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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Oct 03. 2019

시골개의 삶

과수원집 개, 손순덕 이야기


아빠는 개를 싫어했다. 개뿐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복길이랑 봄이를 데리고 시골집에 가면 항상 이야길 한다. “뭐한다고 개를 키우냐. 어디 누가 키울 사람 있거든 보내라” 한결같이 이야길 했다. 시골집 마당에 주차를 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장 난 라디오처럼 아빠는 매번 같은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나는 못 들은 척, “나 왔어!” 이렇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빠가 동물을 싫어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원래 그랬었으니까. 그렇게 동물을 싫어하던 아빠는 요즘 막내딸 순덕이와 사랑에 빠졌다. 


순덕이는 1년 전, 아빠가 친구 집에서 술 한 잔 하고 얻어온 강아지였다. 술에 취한 채 순덕이를 데리고 집에 왔을 아빠를 생각하면 약간 웃음이 났다. 평생 개를 싫어하시던 분이 술 기운에 개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다니! 우리 가족들에게는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처음에 순덕이는 순덕이가 아니었다. 사촌동생이 ‘살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항상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댄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살랑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내 살랑이는 순덕이가 되었다. 아빠가 직접 지은 이름이었다. 이렇게 순한 아이에게 살랑이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손수 '손순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본인이 낳은 네 명의 자식들 이름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짓게 하더니 강아지 이름은 손수 지어주다니. 살짝 질투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 순덕이를 봤을 때 3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인데도 복길이보다 발이 컸다. 그래서 예감했다. 이 아이는 엄청나게 크겠구나. “아빠, 얘 엄청 크겠는데?”라고 말하자 아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걔가 이래뵈도 사냥개야! 인마” 사냥개인지 그냥 똥개인지 모르겠지만 순덕이가 싸놓은 똥을 보니 하얀 국수 같은 게 뭉쳐져 있었기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얘한테 국수 줬어?” 엄마는 지난 며칠 사이에 국수를 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랬다. 그것은 엄청난 양의 기생충이었다. 순덕이가 태어나서 3개월 동안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그 기생충으로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구충제와 심장사상충 약을 사서 먹였고 그 덕분인지 순덕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보통 시골 개의 삶이란 일 미터도 채 되지 않은 줄에 매여 평생을 살아간다. 주인이 먹다 남긴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 물을 챙겨주지 않으면 빗물로 목을 축이는 삶이다. 강아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이런 삶을 살아가는 개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순덕이는 우리 아빠를 만난 게 축복이다. 아빠가 그날, 그 친구분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순덕이도 그런 삶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새로 만난 막내딸과의 알콩 달콩은 종종 친자식인 우리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도 한다.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아빠가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순덕이 이야기이다. 우리가 1등을 했을 때보다 순덕이 이야기를 할 때 아빠의 눈은 더 반짝인다.


하루는 부모님이 밭일을 하시는데, 혹시 휴대전화를 잃을까 봐 밭머리에 휴대전화를 두고 일을 하셨더란다. 일이 끝나고 휴대전화를 찾으니 감쪽같이 없어졌더란다. 누군가 와서 가져가기에는 우리 밭은 외진 곳에 위치해있었기에 두 사람은 뭐에 홀렸나 그랬더란다. 밭을 샅샅이 뒤져도 발견하지 못하고 과수원에 딸린 오두막으로 갔는데 그 마당에 휴대전화가 있더란다. 그랬다. 순덕이가 밭머리에 둔 휴대전화를 물어다가 마당에 가져다 둔 것이었다. 아빠는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얘가 그 마이 똑똑하다니까! 핸드폰 잃어버릴까 봐 지가 알아서 집에 가져다 둔 거라니까!” 침이 튀게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아빠의 얼굴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또 한 번은 순덕이가 이웃집 과수원에서 새참으로 먹으려고 가지고 온 빵 하나를 훔쳐다가 마당 입구에 두고 자기는 먹지도 않고 아빠를 기다렸더란다. 이번에도 아빠는 순덕이가 착하다고, 자기가 먹고 싶었을 텐데 부모님 먼저 드리려고 먹고 싶은 걸 참고 기다렸다며 이름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지었다고 자랑을 했다. 도둑질을 했는데도 착하다는 칭찬이라니! 순덕이가 부러웠던 순간이었다.


