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1. 자기밖에 모른다. 고집이 아집을 넘어 하늘을 찌른다.
- 어느 주말 오전, 병동 로비에 구비되어 있는 코끼리 자전거를 타며 TV를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비에 환자 A가 등장했다. 그와 동시에 TV 리모컨을 챙기더니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A.
순간 내가 뭘 잘못 본 건가 싶었다. 아니 나를 포함한 로비에 있던 여러 환자들이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걸 그냥 자기 보고 싶은 채널로 돌려버린다고? 무어라 한 마디 하려 하였으나, 그래 한 번은 그럴 수 있다며 하려던 말을 목구멍 뒤로 애써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다음 주에도 A의 행태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 A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자기 생각만 하는 인간이잖아? 하 뭐라 하면 피곤해지겠네. 그냥 상종을 말아야겠다.'
치료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치료사의 말은 듣지 않은 채, 자기의 고집만을 내세우기 일쑤. 누가 봐도 낙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상황임에도 끝까지 괜찮다며 박박 우기다가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야 만다. 심지어 한두 번도 아니더라. 그 와중에 괜찮다며 왜 그러냐고 오히려 치료사에게 역정을 내는 A.
야.. 애 먼 치료사만 고생이다.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며 엮이기 싫었고, 오며 가며 얼굴 마주하기도 싫은 그런 사람이었다. 여담이지만 한 달에 4~5명의 간병인을 갈아치운 사람이었다. 그중엔 자신이 못 맡겠다며 그만둔 간병인도 있었다.
이야.. 난 저렇게 나이 들진 말아야겠다.
2. 무단 외출에 음주까지 하네.
- 코로나19 이슈가 점차 완화되며 원내 외출/외박이 가능해진 시점이 도래했다. 월 1회 외출/외박에서 매주 1회 외출/월 1회 외박으로 점차 완화되던 시기. 매 외출/외박마다 주치의의 서명이 들어간 외출/외박증을 받고 외출/외박을 다녀오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그저 밥 먹고 온다며 평일 저녁에도 외출을 하던 환자 B.
한 번은 간호 스테이션의 간호사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아니 먹을 게 없어서 밥 먹으러 나갔다 들어오는 게 외출이야?"
라며 그대로 병원 밖으로 나가던 B. 아니 그게 외출이지 다른 게 외출인가? 논리가 이상한 사람이네. 그렇게 병원 밖으로 나간 환자 B는 음주까지 한 잔 하고 온 티가 팍팍 난다. 알코올로 인해 붉어진 얼굴과 더불어 꼬이는 혀를 대동하고 병원으로 돌아온 B. 거기에 병원 내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도 종종 목격했다. 원 내 음주 적발 시 퇴원조치 한다는 경고문은 왜 붙어있나 싶을 정도였으니. (몇몇 간병인도 같이 마시더라.)
샌들과 반팔, 반바지, 금팔찌, 금반지를 차고 클러치백을 하나 들고 있던 B. 와 씨.. 클러치백과 금팔찌, 금반지에 대한 선입견만 더욱 강하게 자리매김하였다.
원무과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말한다 한들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할 것 같았기에 그냥 지나갔다. 한편으론 나 스스로가 저렇게 태평하게 삶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던 건 아니었을까.
3. '간병'인 이라며. 분명 '간병'인이라며.
- 자신의 환자를 알뜰살뜰 잘 챙기는 간병인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건 그렇지 않은 간병인에 관한 이야기다.
한 번은 화장실에서 간병인 C가 자신의 환자 D를 세면대에서 세수시키는 장면을 목격했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환자 D의 등에 세숫대야를 끼우더니 주먹으로 퍽퍽 세숫대야를 치던 간병인 C. 이어 빨간 고무장갑(설거지할 때 끼는 그 고무장갑 맞다)을 양손에 끼더니, 빨판 있는 그 방향으로 환자 D의 얼굴을 벅벅 문대더라. 저거 얼굴 많이 아플 거 같은데. 피부도 상하는 거 아닌가? 가뜩이나 나이도 있는 환잔데.
이런 게 일상인지 그저 아무 말 없이 묵묵부답 앉아있는 환자 D. 이런 사실을 보호자는 알긴 하는 걸까?
치료실의 베드로 환자를 옮길 때는 거의 내동댕이 하듯 던지는 모양새를 보이는 간병인 C. 힘이 달리는 건 십분 이해한다지만, 그럼 치료실 쉬는 시간에 라운딩 중인 치료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던가. 그런 것도 아니고 혼자 끙끙거리다 베드로 대충 휙 던지는 듯한 모양새를 띄는 건 뭐람.
어찌어찌 베드로 옮겨 누워 있는 환자 D의 다리가 살짝 구부러져 있으니, 그 무릎을 또 주먹으로 팡팡 친다. 왜 다리를 펴질 못하냐는 소리와 함께. 아프다는 환자 D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다리를 똑바로 펴라며 무릎을 퍽퍽 친다. 이게 '간병'인?
하루는 환자 D가 병동 로비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환자 D가 병실로 돌아가고 싶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를 들은, 로비에서 같이 TV 보고 있던 환자 E가 환자 D의 휠체어를 끌고 병실로 데려다주었다. 그럼 간병인 C는 어디 있던 것이었을까? 간병인 C는 병실에 앉아 다른 간병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환자 E가 환자 D를 데려오는 모습을 보더니 내 환자를 왜 당신이 데려오냐며 역정을 내는 간병인 C. 병실로 들어가고 싶다는 이야기에 데려왔다길래, 자신의 환자 건드리지 말라며 역정을 내더라. 아니 그 자리에 없던 건 간병인 C 아닌가? 한동안 돌아올 생각도 없던 거 같더만. 자신이 '간병'해야 할 환자를 방치한 건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역정만 내기 바쁘다. 이게 '간병'인?
직접적인 접촉은 없을지언정 그 사람의 행태만을 봤음에도 자연스레 싫은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집의 끝판왕을 달리는 사람이 그랬고, 규범은 깡그리 무시한 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그랬고, 자신의 환자를 패대기치는 간병인이 그랬다.
지난 360일간의 병원 생활동안, n인실을 사용하며 상호 존중과 배려가 필요함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굳이 모든 사람에게 존중과 배려란 것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무엇보다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단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