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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숙희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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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Aug 14. 2024

살인사건

7.

“켄타!!!! 켄타 어디에 있나!!!!!” 말끔한 정복차림의 하야시가 순사보들의 경례를 받으며 켄타의 자리로 걸어왔다.. 

“아! 하야시 경시님 안녕하십니까!” 평소보다 빠른 말투로 재빨리 호성이 경례를 했다.

“켄타는 어디에 갔나!”

“켄타 경부는 아직 출근 전이구만요.”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평소의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호성은 대답했다.

“몇 신데 아직까지 안 와!!!!!! 출근하면 당장 내 방으로 오라고 해!”

“네! 알겠구먼요. 오는 대로 당장 달려가라고 하겠구먼요.”

느릿느릿하게 대답을 하며 호성은 그 일 때문이라고 짐작을 했다.


출근을 하자마자 경찰서는 어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난리가 났었던 것이다.

극장 앞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일본인 오타. 오랜만에 발생한 일본인 살인사건에 서 전체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선인이 죽어 나갈 땐 아무도 관심 없더니.’ 호성은 문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늘도 지독시리 덥구먼. 비라도 주륵주륵 내리면 좋을텐데. 고약시런 냄새가 나기 전에 시체를 치워야 할터인디..” 호성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켄타는 경찰서로 출근하는 도중 아낙들이 걸어가며 떠드는 소리에 귀가 번쩍였다.

“아 글쎄. 그 양복점 오타상이 어제 죽었다지 뭐요.”

“그 뒤룩뒤룩 살찐 돼지 같이 생긴 양반? 으~ 그 얼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 ”

“나도 양복점 앞을 지날 때마다 기분 나쁘게 웃던 그 양반 얼굴을 생각하면, 일부러 그 양반 마주치기 싫어 멀리 돌아간 적도 있다니까.”

“근데 그 양반 왜 죽었대요?”

“몰라 칼에 찔렸다나 뭐래나 극장 옆 골목 고갯길에 죽어있는걸 박씨가 발견했다던데?”

‘박씨!!!’ 켄타는 지나가던 아낙들을 불러 세웠다.


“거기 지금 누가 죽었다고 했나?”

“어머나! 네?? 네? 누가.. 죽다니요?”

“방금 당신들끼리 수군거리며 지나가지 않았나!”

“아... 저기 극장 앞 양복점 오타상이 죽었다고들 하더라고요.”

“박씨는 극장 앞에서 구두 닦는 그 박씨를 말하는 건가?”

“네.. 저도 잘 몰라요 그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은 거라서..”

아낙들은 켄타의 기세에 눌려 말을 얼버무렸다.


“젠장!”

켄타는 고갯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 무더운 날씨군. 젠장! 젠장! 젠장!’

사건현장에는 미리 도착한 호성이 켄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부님 또 죽었구먼요. 오늘은 손끝하나 안 건드리고 그대로 놔뒀구먼요.”

켄타가 오는 모습을 보고 호성이 느릿느릿 말을 했다.

“최초로 발견한 자가 어제 왔던 그 박씨라고?”

“네 그렇구먼요.”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지?”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다가 지금은 먼저 서에 가 있을거구먼요.”

켄타는 시신을 살펴본다. 역시나 심장을 찌른 작은 구멍과 머리의 상처.

‘같은 놈이다. 네 번째 살인사건이다. 도대체 어떤 놈이...’

 “호성 시원한 물 좀 가져와!” 켄타는 짜증스레 호성을 향해 소리치고는 흐르는 땀을 닦는다. 땀을 닦아도 다시 땀이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젠장 맞을 날씨. 켄타는 오타의 시신 옆에 주저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허공에 대고 후 하고 연기를 내뿜으며 오타의 시신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뒤룩뒤룩 살찐 돼지같이 생긴 얼굴.. 딱 맞는 말이구만.’ 출근길 아낙들이 떠들던 말을 상기하며 켄타는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사이 호성이 시원한 물을 떠가지고 왔다.

“켄타 경부님. 하야시 경시님이 서로 오면 바로 집무실로 오라고 했구먼요.”

세 번의 살인사건을 설명해도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던 하야시를 떠올리며 켄타는 쓴 미소를 지었다.

“일본인.. 일본인이 죽었단 말인가. 하하하핫”

“겨..경부님 왜 갑자기 웃음을..”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이란 말이다! 일본인이건 조선인이건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이란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어!”


호성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다 똑같은 사람이라니. 켄타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는 시신을 수습하고, 극장가로 나가 오타와 원한관계가 있었던 사람, 친했던 사람들을 조사하도록 해. 이 자도 그다지 평판이 좋았던 인물은 아닌 듯하니까 원한을 가진 놈들이 꽤 있을 거야.”

“네 그렇게 하겠구먼요.” 호성은 늘어지게 하품을 한 번 하고 나서 큰 덩치에 걸맞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시신을 수습하러 갔다.


켄타는 서로 돌아가 하야시 경시의 방으로 갔다.

“켄타!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는 건가!” 하야시는 관리하던 난에서 손을 떼지 않고 소리를 빽 지른다. 소년같이 어린 얼굴과 난은 조화롭지 않았지만 난을 키우는 것은 하야시의 오래된 취미였다. 

“사고 현장에 들렀다 오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고현장? 자네 오타상이 죽은 걸 알고 있었나?”

