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콜과 구공탄 Jun 17. 2022

희망이 안 보일 때

사람, 절망, 그리고 소통

 벼룩을 어항에 집어넣는다. 빠져나오려고 죽자사자 점프점프. 넘어오겠다 싶을 때쯤 뚜껑을 덮는다. 우두커니 지켜본다. 벼룩들... 생각보다 집요하다. 한 번, 두 번… 보이지도 않는 작디 작은 머리들이 뚜껑에 꾸준히도 처박힌다. 잠시 후, 잠잠하다. 뚜겅을 열어본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머리에 자신들만한 혹이 나 무거웠는지 벼룩은 더 이상 뚜껑에 처박히지 않는다. 처음만큼 높이 뛰지 못한다. 심지어 뚜껑을 열어놔도 그 마지노선과 눈맞춤 정도 뛰었다가 떨어진다. 왜지?


 내가 처한 조건과 환경. 개인이 삶에서 취하는 리액션이 다양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많은 경우,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그의 그 다음 장면을 확연히 다르게 연출해낸다. 물론, 당사자는 그 다음 장면을 모르겠지만... 최근까지도 널리 알려져 쓰이는 표현이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내가 이해한 바에 따라 약간의 MSG를 치자면...


"돈이 있는 분은 죄를 지어도 그 죄가 없이 되고, 돈이 없는 넘은 지은 적도 없는 죄가 나타나 그를 묶어 버린다."


 너무 과격한가? 읽고 열 받는만큼 이 말이 겨냥한 사회의 부조리에 더 깊게 와닿는 것이리라. 안타깝게도 돈의 유무가 한 사람의 사람됨을 좌우해버리는 지경까지 갔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이 말들은 진실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럴 리도 없고,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시대는 조건에 따라 희망 없음의 세계로 사람들을 꾸역꾸역 욱여넣는다.  


 돈 이야기는 여기서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희망 없음을 느끼는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이 살짝 궁금한 것이다. 전문지식도, 관련 실무경험도 없는 내가 보통 사람으로서 느끼게 되는 현실의 희망 없음을 썰 푸는 정도다. 그저 내 속 시원하라고... 솔루션도, 해결책도 내놓지 못 할 말을 뭐하러 할까 싶으면서도 모든 문제의식이 당장의 정답이 없다고 해서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어쭙잖게 몇 자 쓰고 있다. 내가 놓인 상황에서 내가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희망 없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무전유죄라는 격언 이상의 자조 어린 말을 빌어 혼자 끄적거려보고 싶었다.


 취미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직업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또한, 사명으로 여기고 하고 싶었던 일들도 있다. 취미는 피아노, 베이스, 드럼, 배낭여행, 자전거 타기, 재즈 들으며 맛있는 음식 먹기, 영상편집, 좋아하는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기(지금은 이게 가장 하고 싶다. 미치도록...). 직업은 평생 할 수 있는 기술직, 코칭, 목소리로 할 수 있는 일(?ㅎㅎ 글쎄...), 강사.. 사명은... 요즘은 잊고 사는 것이지만, 사람 살리는 일(요즘 같아서는 잘할 자신도 없고, 꿈도 못 꾼다)을 하려고 했었었었었....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더럽게도 없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내 재능과 적성을 고려하는 것이 시간낭비일만큼 제한적이다. 건설현장 보조, 물류업, 페인터, 캐셔, 식당 알바 정도? 꿈은 시공에 상관없이 꿀 수 있지만, 그 꿈을 살아내는 곳은 물리적 제약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나를 가르쳐줄 스승도, 나를 믿어주는 동료도, 나를 지지해줄 친구도, 손가락 발가락 다 써서 세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난공불락(?)의 조건들. 사회성에 문제가 있나? 하며 반성 모드를 ON했다가도 역시나 현타가 온다. 개인으로는 넘기 힘든 장벽이 있음을 곧 다시 깨닫는다. 이 조건들이 내가 지금 살아내야 할 최대한의 조건이구나... 희망 없음. 이 말만 떠오른다. 다행히 아직은 벼룩보다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벼룩이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그 반강제적 자기 한계 설정의 차원에서는 크게 차이 없는 존재로서 살고 있는 것 같아 무차별적 짜증이 올라온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더더욱 주변에 사람 없음은 내게 희망 없음의 색을 더 짙게 안겨준다. 내가 사는 이 곳에서도 희망 없는 삶의 진행형을 사는 사람, 거의 인생의 끝물에서 아슬아슬하게 있는 사람, 혹은 이래나 저래나 이겨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죄다 들어보고 싶다. 그들에게 폐가 되더라도 마음껏 얘기하고 마냥 그냥 그저 울고 싶다. 지금 이곳에서 나를 제한하고 있는 포지션들 따위 개나 줘버리고...


 희망이 안 보일 때,


 " 아래 있지만, 어둠을 걷는 기분이 들 때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


 그 옛날 동수(?)였나? 그 개그처럼, 나는 있지도 않은 당신에게 물어본다.


20200417 22:08 - 20220617 12:41

작가의 이전글 쥐와는 다르겠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