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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Nov 20. 2023

첫 데이트, 첫 키스

휘리릭

S는 M과 처음으로 카톡을 주고받으며 주말에 바로 약속 날짜를 잡았다. M이 선을 보는 거냐 물었는데 냉큼 대담하게 데이트라고 못 박으면서. 나중에 돌아보니 모임에서 단 한 번 만났을 뿐이고 서로의 신상에 관한 자세한 정보도 없는데 데이트를 시작하자니, 참 성질이 급하기도 하다.      


미심쩍어서인지 약속을 한 이후로 M은 매일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면서 대체 만날 만한 인물인지 탐색의 과정을 거쳤던가 보다.      


첫 데이트는 아침 마라톤 일정도 취소하시고 일찍 근교의 수목원으로 가기로 했다. 무슨 이유인지 M은 교통사고의 트라우마 때문에 운전할 수 없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S는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지만, 아침 일찍 차 안 청소도 하고 약속한 지하철역 앞까지 운전해서 갔다.      


’ 지인들에게 차 없이 여자 친구 만날 생각하지 말라고 그렇게 열변을 토했건만. 아이고!”

S는 잊고 있던 팔자타령이 절로 나왔다.      


하필이면 영하 5도에 이르는 올해 최저 기온 날씨였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서 겨울옷을 꺼내 입고 나가는 마음이 생경했다.

      

M은 어젯밤 10시가 넘어서까지 회사에서 근무하고 돌아온 터여서 감기 기운이 있어 보였다. 수목원에 도착해서 리프트를 타려고 하니 M이 조심스럽게 빼빼로 과자와 손 히터를 내밀었다. 빼빼로 데이라고 수줍게 과자를 내밀다니 웃음이 슬며시 번져 나왔다.

     

’ 이분은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십 대 소년 같은 풋풋한 감성이 느껴지신다.‘     


리프트는 휑하게 뚫려있고 덜컹거려서 S는 순간 무서워져서 M에게 자연스럽게 기대며 손을 가져갔다. M은 살짝 놀란 듯 얼른 두 손으로 S의 손을 감싸 쥐었다.      


리프트에서 내리고 나서 S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스스럼없이 M에게 다시 물어봤다.  

    

“우리 손 잡고 올라갈까요?”     


“오늘 장갑 챙겼다가 잊어버리고 오길 잘했네요. S 씨 손 못 잡을 뻔했잖아요.”  

    

마음이라도 바뀔세라 얼른 S의 손을 덥석 잡은 M은 여전히 새색시같이 부끄러워하는 미소를 흘렸다. 그의 손은 매우 두툼하고 마디가 굵고 힘 조절이 안 되는지 손아귀 힘이 셌다.    

  

“아, 압박감이 심하네요.” S는 잠시 걷다가 참고 있던 깍지 낀 손을 빼서 손바닥을 마주 잡으며 웃었다.   

   

“그래도 짜릿하면서 아프죠?” M은 달싹거리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는지 능청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아, 아저씨 같은 능글맞은 대사라니.     


11월 중순의 수목원은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졌지만, 아직도 선명한 붉고 노란빛의 단풍잎이 남아있었다. 흘러내리는 자그마한 폭포와 호수,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아기자기하고 정성껏 가꾼 개인 정원 같은 느낌.     


차가운 공기 속에서 처음 맞잡은 두 손은 떨리고 따뜻했다. 거기에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단풍과 물소리, 소곤소곤 나누는 정담.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시간도 추위도 잊혀 갔다. 천천히 곤충의 집, 소나무 숲, 분재 등을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절경이 많았으나 꼭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아 마음속에 담고 지나갔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는데 이틀 전 20km 마라톤을 뛰시고 전날에는 새벽 건강 검진 후 밤늦게까지 일한 M은 졸음이 몰려온다고 했다. 첫 데이트를 나와서 졸리다니 이 무슨 매너 없고 엉뚱한 소린가 싶었지만, 상황을 보니 감기 기운도 있어 보였고 졸려서 도무지 견딜 수 없어 보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M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작년 사진이 너무 나이 들어 보이셔서 일부러 보지 않았다.”라고 농담처럼 말했더니 이 오라버님이 또 삐지셨다. 한참 차이기라도 한 듯 울적하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계셔서 S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를 드렸다. 나이와 키 이야기는 다시 꺼내 놓지 않는 거로 약속하면서.     


50대의 유리 멘탈을 가지신 아저씨분에게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S는 저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니 화가 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말은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시라 일렀다. 영문도 모르고 수시로 마음이 상하시는 분의 비위를 맞춰 드리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 않은가?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여서 더 상대방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연애란 “이 사람이 나 자신을 그대로 내보일 만큼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물음이 이어진다.      


주자창에 가서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S의 아담한 모닝 안에서 M은 갑자기 잠이 확 깼는지 예의 조심스럽지만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지금 키스해도 돼요?”     


“네 여기서요? 차들이 앞으로 지나가는데요?”   

  

“그러면 여기서 하지 어디서 해요.” M의 장난스럽고 집요한 주장.      


아, 원래 이런 건 물어보지 않고 스르륵 물 흘러가듯이 해야 하는 건데 물어보시니 답을 해 드릴 수밖에.      


“네 그러시지요.”      


이렇게 어둑한 주차장 한쪽에서 첫 데이트의 역사적인 뜨거운 키스가 이루어졌다. 그 외는 19금이니 생략하고 상상에 맡기는 거로. 운우지락으로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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