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사소한 킬러 2화
김동훈 씨는 피트니스클럽에서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는 나름 사회 지도층 인사입니다.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스카이는 아니지만 명문 치과대를 나와서 개업을 한 치과의사였던 거죠.
30대 중반에 ‘자수성가 치과 개업의’ 제법 그럴듯하지 않나요?
어디 가서 빠지는 직업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많이 빠져요. 주로 모양이 빠져요.
김동훈 씨는 죄가 없어요. 죄는 부모님이 있죠. 김동훈 씨가 공부 잘해서 치대 가면 뭐해요? 부모가 돈이 없는데. 김동훈 씨의 부모님은 양심껏 합리적으로 살아왔지만 양심만으로는 병원을 차려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동훈 씨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어요.
선배가 하는 병원에 페이닥터로 들어가서 노예처럼 일하든가, 아니면 영끌 대출해서 개인병원을 차리든가.
처음에는 페이닥터로 일했더랍니다. 그런데 결국 자존심 상해서 몇 년 못 하고 탈출한 거죠.
명색이 치과의사인데 대기업 5년 차 연봉도 못 받아서야 언제 수입차 사고 아파트 마련합니까? 수입차에 강남권역 아파트, 이게 김동훈 씨의 소박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승부를 걸었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노년층이 많이 살 것 같은 장소에 치과를 개원하면 어리바리한 노인들을 상대로 왕창 돈을 벌 수 있겠다 싶어서..
치과 이름도 ‘동치과'였어요. 마음 같아서는 ‘돈치과'로 하고 싶었지만 너무 속내가 까발려지나 싶어서 한 자 바꿨던 거죠.
“왜 동치과야? 성이 동 씨야?”
“아니, 가운데 글자가 ‘동'이야. 김동훈.”
떼돈을 긁어모으겠다는 야심만만한 포부로 동치과를 개업했는데 병원사업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어요. 노인들이 많이 오기는 하는데 돈이 없으니 너무 사소한 치료만 하는 것이죠.
“어머님, 이거 임플란트 하셔야겠는데요?”
“괜찮아유. 오래 살 것도 아닌데 적당히 쓸 수만 있게 해 줘유.”
“그래도 충분히 오래 사실 것 같은데... 요.”
“오래 안 산다니까 왜 자꾸 그려? 과잉진료 신고할까?”
작전실패였습니다. 임플란트도 안 해, 금니도 안 해, 틀니도 싸구려만.. 대부분 보험 치료만 하다 보니 돈이 모일 리 없었죠. 더구나 간호사 월급은 뭐 이리 비싼지.. 어떤 달은 간호사가 가져가는 돈이 김동훈 씨보다 많았습니다.
애초부터 틀려먹은 계획이었어요. 치과란 모름지기 부자동네에 삐까번쩍하게 차리고 유능한 상담실장을 영입해야 하거늘, 어디인지도 모를 강북 후미진 곳에 임대료 싼 건물 위주로 치과를 개원했으니 처음부터 망조가 들었던 거죠.
게다가 김동훈 씨는 돈을 많이 벌 것에 대비해 병원을 개업하면서 수입차부터 뽑았더랍니다. 소원 한 가지를 미리 땡긴 거죠.
‘내가 개원 치과 전문의인데 이 정도 차는 타 줘야...’
또 직장은 강북이라도 사는 곳은 강남이어야 폼난다고 생각해 서초동에 주거용 오피스텔을 얻었습니다. 이러니 월세도 못 내서 생계형 룸메이트를 구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방 하나 남는데 썩히면 뭐해요?
원래 계획은 그 방에 각종 운동 기구를 세트로 가져다 놓고 개인 피트니스 룸으로 쓸 작정이었지만 다 물 건너간 것이죠.
그래도 룸메이트를 아무나 들일 수는 없어서 면접을 실시했습니다. 전봇대에 대충 붙여놓은 ‘룸메 구함’ 광고를 보고 누가 오나 싶었는데 이 인간이 딱 나타났습니다.
실질적인 이 스토리에 제일 중요한 캐릭터, 캘러한입니다.
“이름이...?”
“킬러 한으로 부르면 돼.”
“캘러한이요?”
“맘대로 불러. 중요하지 않으니까.”
“네. 캘러한 씨.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지...?”
“킬러.”
“이름은 알겠고요. 그러니까 직업이...?”
“킬러라니까.”
“한국말 몰라요? 직업! What are you doing for a living?”
“뭐라구? 한국말로 해! 나 영어 못해.”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존댓말을 모르는 것 빼고는 한국말 너무 잘하는데 왜 직업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 걸까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실질 직업이 킬러였습니다.
“진짜 직업이 킬러? 사람 막 죽이는?”
“막 죽이지는 않지만 킬러 맞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이때까지도 김동훈 씨는 캘러한의 말이 진담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재미없는 농담을 즐겨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지.
“네네. 알겠고요. 영화 같은 데서 킬러 역을 주로 하는 단역배우..”
“맘대로 생각해. 그런데 룸메이트 구한다고 하지 않았어? 직업 따지는 건가?”