올봄, 순덕이가 아팠다. 워낙 묶어놓고 키우질 않아서 온 과수원이 본인의 놀이터인 것처럼 뛰어다니는 아이였는데, 어디에서 뭘 잘못 먹었던 지 기운이 없고, 축 늘어져있었다. 걱정이 된 아빠는 나한테 전화를 해서 물었다. “순덕이가 아무것도 안 먹고 누워만 있는데 왜 그런지 아냐”고. 내가 수의사도 아닌데 어찌 알겠냐만 15년간 강아지를 키운 나에게 아주 작은 팁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물어보는 아빠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영주에 있는 동물병원에 한번 데리고 가보라고 했더니 그날 곧장 순덕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기력이 없어 축 늘어져있는 30킬로짜리 대형견을 차에 태워서 말이다. 그날 순덕이는 입원을 했다. 그리고 그날 엄마는 대형견을 키운다고 동물병원에 온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며 세상에 그렇게 정이 없는 사람들이 있냐고, 아파서 기운도 없이 늘어져있는 아이한테 할 말이냐며 나에게 성토를 했다. 다행히 순덕이는 입원 사흘 만에 퇴원을 했고 지금은 펄펄 날아다니고 있다. 


아빠가 동물병원에 간 일, 매일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순덕이의 상태를 확인한 일, 모두 우리 가족에겐 충격이었다. 그렇게 동물을 싫어하던 사람이었는데 순덕이가 어떻게 했기에 아빠가 저렇게 변했는지, 우리도 순덕이를 좀 본받아야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순덕이는 과수원에 있는 오두막에서 생활하는데, 아빠는 그런 순덕이 때문에 같이 오두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가 시골에 내려가면 함께 저녁만 드시고는 곧장 과수원으로 가신다. 순덕이는 과수원에서 일하는 아빠 옆에서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먹기도 하고, 그게 재미가 없으면 직접 사과를 따 먹기도 한다. 아빠가 부르면 어디서든 달려오고, 아빠가 앉으면 그 옆에 앉아 함께 경치 구경을 하기도 한다. 아빠가 일 때문에 집을 비우거나, 명절이나 휴가철에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거나, 과수원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순덕이를 묶어놓긴 하지만 줄을 길게 매여놓아 답답하지 않게 해 준다. 지난 추석에 집에 갔더니 아빠가 나에게 가슴 줄을 사 오라고 했다. 엄마와 달리 아빠는 뭐 사 오라고, 사달라고 하는 일이 없는데 나에게 가슴 줄을 사다 달라고 했다. 잠깐 묶어두는 동안에도 목줄은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환갑이 지나 애견인으로 거듭난 아빠를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짠해지기도 한다. 본인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 우리들은 이미 그곳을 떠났거나, 떠나지 않더라도 각자의 생활이 바빠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대화를 할 여유조차 없어져버렸다. 우리가 떠나온 그 자리를 순덕이가 대신 채워주고 있으므로 맏언니로서 순덕이에게도 고맙다. 얼마 전, 막내동생이 일하는 면사무소 앞에 누가 새끼고양이들을 박스에 넣어 유기를 한 일이 있었다. 안타까워하던 직원들이 한 마리씩 입양을 했는데, 우리 막내동생도 '봉'이라는 고양이를 데려왔다. 봉이는 요즘 순덕이 꼬리와 노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있다. 아빠의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구도도 이상하고, 색감은 더 구린 순덕이와 봉이의 사진이 많다. 사진을 찍으려다가 동영상을 찍기도 하고, 동영상을 찍으려다가 사진을 찍기도 한다. 아빠의 휴대전화 사진첩에 있는 순덕이와 봉이의 예쁘지 않은 사진 속에는 따스함이 있다. 그 사진을 찍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을 아빠의 작은 미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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