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뜨거운 날씨, 켄타는 고갯길 앞에 서서 담배를 꺼낸다.
조선에 온 지도 벌써 십여 년, 그동안 많은 사람과 사건을 겪어보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단시간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천천히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고는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십여 년 동안 많은 것이 발전했지만 궁핍한 민초들의 삶은 여전하다. 가파른 계단을 몇 개 오르기도 전에 양쪽 뺨으로 땀이 연신 흘러내린다.
고갯길 초입에 있는 폐가. 언제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집 마당에 있는 나무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듯 점점 더 커갔고, 지금은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양 집 안에서부터 바깥까지 기다란 가지들을 뻗어댔다.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비릿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켄타는 짜증스럽게 피우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 버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켄타 경부님 오셨습니까?”
켄타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순사보들 사이를 가로질러 감나무까지 쭉 걸어갔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찾아온 이 살인마는 벌써 세 번째 시신을 이 나무 아래에 놓아뒀다.
“멍청한 놈! 시신에는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시체를 옮기던 호성은 허둥지둥 시체에서 손을 떼고 끔벅끔벅 켄타를 쳐다본다.
“날이 더워서 시체에 구더기라도 생기면... 냄새도 고약시럽고.” 호성이 특유의 느린 말투로 변명을 한다.
“그깟 냄새쯤 참으란 말이야! 너희 집에서 기르는 개돼지가 죽은 게 아니라 사람이 죽었다고! 사람!”
“사람이야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 나가는구먼요.”
“뭐야!”
“어제도 만세 부르다가 세 명이나 죽어나갔고. 징용 안 간다고 내빼던 아이들도 두 명이나 죽었구먼요.”
호성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궁시렁 거리며 다시 시신에 손을 갖다 댄다.
“이 멍청한 놈!”
호성의 눈에 불이 번쩍인다. 호성은 켄타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조선인들이 죽는데, 왜 이렇게 극성인지 모르겠다.
“어서 시신에서 손 떼고 물이나 한 잔 떠와!”
켄타는 시신을 한참 동안 자세히 살펴본다.
살해 후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살해현장을 깨끗하게 정리를 한 것인지 시신 주변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시신을 따라 흘러내린 핏자국을 보아 살해 후 데리고 온 것은 아니라고 켄타는 생각했다. 며칠째 비가 오지 않았으니 다른 장소에서 살해했다면 피가 떨어진 흔적이 있을 것이다.
“이 자... 낯이 익은데 어디 사는 누구지?”
“인력거 끌던 김씨구먼요.”
“인력거라... 이 자의 집은 어딘가?”
“저기 양조장 건너 골목에 있구먼요.”
“가족은 있나?”
“가족은 없구먼요. 이제 한 십 년쯤 됐나~ 전염병 돌 때 싹 다 죽고 김씨 혼자 살았구먼요.”
“평소에 이자와 원한을 진 사람은?”
“그걸 제가 어떻게 아는감요.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도 없구먼요. 극장 앞 구두 닦는 박씨한테 물어보면 뭐가 좀 나올지도 모르겄구먼요.” 대접에 담긴 물을 내려놓으며 호성이 대답한다.
시원하게 물을 들이켠 켄타는 “있다가 그 박씬가 뭔가 하는 작자 서로 들어오라 그래!”
말을 마친 뒤 휙 집을 빠져나간다.
앞서 일어난 두 사건과 같은 위치에 있는 상처. 예리하고 날카로운 물건으로 정확히 심장을 찌르고 머리를 돌로 내리친 흔적. 켄타는 한 달 전 발생한 두 살인사건을 떠올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세 번째인가...’
두 사건의 피해자는 날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언제 이 마을로 왔는지도 모르고 마을 사람들과 왕래나 교류도 많지 않았던 타인들. 그저 돈이 되는 일이 생기면 거들어 주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사는, 정확한 이름이나 나이도 모르는 그저 김씨, 이씨로만 불리던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조차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마냥 사람들은 무관심했고, 그들의 죽음은 금세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제대로 된 장례절차도 없이 그들은 마을 뒷산 아무 곳에나 묻혔고, 시신을 묻는 일조차도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해서 억지로 사람들을 뽑아야 했다. 경찰서 내부에서도 사건을 파헤치고자 하는 노력이나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는 인력거를 끌던 김씨. 두 사람에 비해서는 이 마을에 오래 살았고, 인력거를 끌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접촉도 빈번했을 것이다. ‘혹시 돈을 노린 범행인가. 아니다 그렇지는 않겠지. 만약 돈이 목적이었다면 밤마다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양복쟁이들을 노리는 편이 나았겠지.’ 켄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갯길을 내려온다.
좁은 골목을 지나 극장가로 나온 켄타는 다방으로 들어선다. 켄타는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어머~! 켄타 경부님~!” 켄타를 보고 쪼르륵 한 여급이 달려온다.
“경부님 밖에 많이 덥죠? 어유 이 땀 좀 봐.” 숙희는 말과 동시에 부채를 펴 켄타의 얼굴에 부채질을 해준다.
“시원한 거 아무거나 한 잔 가져와.”
“경부님 표정이 어두우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숙희는 켄타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는 척하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너 따위가 알 일이 아니다. 어서 가서 시원한 거나 가져와!” 차갑게 말을 하지만 숙희의 그런 관심이 싫지는 않았다. 음료를 가지러 걸어가는 숙희의 뒷모습을 보며 켄타는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호성은 켄타가 돌아가고 나서야 다시 시체를 치운다.
“잠깐 훑어보고 갈 거면서 뭔 역정을 그리낸댜.” 느릿느릿하는 말투와 달리 그의 몸짓은 익숙한 듯 재빠르다.
“사람이 하루에도 몇 명이나 죽어 나가는디, 뭐 그리 유난을 떨고 참~” 고향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느릿느릿한 말투와 낯선 억양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그만의 말투인양 큰 덩치와 잘 어울렸다.
시신을 수습하고 호성도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담배를 입에 문다.
“비라도 오면 참 좋을텐데.” 담배연기를 후~ 내뿜으며 호성이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