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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숙희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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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Aug 05. 2024

박씨

3.

구두닦이 박씨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조심조심 경찰서 안으로 들어섰다.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만든다는 경찰서의 살벌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박씨는 호성을 찾아 기웃기웃거렸다.


“박씨! 이리로 오슈.”


박씨를 발견한 호성은 박씨를 손짓으로 불렀다. 

박씨는 호성을 보고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며 허둥지둥 달려갔다.


“순사님! 살려주십시오. 저는 정말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습니다!” 곧 흘러내릴 듯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박씨가 김씨를 죽였다는 게 아니라~ 우리 켄타 경부님이 궁금한 게 있어서 뭐 좀 물어볼라고 부른거유.” 느릿느릿 대답하는 호성을 말투에 박씨는 조금은 안도를 했다.


“그나저나 어제 김씨랑은 왜 만난거유?” 

“어제 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김씨를 만났는데 날이 너무 더워 힘들겠다고 안부를 전하니 김씨도 더워서 막걸리나 한 잔 하러 가려던 참이라 해서 같이 한 잔 했습니다.”

“막걸리라... 근데 김씨는 인력거 끌어서 얼마 번다고 허구한 날 술을 마신대유?”

“그... 그거는...” 박씨가 머뭇거리는 찰나 켄타가 서로 들어섰다.


“당신이 구두 닦는 박씬가?” 켄타는 의자를 뒤로 빼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순사보에게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지시했다. 

“네! 네! 살려주십시오 경부님.” 여유로워 보이는 켄타와 달리 박씨는 초조한 듯 두 손을 모으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나한테 살려달라니. 뭐 죄라도 저지른 건가?”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박씨를 노려보며 켄타가 물었다.

“아닙니다! 정말 저는 아닙니다! 저는 어제 김씨랑 술 마신 죄밖에 없습니다!” 간절한 눈빛으로 호성과 켄타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김씨란 작자가 지난번 우체국에 폭탄을 던진 불순분자를 잡는데 공을 세웠다지?”

켄타는 김씨의 시신을 처음 본 순간 바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체국 테러 사건의 결정적인 제보자였다.


“네? 네! 맞습니다. 지난번 그 사건이 벌어지고 그 자가 김씨의 인력거를 탔는데, 김씨가 길에 있던 순사에게 그 자를 넘겨주었습니다.”

‘김씨가 독립군을 순사에게...’ 호성은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도 김씨 주위를 기웃거리는 자들이 있었나?”

“아닙니다! 그.. 그 사건은 저 말고는 아마 아무도 모를겁니다. 김씨가 독립군을. 아!! 아니 죄송합니다!!! 그 불순분자를... 순사에게 넘겼다는 것은 그 사람들도 모를겁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너는 어떻게 알았지?” 켄타는 다시 한번 박씨를 노려봤다.


“저!! 저는!! 아닙니다! 저는 절대 아닙니다!!! 사실 그 자를 김씨에게 알려준 것이 접니다.”

“뭐라고?”

가늘게 찢어진 켄타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지며, 책상에 올린 다리를 내리고 박씨 쪽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구두닦이를 하면서 이 마을에 누가 어떤 구두를 신고 다니는지 저는 거의 다 압니다. 마을에 구두를 신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며칠간 낯선 사람이 우체국 주변을 왔다 갔다 하길래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사건이 터지고 제가 인력거 김씨에게 그 자가 범인인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김씨가 받은 포상금으로 자주 만나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주로 가던 곳은 극장 앞에 있는 국밥집이라 들었다. 술 먹고 취해서 그 일을 떠벌인 적은 없나?”

“절대 없습니다! 김씨는 술 마시면 온종일 숙희 얘기만 했습니다.”

“숙희?”

“네 극장 앞 다방에 숙희라고 여급이 있습니다.”

“그 여자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했지?”

“김씨가 혼자서 숙희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둘 다 남편, 부인 잃고 처지도 비슷한지라 김씨가 숙희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숙희를 많이 생각했다...” 켄타는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음에 물어볼 것이 또 있으면 부를 테니 이만 집으로 가도 좋다.”

숙희라는 이름을 듣고 나서는 왠지 모르게 김이 빠진다. 그리고 김씨와 우체국 테러사건이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켄타의 머릿속엔 한 사람이 떠올랐다.

“가..감사합니다. 경부님! 감사합니다!” 박씨는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황망히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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