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날씨를 위한 룩
한국에서는 입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어 살지 말지 항상 고민을 하게 만들지만 독일에서는 요긴하고 활용도 높은 옷이 있다. 바로 봄가을용이라고도 부르는 간절기 옷이다. 나는 이커머스 회사의 패션팀에서 일을 하는데, 초반에 브랜드와 제품에 익숙해지던 중, 위버강스야케(Übergangsjacke)라는 단어가 무슨 말인지 몰라 동료들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간단히 그 단어의 뜻을 알려줄 줄 알았지만, 몇몇 동료들은 흔들리는 눈빛을 교환했다. '이 단어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라는 생각 풍선이 내 눈에도 보이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단어는 한국어로는 간절기용 재킷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적합하긴 하다. 하지만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겨울용 재킷과 구별되는 선선한 날씨용 재킷이라고만 하기에는 위버강스야케(Übergangsjacke)를 설명하기 뭔가 부족하다. 위버강스야케는 요즘처럼 변화무쌍하기로 유명한 독일의 4월 날씨, 아프릴베터(Aprilwetter)에 애용할 수 있는데, 이 날씨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방수 기능이다. Übergangsjacke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한국에서 '간절기용 재킷'이라고 부르는 제품들이 없지는 않지만, 좀 더 스포티한 느낌의 아우터가 많이 나온다. 항상 방수재킷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멀하기보다는 캐주얼한 제품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깔깔이'라고도 부르는 누빔/퀼팅 재킷(Steppjacken) 역시 이 범주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루에도 햇살이 쨍쨍했다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햇살이 환한 와중에 비가 분무기처럼 내리기도 한다), 그 비가 우박이 되었다가 곧바로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우는 4월의 날씨. 이를 위해서는 옷장에 사계절용 제품이 모두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20도가 넘는 햇살을 즐기기 위한 반팔이나 슬리브리스 티셔츠와 반바지, 선글라스부터 비나 우박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위버강스야케', 종종 겨우 영상을 넘어가는 쌀쌀한 날씨가 올 것을 대비한 패딩 재킷이나 니트, 두꺼운 하의에 수면양말까지. 이 모든 것을 일주일 동안 입을 수 있는 것이 4월이다. 독일에는 이 악명 높은 날씨가 아주 막무가내라는 내용의 유명한 동요도 있다.
가방에는 항상 우산을 넣어 다니고, 며칠 전에는 양말 없이 샌들을 신었지만 오늘은 겨울 부츠를 신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이 시기에는 '양파 껍질 룩(Zwiebelschalen-Look)'도 도움이 된다. 말 그대로 양파처럼 겹겹이, 하나의 두꺼운 층 대신 얇은 층을 여러 개 쌓아 입는 전략을 뜻한다. 독일어로는 이 전략 자체를 뜻하는 단어를 Zwiebelschalenprinzip, 즉 '양파 껍질 원리'라고 부른다. 대학 시절 전공 수업에서 얇게 여러 겹을 입는 것이 실제로도 두꺼운 옷 하나를 입는 것보다 중간중간층 사이에 공기를 가두기 때문에 더욱 보온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들은 적도 있다. 양파 껍질 시스템을 채택하면 큰 일교차에 맞추어 옷을 입고 벗을 수 있어 환절기 감기에 걸릴 가능성도 낮아진다. 급격한 온도 변화에 몸이 바로 대응하지 못해 땀을 흘리고 있는데 기온이 낮아진다거나, 몸이 추워졌는데 다시 갑자기 따뜻해지거나 하는 경우에는 면역 체계가 취약해지기도 한다고 한다.
양파 껍질 룩을 위해서는 우선 피부와 닿는 가장 첫 옷을 땀을 잘 흡수하는 면이나 울 소재로 택하는 것이 좋다. 갑자기 여름 같아질 날씨나 너무 따뜻한 실내 환경을 대비해 반소매로 입는 것이 편하다. 그 위에는 체온을 유지해 주는 셔츠나 도톰한 스웨터를 입은 뒤 물론, 우리의 위버강스야케를 더한다. 만약 아웃도어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면 좀 더 통기성 및 내후성이 있는 소재의 아우터를 입을 수 있겠다. 모든 독일 사람들이 일 년 내내 아웃도어 재킷과 방수복을 입다는 고정관념에는 반박의 여지가 있지만, 만약 그것이 4월이라면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문제에서 기인한 패션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어 단어
Übergangsjacke
간절기용 재킷
