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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Oct 05. 2021

아이 학교에서 전화가 온다

경단녀가 일을 다시 시작했더니 3


학교에서 전화가 온다 

- 일과 육아 사이, 균형 잡기의 어려움 -



어머니, 새로 일을 시작해서 적응하시느라 바쁘죠?
그래서 한 달이 지나서 연락드렸습니다.



작년 일이다. 첫째 아이 담임 선생님이 6월 말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 새로 일을 시작하셔서 적응하느라 힘드시지요? 저도 방학 후에 다시 등교해서 아이들 만나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거든요.


라고 운을 떼시는 선생님. 첫째 아이가 등교 처음에는 준비물이나 알림장 확인이 제대로 됐는데, 지금은 안 그럴 때가 있어서 지적을 받고 있고, 나중에 그것이 아이 자존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으니 지금부터라도 좀 잘 챙겨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랬구나. 내가 많이 무신경했구나.'


처음에는 챙겨주다 어느 시점부터 '이제 3학년이니 스스로 하겠지'라는 생각에 관심을 덜 가진 것이 사실이었다. 혹 아이가 준비물 등을 놓치더라도 혼나면서 배우면 된다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깊은 생각 없이 내린 '혼자만의 결론'이었고 아이에게 관련한 어떤 대화나 소통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온 것이 당연했다.


네 선생님, 잘 챙기겠습니다.


혼난 기분이 들었지만 들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어머니, 제가 문자 드려서 깜짝 놀라셨죠?




며칠 전 일이다. 일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쿵!


그렇다. 둘째의 담임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일까. 학교에서 잘 못한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바로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제가 연락해서 놀라셨죠?


네, 쿵 했어요.


쿵 할 일은 아니고, S가 학교에서 아주 잘하고 있는데, 제가 어머니께 허락받을 일이 있어서요.


네.


제가 S를 오후에 공부를 좀 시켜보려고 해요.


네?


내용은 이렇다. S가 오늘 돌봄 교실을 하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한다. S가 선생님을 찾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을까 짐작만 한다), 선생님은 S가 붙임성이 좋고 참 예쁘다고 칭찬을 하신다. 아이가 돌봄 교실을 할 때 심심한 지 가끔 자기를 찾아온다며 그 시간에 공부를 시켜보겠다고 허락을 구한다고 했다. 수학하고 국어를 봐주시겠다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몸을 꼼짝하기 싫을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아이패드 자유시간을 주고 저녁을 먹고 나면, 학교에서 보내온 알림장을 확인한다. '오늘은 받아쓰기를 4개 틀렸구나.' 틀린 문장을 세 번씩 쓰는 숙제가 있다. 숫자 읽기나 덧셈 뺄셈 수학 숙제마저 끝나면 책을 몇 권 읽어주는 것이 요즘 둘째 아이 학습 봐주는 전부다. 더 욕심을 부리고 열심을 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선생님은 그걸 아는 듯, 틈새 시간에 공부를 조금 시키겠다고 하셨다.




사실 이 분은 우리에게 은인이다. S는 만 1세부터 만 5세까지 영어권에서 자랐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학교를 다녔다. 문자는 영어 알파벳을 먼저 접했다. 'ㅁ' 발음은 못해도 'm' 발음은 아는 아이어서 그런지 한글 습득이 안됐다. 안돼도 정말 안됐다.


혹시 난독증은 아닐까. 난독증 교정 병원까지 다녀야 되나 싶었다. 한글 쓰기는 그야말로 그림 그리기였다. 한 권을 공부해도 아이의 머릿속에 남는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본인 이름을 받침부터 '그릴 줄' 아는 정도였다. 7세, 유치원을 다닐 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글을 모르는 아이로 우리 부부는 걱정이 많았다. 공부를 시켜도 안되니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어머니, S가 한글을 몰라요. 제가 수학 문제를 풀려면 한글을 알아야 한다고 했더니, 자기는 한글을 몰라도 문제 잘 풀 수 있대요.


한글 몰라도 수학 문제 풀 수 있다고요! (이런 당돌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그리고 집에 온 아이가 하는 말은 더 가관이다.

엄마, 우리 반에서 나만 한글을 몰라.


참으로 당당하다. '그렇지만 너도 힘들겠지'라고 그 속을 좀 들여다보려 했지만 그래도 그건 그거고 여전히 엄마 마음은 힘들다.


집에서 매일 5분씩만 낱말 읽기 시켜달라는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다시 선생님 전화다.

어머니, S 등교를 10분만 일찍 보내주세요. 매일 10분씩 한글을 가르치려고 해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선생님이 계시다니, 우리는 감탄하며 아이를 10분 일찍 등교시켰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아이는 한 학기만에 한글을 뗐다. 물론 요즘 받아쓰기에서 '넋두리'같은 두 자음 받침은 다 틀리고 오는 아이지만 소리 나는 대로 쓸 줄 아는 아이가 됐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의 은인이다. 그런데 그런 선생님께서 S 공부를 조금 봐주시겠단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아이가 늦게까지 남아있으니 다른 스케줄에 방해 안 되는 시간에 조금씩 문제집을 풀어보겠다고 하신다.


정말 감사하다고 화상 전화도 아닌데 연신 상반신을 숙여대며 인사를 했다.

저희 부부가 선생님이 은인이라고 이야기해요. 덕분에 아이가 한글을 배웠습니다.
에이 어머니, 마침 S가 한글을 깨치려는 타이밍과 딱 맞아서 그런 거예요.


겸손히 고개를 숙이시는 선생님. 전에 아이가 한글을 못 뗀 이유는 그저 아이의 한글 깨치는 시기가 아니었을 거라고 하신다. 감사한 마음이 봉긋 올라온다.


1학년 첫 학기에 글을 배웠다. 받아쓰기 5개 다 틀리고 와도 고맙다.




경단녀가 직장인이 되면서 매일매일 워라벨이라는 줄다리기하는 중이다. 여차하면 학교 주요 알람을 놓치기 일쑤고 그러다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일어난다. 주요 원격지원 수업, 돌봄 교실 수요조사 같은 것을 놓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오늘은 무슨 전화를 받게 될까.




*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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