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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Oct 14. 2021

아빠가 해고되는 게 소원이야

경단녀가 다시 일을 했더니 4


3. 아이들에게 새로운 소원이 생겼다.


한국에 와서 바쁜 맞벌이 부모로 사니, 한적하고 여유로웠던 자메이카에서의 삶이 가끔 그립다. 쫓길 것 없는 일상, 한 시간이면 볼 수 있는 카리브해. 우리도 우리지만 아이들에게서도 그런 마음이 엿보일 때가 있다.


Wonderful beach and weather in Ocho-Rios of Jamaica


위의 풍경을 보라. 이와 대조되는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이 얼마간은 참 낯설었다.


그곳에선 아빠는 늘 5시면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기 전까지 온 단지 안을 누비며 아이들과 놀았다. 동네 아이들도 대디 킴(남편) 언제 오냐고 기다리고는 했다. (그렇다, 남편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다. 심지어 동네 친구들까지 기다릴 정도로.. 아래 증거 사진 참고)


대디 킴을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빛들. J의 어느 생일 날 여러 이벤트 중 하나, 퀴즈를 내고 있는 듯.


한국에선 아이들의 생활도 꽤 타이트하다. 학교 스케줄도, 수업 양과 진도도. 알림장에뭐가 그리도 빼곡히 적혀있는지 부모의 마음까지 덩달아 바빠진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넉넉한 쉼을 가진 공간을 찾기 힘들다. 




아이들 재우기 담당인 남편이 하루는 아이들을 재우고 방을 나오면서 피식피식 웃는다. 무슨 일이지?


왜 웃어?


하하, J의 잠자리 기도를 듣고 빵 터졌어.


뭐라고 했길래?


내용은 이랬다고 한다.



하나님, 엄마나 아빠 중에 한 명이 해고되게 해 주세요. 그래서 둘 중에 한 명이 우리와 실컷 놀고 시간을 보낼 수 있게요.



기도를 들은 남편이 "아빠나 엄마와 보낼 시간이 절실하면 해고 기도가 아니라 아빠가 좀 더 여유로운 환경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줘야지"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이어진 J의 대답.


아빠는 주기도문도 몰라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뭐가 걱정이에요.


이 정도면 걱정 말고 때려치우란 소리다. 아빠의 마음을 직관한 아이의 대답. 그래, 네가 맞다.




아이의 한 문장이 여러 생각을 오가게 한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것에 대한 믿음이 오늘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 된다. 둘째 아이가 800g 대로 태어났다. 나와 아이의 생명이 위태로워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던 때를 생각하면 오늘이 기적이다. 내 삶을 내가 영위하는 듯 하지만 실은 위대한 힘 안에서 우린 한없이 작은 존재이기도 하다. 한 가족이 한 지붕 아래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이 축복인 것을 그때 알았다. 둘째를 출산과 시작한 2달여 NICU 입원과 병원 외래 졸업까지 1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첫째 아이의 해고 위시 기도 후 달이 지났다.


둘째 아이 S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아빠 일하러 가지 마. 내가 만 원 줄게.


 원이 제일 큰돈인 줄 아는 아이. 아빠와 노는 것이 참 좋은 아이다. 그렇게도 좋을까.


어제저녁에 아이 과제를 봐주고 있는데 아이가 내 눈을 바라보며 그런다.


엄마, 이거 조금 이따가 하고 나랑 여기(소파)에 누워서 이야기 좀 하자!


좋지. (속으로는 '아 뭐야, 진짜 좋잖아'라고 소리 지르며)


일상에 쫓겨 what to do 리스트 완수 중이었는데... 멋진 아이 제안에 '네가 낫구나'하며 미소가 번진다.


그나저나, 한 아이는 해고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한 아이는 만원으로 회유하니 우리 곧 백수가 되는 건 아닐까.


J n S wish all about us :)




* 개인 사진 외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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