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의뜰 Mar 07. 2023

바람이 분다. 당신이 분다.

옷차림이  가벼워졌고 햇살은 다정해졌다. 그렇게 길었던 겨울이었나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길고 깊던 겨울이었다. 옷장에 차곡차곡 넣어둔 봄옷들을 하나둘 꺼내 놓고서 한동안 볼 일이 없을 겨울옷들을 하나둘 넣어뒀다. 그러다 문득 ,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고 많은 겨울 옷들을 한동안 볼 수 없다고 하여 그게 그렇게 슬플 일인가.


 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온다. 길고 깊었던 계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 잘 보내왔으면 그래서 이토록 눈이 부시게 싱그러운 봄을 맞이할 수 있게 됐으면 일단은 기뻐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봄이 와서 겨울이 아쉬워지는 건지도 모르고 봄이 와서 봄을 타는 것처럼 슬픔이 몰아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바람에 묻어나는 향기가 꽃처럼 좋은 것이라면 봄날에 찾아온 마음속 그리움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좋은 선물로 남겨둘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납득이 되지가 않아서 떼를 쓰는 아이처럼 억지를 부렸던 기억이 내게는 있다. 갖고 싶은 것은 갖지 못하면서  절제력과 포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본의 아니게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커다란 깨달음을 얻고 난 후 부터였다.  내가 사는 일상에서 봄날은 짧고 겨울날은 길었던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무엇으로 긴 겨울을 버텨서 찬란한 봄날을 만날 수 있을까  부지런히 생각했었다. 늘 곁에 있어서 늘 볼 수 있는 기억들은 나에게 소중하긴 하지만 아련하지는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나란 사람에겐 제법 충만한 아련함과 슬픔이  필요한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시간이었다.  나는  기쁨만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사람이 아니었고 행복과 설렘만으로 마음이 완성되는 사람도 아니란 걸 긴 겨울을 보내는 동안 알게 됐다. 갖지 못하는 것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아련함 슬픔 같은 감정들도 어쩌면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덤으로 하게 됐다. 필요 없는 감정은 없고 나는 적절히 잘 버무려진 오색찬란한 감정을 갖고 있어야 사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너무 멀지는 말고 그래도 서로가 누구인지 정도는 가늠이 되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미지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속에 빛나는 별 같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살아가는데 힘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지금의 나는. 옷장 속에 겨울옷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다고 하여 좌절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바람이 불면 기억하는 거다. 당신이 나를 그리워해 바람이 부는 거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