“그건 아니고요. 그럼 월세는 어떻게 할지.. 계좌로 입금할 건가요?”
“계좌 그런 거 없고. 여기 석 달 치 미리 낼게. 이러면 되지?”
캘러한은 주머니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 갑자기 테이블 위에 올려놨습니다.
“합격!”
김동훈 씨는 망설일 것이 없었죠. 결혼할 것도 아니고 직원을 뽑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생활공간을 공유할 뿐인데 저렇게 현금 팍팍 던질 수 있다면 월세 밀릴 걱정은 없겠다 생각한 거죠. 성격도 괜찮아 보이고.
물론 다 착각이었습니다. 김동훈 씨의 진정한 시련이 이제 시작되려 하고 있었죠.
캘러한은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의 수많은 단점 중 하나가 거짓말 안 한다는 것이었죠. 있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생각나는 대로 여과 없이 말하다 보니 주변에 피해자가 속출합니다.
“음식은 어떻게 마음에 드셨는지요?”
“드시긴 했는데 맘에 들지 않았어. 너무 싱거워.”
“오빠 오늘 나 좀 괜찮아 보이지 않아?”
“전혀, 어제랑 똑같은데? 아니다. 조금 살쪘나?”
게다가 캘러한은 김동훈 씨의 오피스텔을 개인 사무실처럼 사용했어요. 오피스텔을 오피스로 활용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죠.
어느 날 김동훈 씨가 퇴근해 보니 캘러한은 오피스텔 응접실에서 늘씬한 미녀와 함께 있었어요. 김동훈 씨는 캘러한을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엄중경고할 목적이었죠.
“우리 함께 사는 공간에 여자는 데려오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나요?”
“이봐 치과. 지금 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여자 아니야.”
“그런 여자고 이런 여자고 다 안됩니다. 계약서에도 있어요.”
“진짜 말 못 알아듣네. 그런 여자 아니라니까.’
“여자 아니면 뭔데요? 설마 친척이라고 뻥치는 거 아니죠?”
“의뢰인이야. 의뢰인.”
“네?”
“사람을 뭘로 보고. 내 직업이 뭐랬어?”
“킬러? 설마 지금 사람 죽여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는?”
김동훈 씨의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캘러한의 눈빛이 번뜩이는 게 심상치 않아 진 것입니다.
“아니지. 아니야. 누굴 죽여달라는 의뢰는 많지 않아. 그게 많으면 벌써 부자 됐게.”
“그럼 어떤 의뢰를...?”
“뭐 대한민국 어느 직장에서나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일이야. 사소해도 어쩔 수 있나? 먹고살려면 이것저것 다 해야지. 치과도 그렇다며? 맨날 임플란트만 하는 건 아니라며? 그래서 돈도 없고. 월세도 혼자 못 내서 나랑 같이 사는 거잖아.”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게 말할 거 까지는... “
“에이, 우리 사이에 다 괜찮아. 나는 다 이해한다니까. 그러니까 치과도 좀 이해해. 낮에 아무도 없이 비워두는 것보다 이렇게 의뢰인도 받고 하면, 나도 월세 낼 수 있고 서로 좋잖아!”
그건 결코 서로 좋은 게 아니었죠. 캘러한만 좋은 거였어요.
애초에 캘러한 같은 룸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을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김동훈 씨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석 달 치 월세를 미리 받았으니 석 달만 견디자는 생각이었죠.
“그럼 의뢰가 정확히 뭔데?”
김동훈 씨는 자기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게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중이었어요.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어 지금 반말했어?”
“그랬나?”
“괜찮아. 반말 그거 좋은 거야. 세종대왕님이 말이야 다 좋은데 굳이 존댓말과 맞춤법까지 발명하셔서.. 피곤하게.. 계속 반말해. 나도 이제 반말할 테니까.”
여태 반말로 지껄여 놓고 이제부터 반말을 한다는 게 뭘까요? 김동훈 씨는 말리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싶어서 머리를 흔들었어요. 그런데,
“흐음,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거지?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치과도 나하고 같이 의뢰인 사연을 들어보자. 사실 힘든 세상인데 얼마나 혼자 해결하기 힘들면 나한테 왔겠어. 그렇지?”
얼떨결에 의뢰인과 함께 앉게 된 김동훈 씨는 깊은 회의감에 빠졌어요.
‘나는 왜 여기 있나? 나는 치과의사일 뿐인데.’
캘러한은 뻔뻔스럽게도 김동훈 씨를 자기 조수라고 소개했어요.
“아까 어디까지 했더라. 맞다. 거기 상무인가 하는 놈이 자꾸 괴롭힌다고 했지?”
“네, 어제도 문자랑 전화 좀 안 받았더니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얘기 좀 하자고 그러고. 제가 피했더니 우리 팀장을 찾아가서 제가 상무님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고 있다면서 저만 이상한 사람 만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둘만 타게 될까 봐 요즘은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있어요.”
“음. 그 정도면 아주 악질이네.”
‘악질? 뭐가? 왜 악질이지?’
김동훈 씨는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듣는 척했어요.
