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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Nov 09. 2023

우린 인연일까요?

두 손 모아 기도 중

세상에 우연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우연은 항상 강력하다. 항상 낚싯바늘을 던져두라.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     


그 만남은 어느 주말 오후에 새로운 모임을 찾아서 가입해 보자는 S의 결심에서 시작됐다. 어쩐지 고색창연한 밴드의 4050 싱글 모임으로 검색해서 가입되었다. 일주일쯤 모임에 올라오는 게시물을 염탐하던 중 주말에 근교 산에서의 '개' 모임을 발견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받기에 얼른 참석을 눌렀다. 그날 대중교통을 타고 가다, 정류장을 잘못 내리는 바람에 다시 타고 올라가느라 점심때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일행들이 이미 다 산 위로 올라갔고 S는 전날 모임에서 늦게 돌아와서 피곤하여 산행은 피하고 싶었다. 길을 잃은 김에 혼자 커피 한잔하면서 쉬다가 물어 물어 간 길이었다.    

  

다들 단풍놀이 나온 끝없는 차량 때문에 힘들게 왔지만 십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리 백숙집에 모여서 주문을 하고 집에서 가져온 온 음식을 먹고 있었다. 처음 만난 분들이었으나 친근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참석자들을 스캔해 보니 테이블 대각선 끝쪽에 있는 한 남자분이 눈에 들어왔다. 옆얼굴이 살짝 보이는데, 느낌이 좋았다. 동석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중간에 슬쩍슬쩍 쳐다보았다.      


거리가 멀어서 대화 내용이 들리진 않았다. 그가 수줍은 표정으로 가끔 밝게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음식점 옆에 있는 족구장에 가게 되었다.      


‘아, 오십이 넘으신 (싱글) 아저씨들이어서인지 군대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족구를 한판 하시려는가?’  

   

S는 구경이나 할까 했는데 갑자기 남 2, 여 2로 팀을 짜서 경기하기로 해서 멍한 상태로 끌려 들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체육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건만. 특히 이런 구기 종목은 더더구나 질색한다. 피구 할 때 무섭게 날아오는 공을 피해 도망다니던 경험이라니.      


양 팀에서 족구를 엇비슷하게라도 할 수 있는 여자는 한 명 정도밖에 없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역할을 주기 위해서 서브는 모두 여자분들이 넣기로 규칙을 정했다. 공을 발로 살짝 차 봤지만 일 미터 정도 앞쪽에 떨어졌고 도무지 까마득한 네트를 넘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거리가 너무 멀어요.” S는 예의 주시했던 그 남자 M을 보면서 도움을 구했다.   

  

M은 상당히 다정하게 다가와서 경기장 중간 정도에서 손으로 던져 넣으라 했다. 꽤 가까이에서 속삭이듯 말했고 등을 살짝 짚었다.      


‘가까이 서 보니 키가 좀 아쉽네.’ 그의 눈높이는 S와 거의 비슷해 보였다. 아마 170cm 초반 정도일까?      


경기는 계속되었고 이건 그야말로 족구에 핸드볼, 배구 등이 섞인 이상야릇한 게임이었지만 예상보다는 꽤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왜냐면 우리 팀의 건장해 보이시는 여자분은 중학생 때 배구 선수였다며 팔을 휘둘러 공을 쳐서 강한 서브을 날렸기 때문이다.      


그 남자분 M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지 S에게 다가와서 종종 다음 전략을 알려주고 시종일관 날아다닐 듯이 움직였다. 상대편의 한 남자분이 왼쪽으로 오는 공을 잘 받지 못한다며 그쪽을 공략하라고 속삭였다.


상황 판단이 매우 빠른 편이군. 그래서인지 S가 경기장 중간쯤에서 비실거리며 약하게 넘기는 공을 상대편은 받지 못했다. M은 매우 기뻐하며 S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하고 했다.  

    

결국, 1:1의 상황에서 마지막 세트를 이겼다. 커피 내기여서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카페로 들어섰다. 어느새 M이 S의 옆으로 와서 앉아 있었다. S는 그가 궁금하던 참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떠들썩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그에게 가벼운 질문들을 해봤다. 조용하고 말수가 많진 않았지만 묻는 말에는 대답을 잘하는 편.      


“제 프로필 사진 오 년 전쯤에 찍은 거거든요. 너무 사기 치는 것 같지 않은지 좀 걱정이 됐어요. 이제 사진 업데이트 좀 해야 할까요?” S는 고민하던 밴드 가입 프로필 사진에 관해서 물어봤다.     

 

“아니요, 예뻐요.” 그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지금 얼굴이랑 과거 사진이 너무 큰 차이가 나는 게 아니냐 묻는데 예쁘다는 건 뭐지?’ S는 의아하고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계속 다른 질문을 해봤다.      


그는 마라톤에 푹 빠진 것 같았다. 거의 매주 10Km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고 가끔 회사에서 집까지 5km 정도 뛰어서 퇴근한다고 했다. 사진을 보여주면서 조곤조곤 설명이 이어졌다.     

 

‘와 마라톤이라니, 고등학교 체력장 하면서 오래 달리기 할 때 죽을 뻔했던 기억이 떠오르네.’ S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M의 열정적인 모습에 귀를 기울여 들어줬다.      


그리고 다시 저녁을 먹으러 가서 도토리 무침을 앞에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그는 S와 K라는 여자분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을 주면서 연락하라고 했고 K도 M에게 꽤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회사 돌싱 동료를 한 분 더 데리고 나오시라 너스레를 떨며 다음 약속을 기원했다.      


이틀 후, S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명함을 받았으나, 연락처를 주고받지는 않아서 먼저 연락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또 당차게 거절당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밑져야 본전이 아닌가?


일요일 저녁 무렵, S는 아주 가볍게 카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어제 잘 들어가셨죠? 언제 한번 만나서 맛있는 거 사 주세요.ㅎㅎ”     


“ㅋ”

“언제든지요.”      


M의 답은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바로 왔고 그 이후로 한동안 강력 한파도 녹여줄 훈훈한 카톡이 오고 갔다.    

세상이 다시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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