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다 보면 세상 어떤 말보다 제일 와닿게 되는 말이 있다. "시간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거야." 시간이 약이란 말. 상대방에게 듣는 진실된 감정 말고 타인에게 듣게 되는 예상된 위로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은 듣고 싶은 말은 기가 막히게 잘 듣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아주 기술 좋게 걸러서 듣곤 한다.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목소리 높여 말한다 해도 그건 그냥 귓가에 스치다 가는 바람만도 못하게 된다는 거다. 짝사랑을 할 때는 차라리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인정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면 호감정도는 있을지 몰라도 이성적인 감정은 없을 것이라 정도만이라도 스스로를 다잡는 편이 낫다. 혼자 하는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으로만 일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니까. 확실하지 않은 감정에 사로잡혀서 나의 일상까지 허물어져 함몰시켜 버리면 그건 너무 마음 아픈 일이니까. 상대방은 알지 못하는 나만의 사랑이 좀 가여워지는 순간도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엔 무조건적인 이유가 있다. 이유 없는 사랑은 없다는 말이다. 거기엔 결핍이 있고 내 인생에서 부재된 감정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에게 없는 것을 아주 잘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고 내게 필요한 감정요소를 반짝반짝 빛날정도로 잘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따뜻한 마음이 필요했는데 그 사람은 너무 따뜻했고 다정한 말이 필요했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알고 그렇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나에게 해준다. 짝사랑의 경종은 의외로 너무 간단하고 쉽게 울리게 되지만 끝을 향해 가야 하는 외로운 싸움은 그때부터가 시작인 거다.
짝사랑을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백이지만 고백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아주 많다. 어쩌면 굳이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짝사랑도 사랑이라 언제나 아프고 버겁고 슬픈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봄날이고 어떤 날은 설렘으로 범벅된 감정이 마구 샘솟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서 하게 되는 짝사랑은 조금 더 복잡하고 어렵다. 고백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다. 나만 간직하고 있으면 굳이 유지되는 관계성을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는 거기에 계속 있을 테고 나 역시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사실 벗어나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면 해결은 쉬워질지도 모른다. 강제종료가 되던가 아니면 용기백배가 되어서 다가가게 되거나 , 어쩔 수 없이 선택이란 걸 하게 될 테니까.
짝사랑하는 마음이 봄햇살처럼 내리쬐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은 널을 뛰지만 그럴수록 나에게 주어진 나의 일상을 야무지게 잘 살아내야 한다. 그 사람만 바라보며 아이처럼 울어서도 안되고 하등 쓸모없는 자기 비하도 금물이다. 오히려 나의 순애보적 사랑을 받고 있는 그 상대방에게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며 위트 있게 웃어줄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 희망이라면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통한다."는 말을 믿어보는 거. 이렇게 바쁘고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피곤한 시대를 살아가는 서로인데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한 웃음, 친절한 태도를 보여준다는 건 참 많은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방법이 될 거다. 말하지 못하는 슬픔을 슬픔으로 남겨두지 말고 나와 당신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위로가 될 테니까.
짝사랑을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고백인 건 맞겠지만 그 전에 앞서 감정에 무너지지 말고 나답게 살면서 그 사람을 너무 높이도 두지 말고 동일한 선상에 둔 채로 "아, 저기 있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며 조금은 가볍게 치부해 보는 게 감정소모가 덜 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당신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나 같은 사람이 당신을 짝사랑해주고 있으니까."
짝사랑도 사랑이라 아름답긴 매한가지다.
봄날의 사랑은 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