 솔직히 "내일부터 운동해야지!"라는 말은 좀 부담스럽잖아요. 운동할 시간도 만들어야 하고, 운동할 체력도 만들어야 하고(?), 어딘가에 등록도 해야 하고, 등록할 돈도 벌어야 하고......
하지만 '활동량'은 어제보다 오늘 살짝만 더 늘리면 됩니다. 오늘까지는 운동을 안 하다가 내일부터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는 건 일상의 큰 변화예요. 큰 변화를 단번에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의 새해 계획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가 이거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제와 많이 다르지 않은 작은 변화는 비교적 만들기 쉽습니다.
제가 자주 쓰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1. 스트레칭 늘리기
의식적으로 하루에 몇 번씩 짬을 내어 스트레칭을 합니다. 퇴근 후에, 혹은 아침에 따로 시간을 내서 본격적으로 스트레칭을 하자고 다짐하면 오히려 잘 안 되더라고요. 점심시간에 잠깐, 혹은 설거지한 다음에 잠깐, 이런 식으로 조금씩 늘려가다 보면 따로 스트레칭 시간을 내기도 더 쉬웠습니다.
2. 걷는 시간 늘리기
출근, 등교 등 매일 어딘가로 가는 일정이 있다면 활동량을 늘리기 좋습니다. 운전을 해서 다닌다 하더라도 어딘가로 걷는 시간은 반드시 생깁니다. 그 시간을 늘려요. 퇴근할 때 조금 더 돌아서 집으로 간다던가, 편의점 가는 김에 근처를 더 걷는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속도를 조금 빠르게 해서 걸으면, 바로 운동할 체력이 없을 때에도 부상의 위험을 줄이면서 몸을 쓸 수 있습니다.
오전 6시. 집을 나와서 달립니다. 러닝 전후로 스트레칭까지 하면 딱 1시간이 걸려요. 아참. 겨울에는 너무 춥기도 하고, 사람도 별로 없으니 무서워서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뛰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