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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맞은 날

유년시절의 기억

by 소향

이글거리는 태양은 하늘의 솜사탕마저 녹여 내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텅 빈 파란 하늘만 보이는 한낮의 풍경이 힘없이 축 쳐진 채 덩그러니 남아있다. 익을 듯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로 숨어 들어가도, 용광로의 입에서 내뿜는 열기인 듯 바람마저 뜨거운 시간이다. 참다못한 아이들은 서둘러 강으로 뛰어들고, 강물마저 온천처럼 따뜻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유년시절에는 동네에 어린 꼬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놀기도 하고, 동네 형들을 친형들 마냥 따라다니기도 하는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이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기계들이 한창 보급되면서 동네에는 경운기 소리가 점차 늘어나고, 해 질 녘이 되면 집집마다 작두로 풀을 잘라 소를 먹이던 풍경이 작두 대신 커터기의 소리만 요란해지고 있었다.


기계의 편리함에 경쟁하듯 늘어나는 기계는 사람들에게 시간적 여유와 편리함을 선물하고 있었지만, 기계의 위험성은 고스란히 사용자의 몫이 되었던 시기다. 기계의 오작동이나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 보니 기계 옆에는 늘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안전문제는 결국 사단을 내고야 말았다.


이웃집 여섯 살 난 꼬마가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이 소여물을 끓이기 위해 풀을 절단하는 커터기 쪽으로 굴러갔고, 공을 주으러 갔던 꼬마는 멋모르고 공을 주워 일어서다가 커터기의 버튼을 잘못 눌러버렸다. 모터 소리에 놀란 아이는 왼손을 잘못짚어 커터기에 손이 딸려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에는 팔꿈치 위에까지 잘려나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근처에 어른이 있어 응급처치를 하고 빨리 병원으로 옮겨 더 큰 사고는 막았지만 아이는 팔을 잃어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불운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팔을 잃은 충격에 아이는 예민한 성격이 되었고, 동네 사람들은 장애를 입은 아이가 안타까워 웬만한 짓궂은 장난을 그냥 받아주다 보니 아이는 막무가내의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로 인해 동네에서는 걱정을 하기도 하고, 가급적이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은근슬쩍 피해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 집에서 놀던 나는 한증막 같은 날씨에 더위를 참지 못하고 친구와 강가로 나와 물속에서 수영을 하고 놀고 있었다. 둘 다 수경을 쓰고 물속을 잠수하면서 재밋거리를 찾고 있느라 정신없던 사이, 그 꼬마가 우리들 가까이로 온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 꼬마는 우리가 물놀이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 것 같았다.


깊은 물속으로 잠수를 하느라고 귀마개까지 했던 우리는 꼬마가 와서 부르는 줄도 모르고 계속 잠수하고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우리가 대답을 하지 않자 꼬마는 우리에게 돌을 던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물속에서 나오던 나에게 그 돌이 날아왔던 것이다. 물속에서 얼굴을 내미는 순간 "퍽!!"소리와 함께 수경이 산산조각이 났고, 내 코에서는 코피가 흘렀다. 친구는 놀라서 다가와 괜찮냐고 했지만 나는 무슨 상황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진 수경을 벗어내고 물에 얼굴음 담가 붙어있는 유리를 흘려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유리파편이 내 눈 속까지 들어가 있었다. 눈이 계속 아프고 코에는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생각한 나는 병원을 가야 할 것 같다고 친구에게 말했고, 친구가 챙겨준 옷을 입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코피는 친구가 급한 대로 근처에서 참쑥을 뜯어 갈아서 코를 막아 지혈을 했지만, 눈에 들어간 유리파편은 손을 댈 수 없어서 눈을 감은 채로 친구의 부축을 받으면서 움직였다.


하필이면 토요일이라 가까운 병원은 문을 닫아 버스를 타고 40분이 걸려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코에 박힌 유리파편을 제거하고는 눈에 유리가 들어갔다고 하니까 식염수로 눈을 세척해줬다. 그리고 눈을 살펴보고는 다행히 흰자 쪽에만 살짝 상처가 났기 때문에 시력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했다. 눈을 뜨고 움직여도 여전히 이물감이 있는데도 보이는 것은 없다며 가도 된다고 했다. 의사가 이상 없다고 귀가해도 된다는 말을 듣자 그나마 안심이 됐다.


병원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20분 정도를 가고 있는데 왠지 눈에 이물감이 더 커졌다.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나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손으로 눈 아래쪽을 살짝 잡았다. 그런데 손끝으로 전해오는 유리조각의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살며시 잡아 빼내어 보니 생각보다 큰 조각이었다. 친구한테 유리조각을 보여줬다.


"세상에 의사란 인간이 이 정도 큰 조각도 못 본다야!"

"어!!! 너 어떻게 뺐냐? 그거 눈에서 나온 게 맞아?"

"내 눈 내가 까뒤집어 손으로 만지니까 잡히던데."

"야, 너 대단하다. 그걸 손으로 빼내냐?"


그렇게 큰 조각을 눈에서 빼내고 나니 눈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자 이제는 그 꼬마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어른들한테 알려 혼을 내줘야 할지, 아니면 그냥 넘어가야 할지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집에 도착을 했다. 결국 별다른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꼬마 어머니가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동네 사람들이 내가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가는 것을 보고 꼬마 부모님한테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미안하다고 꼬마 대신 사과를 하신다. 부모님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부모님이 오셔서 사과를 하니 뭐라 하지도 못하고 "네. 괜찮아요." 하고는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나는 그 꼬마를 불렀다. 꼬마는 잔뜩 겁을 먹고 나에게 와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부모님한테 꽤나 심하게 야단을 맞은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니 심하게 뭐라 하기도 그렇고 해서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이번 일까지 더해서 혼내주겠다고 경고를 했다. 꼬마는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돌아갔다. 그 뒤부터 꼬마는 더 이상 나쁜 장난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 돌이 날아와 물안경을 깨고 얼굴에 맞았지만 생각보다 크게 다치지 않고, 그 후유증도 없이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깨진 유리파편이 눈 안으로 들어갈 정도로 약간의 오차만 있었어도 정말 큰일 날 뻔 한 사건이기에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그날 일은 불행 중 다행인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안전에 대한 무지가 장애를 만들고, 그 장애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오히려 아이를 망쳤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상대방이 다칠 수도 있는 행동을 하면서도 잘못을 모르는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은 누구의 잘못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요즘 내 눈에는 몸에 장애는 없지만 생각은 그때 그 꼬마의 모습을 가진 아이들이 보이곤 한다. 자기 자식이 소중한 것은 알면서 남의 자식은 하찮게 여기는 요즘 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이 가끔씩 뉴스에 보이는 것은 또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이전보다 예의도, 존중도, 배려도 사라진 살기 팍팍해지는 그런 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내 말이 좀 과하게 표현되었을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그런 현상들이 이제는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바른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힘을 빼는 소수의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더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것이 문제다. 나 또한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뒤돌아 봐야 할 것 같다.

수영0.jpg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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