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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Oct 01. 2021

아이들의 폭로로 시댁에서 드러난 며느리의 실체

사나운 엄마, 집밥 안 해주는 엄마


고모! 고모가 내 옆에 앉아요.
오늘은 엄마가 사나워서요.


코로나로 가족 모임을 미루고 미루던 중, 생일자들이 밀리고 밀려, 지난 5월,  고모, 아버님, 어머님의 생신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시댁에서 가족들이 모였더랬다.


그 날의 풍경, 5월 중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어머니께서 손수 맛난 음식들을 준비해 셨다. (저 사진을 보라, 며느리는 요리하느라 정신없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라 정신없다) 오향장육, 해파리냉채, 닭튀김, 탕수육, 갈비찜... 셀 수 없이 유려한 메뉴들.. 어머니의 레시피 북은 정말 오래되었다. 80년대 유명한 세프들을 쫒다니며 배우셨다니 그 솜씨가 상상 초월이다. 어머니 오향장육을 먹은 뒤에 맛본 유명 중국집의 오향장육은 맛의 디테일이 생략됐 생각이 들었다.


식탁이 차려지고 가족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고모와 재미있는 놀이를 하던 둘째 아이에게 "S야, 얼른 엄마 옆에 와서 앉아"라고 했다. 귓등으로 듣길래 조금 단호한 목소리로 재차 말했더니 엄마 억양이 달라진 걸 감지한 아이가 말했다.


고모, 고모가 내 옆에 앉아요. 오늘 엄마가 사나워서요.


아 현기증.. 뒤통수.. 귀를 의심했다. 처음엔 들었다고 믿기지 않는 단어 선택  '사나움'  때문에, '감히 엄마를 묘사하는 형용사로 사납다는 어휘를 사용하다니..'며 당황했고, 시댁 식구들 앞에서 체면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순간이 왔다. 사나운 엄마,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독하고 무섭길래 사납다고 표현할까 싶었다. 그래도 웃으면서,


그래, 오늘 엄마 사나우니까 조심해.


하고 넘겨야지 어쩌겠나. 그렇게 식은땀을 닦았다.


나도 처음부터 사나웠던 것은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싶었는지도...


그러던 중 내 머리 뒤통수를
세게 날리는 연타가 있었으니...



앞에서 말했듯, 어머니의 요리 솜씨는 정말 훌륭하다. 거기다 아이들을 위한 특급 메뉴 '튀김과 그 양념'은 아이들의 페이보릿 메뉴다. 늘 할머니 댁에 간다고 하면 그 닭튀김을 먹고 싶다며 입을 다시는 아이들이니 말이다.


식탁에 앉은 첫째 아이가 할머니의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눈치보기 말(배려하는 말, 혹은 체면치레의 말)을 하는 관습이 있고, 누가 들어도 유익하지 않은 말은 잘하지 않는 습성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첫째는 외국에서 어릴 적 오랫동안 커서 그런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다. 리고 어떤 일에 대한 반응이나 피드백이 풍부해서 만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말의 달란트가 있도 하다. 그런 첫째가 할머니의 요리를 먹고 행복해서 한 말은 아래와 같다.


할머니, 할머니 요리 솜씨는 정말 감동이에요. 우와..


할머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런 피드백을 들으면 정말 누구나 행복할 것이다. 노력을 알아주고 칭찬해주니 말이다. 아이들이 봄방학 때 할머니 집에 잠깐 머문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이 아이의 반응이 행복해서 힘든 식사 준비도 흔쾌히 하다고 했다. 고모가 옆에서 지켜보니 단 한 번을 외식을 하지 않고 일주일 내내 식탁을 차려 내셨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 음식 칭찬만 하면 좋았을 것을, 왜 이게 이렇게 맛있는지 부차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할머니, 요즘 엄마가 집 밥을 잘 안 해주거든요. 저희 자주 시켜 먹어요...


하.. 낌은 뒤통수를 맞은 듯한데, 악의는 없는 말이다. 또 실이라서 변명을 할 수가 없다. 당황한 내 얼굴이 보였는지 어머니가 그 말을 받으신다.


엄마가, 그 바쁜 직장 생활하면서 너희들 돌보고 해야 되는데 집 밥 할 시간이 안나는 게 당연해.


아이는 이 말을 듣고 갸우뚱했는지도 모른다. '저도 알아요, 당연하죠. 그냥 요즘 그렇다는 이야기를 한 거예요'라고 생각할지도...



'아이고 어머니 감사합니다'



라는 생각과 함께 모두를 당황케 한 첫째의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씁쓸한 현실, 그리고 기고 싶었으나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맘 느리한 단면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학교에 확진자가 나와서 아이들과 함께 재택을 하는 경우 이런 그림을 상상하면 된다. 그리고 사나운 엄마 모드로!


어머니의 지혜롭고 아름다운 말은 나의 부족함에도 감사와 축복으로 여겨진다



*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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