“출근길에 사람들이 수근 거리는 소릴 듣고 현장으로 바로 갔습니다.”

“그래서. 범인은... 짐작 가는 인물이 있나?”

“아직까지는...”

“도대체 누가 대황국신민을 저리 무참하게 길에서 죽이느냔 말이다! 켄타! 이번주 내로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자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걸세!”

난에서 깨끗한 천을 떼어내 하야시는 그 천을 켄타의 얼굴을 향해 던진다. 켄타는 얼굴에 맞고 떨어진 천을 주워 들며 계속 보고를 했다.

“제 생각에는 최근에 발생한 조선인 살인사건과 오타상의 살인사건의 범인이 동일인인 것 같습니다.”

“조선인들이야 몇 명이 죽건 상관없으니 당장 오타상의 범인이나 찾으란 말야!”

“하지만.. 범인이 같은 자라면.. ”

“그런 것 상관없이 무조건 잡아와! 일주일이네!”

켄타는 가늘게 한숨을 쉬며. “네! 알겠습니다!” 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일주일이라...’

켄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박씨를 찾았다.

“여기 어제 왔던 그 작자 오지 않았나?”

“구두닦이라면 이미 키무라 형사가 취조 중입니다.”

“뭐? 키무라가?”

“네. 벌써 두 시간째 살벌하게 취조하고 있습니다.” 순사보는 짧게 대답을 했다.

켄타는 급히 취조실로 향해갔다. 키무라라니...

취조실 문을 열자, 엉망이 된 박씨가 의자에 팔다리가 묶인 채 앉아있었다. 무엇으로 얼마나 맞았는지 옷은 피에 젖어 얼룩져 있었고, 바닥에는 키무라가 취조실에서 자주 사용하던 고춧가루와 물에 젖은 보자기가 떨어져 있었다. 

“이봐! 키무라! 지금 무슨 짓인가!”

“경부님 오셨습니까? 이놈이 자백을 하지 않아 제가 교육을 좀 시키고 있었습니다. 하하하하. 조선 놈들은 역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니까요. 아 그리고 이건 하야시 경시님에게 허락받은 일입니다.” 키무라는 엉켜있는 채찍의 끝을 정리하며 대꾸했다.

“내가 이 자와 잠깐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나가있게.”

하야시가 지시한 일이라는 말에 켄타는 키무라에게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이 놈도 보통 독종이 아닙니다. 벌써 두 시간째 모른다라고만 대답하고 있습니다.”

“알았으니 나가!” 

키무라가 방에서 나가고 켄타는 박씨에게 물을 건넸다.

“겨..경부님 살려주십시오!!! 저는 절대로 아닙니다! 경부님!!!!”

“어떻게 오타의 시체를 발견하게 됐지?” 켄타는 살려달라는 박씨의 말을 뒤로한 채 의자에 앉아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침착한 목소리로 박씨에게 묻는다.

“저는 정말로 억울합니다!!!!” 박씨는 절규했다.

“너의 억울함 따위 내게 하나도 중요치 않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제대로 해! 네 대답에 따라 목숨을 부지하느냐 못하느냐가 달려 있을테니!”

“어떻게 오타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나!”

“어젯밤에 국밥집에서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에 숙희를 보았습니다.”

“숙희? 그 년이 또 왜!” 숙희라는 이름이 들리자 자신도 모르게 거친 반응이 튀어나왔다. 

“숙희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죽은 김씨도 생각이 나고, 그 길이 또 마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해서 저도 숙희를 따라갔습니다. ”

“그 길이라면?”

“극장 모퉁이길 말입니다. 그 길이 어둡긴 해도 마을 쪽으로 가는 지름길이니까요.”

“그래서 그 년이 뭘 어쨌단 말인가?”

“어제 국밥집에서 술을 과하게 마셔 걸음이 제 마음대로 걸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발치에서 천천히 숙희를 보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오타상이 숙희 뒤를 몰래 쫓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오타가 왜?”

“그 양반 원래 여색 밝히기로 극장가에서는 유명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여자들이 양복점을 피해 길을 돌아가곤 했으니까요.”

켄타는 오전에 떠들어대던 아낙들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숙희를 따라가다가 변을 당했단 말인가?”

“아닙니다. 제가 본건 숙희를 따라가던 그 뒷모습뿐이었습니다. 골목 끝에서 어렴풋이 사람 말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를 들어서인지 오타상이 몸을 숨겼고, 저도 덩달아 같이 몸을 숨기게 되었습니다.”

“너는 왜 몸을 숨겼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오타상이 앞에서 몸을 숨기길래... 저도 같이...”

“그 후로 오타는 어디로 갔지?”

“오타상은 고갯길을 넘어갔고, 저는 방향을 틀어 저희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네 놈이 제일 먼저 오타를 발견할 수 있었나?”

“집에 가서 한참 동안 잠을 뒤척이다, 아무래도 오타상의 행동이 의심스러워 다시 고갯길로 갔는데.. 그곳에 오타상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최초의 목격자라... ”

켄타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피울텐가?”

“가...감사합니다. 경부님”

켄타는 담배 한 개비를 박씨 입에 물려주고 불을 붙인다. 손과 발이 묶인 채 박씨는 담배를 피웠다.

말없이 한참 서로 연기를 내뿜다가 켄타는 박씨에게 물어봤다.

“숙희는 어떤 여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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