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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가든 Apr 07. 2021

밥 사드릴게요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 하루 휴가를 내고 청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차를 타고 먼 곳에 가는 일이 나에게는 여행 같았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차멀미가 나서  휴식은 고사하고 고난이었다.

심신의 에너지가 바닥에 깔린 번아웃, 평소에 하지 않던 멀미를 할 줄이야. 집안 일과 직장일과 공부와 이런저런 것이 모두 무거운 짐이었던 그때는 견딤의 나날이었다.

     
청주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가로수길이 아름답기로 이름이 났었다. 그러나 멀미에 휘둘린 나에게 그런 풍경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물을 마시고 찬물에 손을 씻으며 정신을 차렸다. 택시를 타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내 쪽 실장과 나, 상대방과 그쪽 실장이 나왔다. 일을 잘 마쳤다. 다른 이들은 그 지역 사람이기도 했고 자기 차를 가지고 왔지만 나는 다시 택시를 잡아 터미널로 나올 생각이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그쪽 실장이라는 여성이 어떻게 갈 거냐고, 터미널 갈 거면 자기가 태워다 주겠노라 했다. 짐작으론 나보다 네 살 위인 내 셋째 언니 정도로 보였다. 조용하고 믿음이 가는 인상이 좋았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 자기가 내려주고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터미널까지 오는 10여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10년 동안 부동산 중개를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재미있어서 큰 욕심 안 내니 일할만했다. 거래를 할 때마다 ‘내 손님이 지금 거래하는 돈이 어쩌면 그 사람의 전 재산일 수도 있다’는 자세로 일했다. 중개사는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기 위해서 일하지만 부동산을 팔고 사려는 당사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임을 잊지 않았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서울에 올라가려면 밥을 먹어야 했다. 답례로 점심을 함께 먹을 생각이었다.
“저는 밥을 먹고 올라가야 하는데요. 같이 드시겠어요?”
그는 전화를 해 보더니 말했다.
"사무실에 들어가 봐야 해서 안 되겠네요."
나는 국물이 있는 곰탕을 주문했다.
“그럼 드시고 잘 올라가세요.”
그는 내 밥값인 5천 원을 계산하면서 말했다.
“아이고, 안 그러셔도 됩니다. 제가 대접해 드리고 싶었는데요.”
“내가 사 드리고 싶어요.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죠. 조심히 가세요.”


그때  왜 명함도 받아놓지 못했을까. 밥을 먹고 나니 속도 진정되었고 오는 길은 멀미를 하지 않았다.

호리호리하고 얼굴은 창백했던 내가 다시 서울까지 가는 길이 멀어 보였을까. 어쩌면 서로 일하는 여성으로서 측은함이나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차에서 생각했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할 따뜻한 친절을 받았다고.
한번 보면 그만일 수 있는 관계에서 친절을 베푸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성실함이다. 그것에 감동했고 오래 기억하는 일이 되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실장님, 만나서 맛있는 밥이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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