“그럼 어떻게 해결해 줄까?”
“앞으로 안 볼 수만 있게 해 주세요.”
“그러니까 안 보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 예를 들면 뭐... “
캘러한이 답지 않게 할 말을 망설이는데..
“제가 들었는데 뭐든지 해 줄 수 있다고.”
“그렇지. 다 할 수 있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일 수도 있다고...”
‘죽여? 겨우 그 정도 일로 사람을 죽여? 이거 실화?’
김동훈 씨는 귀를 의심했어요. 캘러한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해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사람을 죽일 것 같았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이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감당할 수 있어?”
“얼마를 드리면 되는지..”
“글쎄, 한 1억? 물론 현금으로.”
‘1억? 미친!’
김동훈 씨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캘러한을 불러냈죠.
“캘러한, 당신 정말 킬러야? 지금 농담하는 거지? 아니면 무슨 역할극 같은 건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 킬러 맞다고 했잖아. 지금 중요한 순간인데 이렇게 불러내면
어떡해?”
“어떡하다니? 정말 고작 그런 일로 사람을 죽이겠다는 거야?”
“고작 그런 일이라니? 저 여자한테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치과가 알아? 오죽하면 죽여달라고 날 찾아왔겠어? 치과가 직장 여성이 겪는 차별과 고통.. 그 모멸감 같은 것을 알아?”
“캘러한 당신은 알고?”
“나야 모르지. 그러니까 의뢰인의 말을 믿는 것이고.”
“의뢰인의 말이 아니라 돈을 믿는 거겠지. 그리고 저 여자가 1억 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아. 알았다. 치과도 자기 몫을 달라는 거지. 그거야 당연하지. 우리 이제 동업자인데, 8 대 2 어때?”
‘1억 원에 20%면 2천만 원. 괜찮긴 한데.. 뭐가 괜찮아? 내가 뭐 하는 거지?’
“내가 언제 동업한다고 했어? 당장 저 여자 내보내지 않으면...”
그러나 캘러한은 이미 오피스텔로 들어가 버렸어요. 김동훈 씨는 그를 쫓아 들어왔고.
“당장 1억을 마련하기는 어려운데 DC나 할부는... 어렵겠죠?”
김동훈 씨의 예상이 맞았어요. 이 여자도 제정신은 아닌 것이죠. 반면 캘러한은 꽤 단호했습니다.
“안 돼! 1억 없으면 죽일 수는 없어. 얼마 있는데?”
“천만 원 정도는 어떻게 마련해 볼게요.”
“겨우 천만 원? 아, 그 정도로는 별로 할 게 없는데. 다리만 부러뜨려도 2천만 원이야. 아, 그럼 이렇게 하지. 그 상무라는 인간을 안 볼 수만 있으면 된다고 했지?”
“네.”
이때,
“그쪽이 회사를 다른 데로 옮기면 되지 않나요?”
의뢰인 여자와 캘러한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동훈 씨가 못 참고 결국 끼어들었어요.
결과는 참담했죠.
“실례지만 이쪽 분은 조수라고 했나요?”
조수라는 말에 김동훈 씨 급 불쾌해졌어요.
“조수는 아니고, 저는 이 집주인으로서 이런 불법적인 일이 내 집에서 벌어지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쪽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니까 좋게 해결하면 어떻냐고 제안을 하는 것인데..”
“조수 아니에요?”
의뢰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어요. 이제 보니 순둥순둥 할 줄만 알았던 여자는 나름 한 성깔 있었던 것이었죠.
“이 건은 없었던 일로 하죠. 의뢰인의 비밀을 지켜줄 수 없는 해결사 하고 무슨 일을 도모하겠어요. 소문만 믿고 찾아온 내 잘못이죠. 마침 회사 근처라 가깝기도 해서 온 건데 앞으로 우연히 만나도 아는 체하지 마세요.”
키도 큰 여자가 기동력은 어찌나 전광석화 같은지 의뢰인은 일어나자마자 오피스텔 문을 열고 휙 하고 나가버렸어요. 김동훈 씨는 벙찐 얼굴로 캘러한만 쳐다보고.
“미안. 내가 괜히 끼어들어서. 아니지. 내가 미안할 게 아니지. 이건 처음부터..”
캘러한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싱글벙글했어요.
“괜찮아. 급하면 또 오겠지. 어차피 지금 돈도 없는 것 같더라. 걱정 마.”
“걱정은 누가 한다고 그래?”
그때 오피스텔의 초인종이 울렸어요. 정말 의뢰인이 돌아온 것일까요?
“누구세요?”
김동훈 씨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옆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인데요.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많이 듣던 여자 목소리인데, 의뢰인은 아닌 것 같고.. 김동훈 씨는 머리를 갸웃하며 문을 열었어요. 그리고 새로 이사 왔다는 이웃(?)과 눈이 마주쳤죠.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웃고 있었지만 김동훈 씨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급속도로 변했어요. 부정적인 쪽으로.
그녀는 조안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김동훈 씨와 조안나는 이웃사촌이 됩니다. 캘러한도.
이제 박서우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