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수록된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건 올해 여름쯤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저는 우울한 사람이었지만 겉으로는 매우 행복하고 평안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 그 안의 모든 소소한 순간들을 누군가와 간절히 나누고 싶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홀로 완전하지 못하고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무용한 자존심 때문이었겠지요. 저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씩 말을 하지 않으니 머릿속은 두서없는 생각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유 없는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자꾸만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가려고 할 때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으려 크고 작은 생각과 감정들을 조립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부치지 못할 편지임을 잘 아는 데도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K는 누구였을까요.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 편지들이 절벽 끝의 저를 잡아 주었고,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조금은 놓아주는 용기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에는 사랑스러운 것들이 넘치도록 많다는 것을.
창 밖의 나무는 어느새 갈색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변하는 모습은 빛나는 한여름과 벚꽃이 만개한 봄 보다 눈부십니다.
살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2023년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