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숙희는 어두워진 밤길을 총총 걷는다. 인력거 김씨가 죽은 뒤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조금 추근덕대긴 했지만 문 닫을 시간에 맞춰 늘 다방 앞에서 숙희를 기다리던 김씨.
한사코 걸어가겠다며 손사래를 쳐도 환하게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돈 안 받고 태워주는 거니 그냥 타라며 숙희를 인력거에 앉혀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며 집까지 데려다주던 김씨였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 김씨의 부재를 느끼며 익숙한 동작으로 부채를 펼치고 재빨리 손을 놀렸다.
극장 앞 도로는 늘 화려하고 반짝인다. ‘나의 삶도 저 불빛처럼 반짝이면 좋을 텐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극장 모퉁이를 돌아 집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유난히 더운 날씨에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온몸에 땀이 흐른다. 연신 부채질을 하고 땀을 닦으며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꾸 따라오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매일 김씨가 태워주는 큰 길로만 다니다가 괜히 골목길로 들어왔나.’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지만 숙희는 찜찜한 기분이 들어 속도를 조금 높여 걷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숙희의 발자국 소리보다는 조금 더 무거운 발소리가 숙희 귓등에 들려왔다.
“탁.탁.탁.탁.” 저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지며 숙희는 차마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숙희는 거의 뛰다시피 빠르게 발을 놀렸다.
“탁.탁.탁.탁”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소리가 가까워졌을 때.
“숙희 이제 오는감~? 오늘은 좀 늦었구먼~”
좁은 골목길 끝에 호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순사님~!” 숙희는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호성을 부르며 호성에게 달려갔다.
“순사님. 혹시 제 뒤에 누가 따라오지 않던가요?” 숙희가 호성에게 소곤거리며 물었다.
“잉? 누가 숙희를 따라온겨? 지금은 아무도 안보이는디? 누구여?” 호성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목을 빼 골목길을 훑어봤다.
“저도 모르겠어요. 극장 모퉁이를 지나 집으로 오는 길에 분명 누가 절 따라왔어요.탁탁 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분명히 들었어요. 순사님이 때마침 불러줬기에 망정이지... 너무 무서웠어요.” 숙희는 크게 숨을 내쉬며 호성에게 쫑알대며 말했다.
“누군가 따라왔으면 여기서도 보였을 것인지... 김씨가 없어서 숙희가 너무 예민해진 거 아닌감~? 하하하하.”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농을 던지는 호성이 숙희는 밉지가 않았다.
“김씨는 뭐.. 제가 한 번이라도 데리러 오라고 한 적이 있었나요. 자기가 좋아서 매일 온거지. 그나저나 범인은 잡았어요?”
“아니~ 아직 범인은 못 잡았지. 그래도 켄타 경부님이 곧 잡을거여. 걱정 마.”
“걱정은 무슨.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나 살길도 바빠요.”
“와따 숙희 냉정한 사람이구만~ 그래도 김씨가 그렇게 숙희 생각을 많이 했다던데.”
“생각이고 뭐고 나는 그 홀아비한테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고요!” 흘겨보는 숙희를 보며 호성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쁘긴 참 이쁘구먼... 꽃이다 꽃..’ 호성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침을 꼴깍 삼킨다. 그러면서 짐짓 숙희에게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아직은 범인이 안 잡혔으니까 되도록 큰길로 다니는 게 좋겠구먼~ 몸 좀 편하자고 가까운 길 찾다가 숙희 인생도 지름길로 먼저 가는 수가 있구먼. 허허허허”
“호호호호 순사님 무슨 농담도 그렇게 무섭게 하세요. 호호호호 그럼 안전하게 저 집까지 좀 데려다주세요. 살인자도 순사님은 무서워서 피해 다닐 거 아니에요. 호호호호.”
“그것이 그렇게 되남 허허허. 알았어 바쁜 것도 없으니 오늘은 내가 데려다주겠구먼.”
호성과 숙희는 나란히 고갯길로 걸어갔다.
날카롭게 그 둘을 노려보는 한 남자를 뒤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